3선에 성공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지난 달 31일(현지시간) 카라카스 대통령궁에서 외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여당 후보인 마두로 대통령이 승리한 대선 결과를 놓고 부정 선거 의혹이 제기되면서 격렬한 반정부 시위가 수일 째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베네수엘라에서 대통령선거 부정 개표 논란이 국제 형사 재판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AP통신, AFP통신에 따르면 국제형사재판소(ICC) 검찰은 베네수엘라 당국의 야권 시위 대응 전반을 “적극적으로” 살피고 있다고 12일(현지시간) 밝혔다.
카림 칸 ICC 검사장은 이날 성명에서 “대선 이후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적극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베네수엘라) 당국이 폭력 및 기타 여러 가지 혐의를 적용하는 것과 관련한 여러 건의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칸 검사장은 법치주의 준수와 함께 로마 규정(1998년 유엔서 채택)에서 명시한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할 수 있는 위반 행위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ICC는 전쟁·반인도적 범죄 등을 저지른 개인을 심리·처벌할 목적으로 지난 2002년 설립됐으며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123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앞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충성파로 알려진 베네수엘라 검찰은 대선 이후 ‘선거관리위원회 불공정·부정 개표’와 ‘야권 후보 승리’를 주장하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테러 혐의 등을 적용해 2000명 이상 구금했다.
레미히오 세바요 내무·법무부 장관도 지난달 30일 국영 TV 방송 생중계를 통해 “마두로 대통령에 대한 쿠데타를 저지하고 영토 내 평화 유지를 위해 필요한 일을 할 것”이라며 시위를 ‘정부 전복’ 시도로 간주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야권 지도자인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와 야권 대선 후보였던 에드문도 곤살레스는 내란 선동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올라가 있다.
그럼에도 마차도는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게시한 동영상 연설에서 “이번 주말(17일) 전 세계 곳곳에서 마두로 패배를 알리는 시위를 진행해 달라”며 당국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베네수엘라 상황에 대한 미국과 유럽연합(EU), 중남미 주변국의 우려도 이어지는 가운데 유엔 결의를 바탕으로 2019년부터 독립적으로 활동하며 베네수엘라 내 인권 탄압 실태를 파악하고 있는 국제 조사단은 이날 “야권에 대한 마두로 정부의 탄압은 중단돼야 한다”고 성토했다.
조사단은 이날 보도자료에서 “대선일 이후 지난 8일까지 시위와 관련해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대부분 총격으로 인해 숨졌다”며 “이 중 18명은 30세 미만 남성”이라고 밝혔다.
포르투갈 법률가인 마르타 발리냐스 조사단장은 “시위 과정에 보고된 사망 사건은 철저히 경위를 파악해야 한다”며 “정부 보안군의 과도한 무력 사용 및 이들과 공모한 무장 민간인 개입이 확인된다면 관련자에게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원격 약식 심리, 증거 없는 혐의 적용, 구금자 가족에게 미통보 등 자의적·불법적 체포 사례가 상당하고, 부모나 보호자 동의 없이 성인과 똑같은 혐의로 붙잡힌 100명 이상의 미성년자가 있다는 사실 등에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마두로 대통령은 강경 대응을 천명하고 있다.
그는 이날 국무·국가방위통합회의에서 “나는 우익 단체의 폭력적인 행태에 공권력이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대처하기를 주문한다”며 “각종 폭력과 증오 범죄에 대해 철권으로 대응하며 확실하고 엄중한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현지 매체 엘우니베르살이 전했다.
마두로 정부는 주민들에게 원래 정전 신고를 위해 만들어진 정부 운영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선거 부정 의혹 제기자를 고발해 달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