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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용경 기자] 4대 기초노동질서 중에서도 서면 근로계약서 미작성·미교부 등에 따라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업체가 여전히 만연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5년간 근로기준법 제17조 위반 신고 통계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가장 많은 1만6000여건의 신고가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 근로자들은 하루만 일한 뒤 ‘계약서 미작성 신고’를 취하해주는 조건으로 업체로부터 합의금을 요구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13일 헤럴드경제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박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로부터 받은 고용노동부 5년치 통계자료에 따르면, 작년 한해 동안 근로자를 고용한 업체가 근로계약서 미작성 등 근로기준법 제17조를 위반해 신고된 건수가 1만6297건으로 집계됐다. 지난 5년 이래 최대치다.
근로기준법 17조 위반 신고 건수는 2019년 1만5452건, 2020년 1만5290건, 2021년 1만4217건으로 지속 하락하던 신고 건수는 2022년부터 다시 1만4745건으로 소폭 늘었다. 올해 6월 상반기 기준으로도 8019건이 신고됐다.
근로기준법 제17조 위반 신고사건 현황[자료=국회 환노위 박해철 의원실] |
업체에 대한 신고는 대부분 당사자간 합의에 따른 신고인(근로자)의 종결요청 등에 따라 끝났다. 이 같은 ‘기타종결’ 건수는 2021년 이후부터 해마다 소폭 늘면서 지난해에는 8793건을 기록했다. 다만 업체의 근기법 위반 혐의가 확인되면 노동부는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다. 지난 5년간 연평균 5189건의 기소가 이뤄졌다.
근로계약서 작성은 고용주가 지켜야 할 기본적 의무로 근로기준법 제17조에서 규정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17조를 위반할 경우 근로기준법 제114조에 따라 사업주에게 5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단기간 아르바이트나 일용직 근로자 역시 근로계약서 작성이 필수다. 근로계약서 미작성에 대한 책임은 사업주에게 있는데, 사업주가 근로자와의 근로계약서 작성을 미루거나 거부할 경우 신고 사유가 된다.
공인노무사 출신인 조석영 법무법인 서린 변호사는 13일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근로자들은 노동권리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상승한 반면 사용자들은 여전히 예전에 머물러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 변호사는 “근로계약서를 미작성하는 업체들은 대부분 요식업과 영세 서비스업이 많은데, 노무 관리가 더 이상 쓸모없는 비용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라며 “노동부나 국가에서도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이러한 부분들에 대한 적극적인 인식 개선 및 서비스 제공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영세상공업자들의 취약점을 노린 일부 진정인들 가운데엔 합의금을 목적으로 사측의 근기법 위반 사례를 악용 의심 사례도 적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당초부터 근로 제공이 목적이 아닌,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거나 교부하지 않는 업체를 노동청에 신고해 반복적으로 합의금을 취하는 경우다. 대체로 사측에서 진정 취하를 조건으로 해당 근로자에게 합의금을 제시하면, 100만원 안팎의 합의금으로 사건이 끝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근로계약서 미작성·미교부는 명백한 현행법 위반으로 업체 자체가 처벌 대상이기 때문에 근로자의 악용 사례가 있더라도 제재할 방도는 없다.
수도권에 근무하고 있는 한 현직 근로감독관은 “업무를 하다 보면, 진정인들 중에 하루 이틀 정도 일하고 사측을 근로계약서 미작성으로 노동청에 신고한 뒤 합의금을 얻으려는 경우가 보인다”며 “법에 따라 하루만 일해도 근로계약서를 쓰는 게 맞지만, 악용하는 경우도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경우 법을 위반한 업체는 처벌을 받고 싶어하지 않고, 신고를 한 근로자는 합의하면 취하하겠다는 의사를 상대 업체 측에 살짝 비친다”며 “이 같은 악용 사례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업체가 기본적인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등의 법 위반 사례를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급선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