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역사학회를 비롯한 48개 국내 역사 관련 학회와 단체는 13일 오전 10시 윤석열 정부의 반역사적 행태의 중단과 독립기념관장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우리의 미래, 어린이-청소년들이 더위를 뚫고 천안 독립기념관으로 체험학습을 가, 항일 투쟁을 했던 선조들의 넋을 기린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함영훈 기자] |
이번 성명서 발표에 참여한 역사 관련 학회와 단체는 신임 독립기념관장이 독립정신에 반하는 편향적 사고를 가졌으며, 1945년 광복의 역사적 의미를 퇴색시키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의 독립운동을 폄하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이번 임명이 윤석열 정부의 반역사적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지적하며 독립정신의 터전인 독립기념관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더욱 굳건한 유산으로 계승되도록 힘써야 할 것을 촉구했다.
성명서에는 강원사학회, 고려사학회, 공공역사문제연구소, 대한의사학회, 대구사학회,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 명청사학회, 민족문제연구소, 백산학회, 부산경남사학회, 수선사학회, 신라사학회,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웅진사학회, 역사교육연구소, 역사교육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역사와교육학회, 역사학연구소, 역사학회, 연세사학연구회, 의료역사연구회, 일본군위안부연구회, 일본사학회, 전국역사교사모임, 전북사학회, 정의기억연대사무처, 조선시대사학회, 한국고고학회, 한국고대학회,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근현대사학회, 한국독일사학회, 한국러시아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국사연구회, 한국사학사학회, 한국사회사학회, 한국생태환경사학회,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 한국서양사학회, 한국역사교육학회, 한국역사민속학회,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중세사학회, 호남사학회, 호서고고학회, 호서사학회 등 48개 단체가 참여했다. 다음은 48개 역사 관련 학회와 단체의 성명서 전문.
독립기념관 겨레의집. 한 모녀 국민여행객이 민족의 웅혼한 기상을 상징하는 조형물 앞에서 조각된 항일투사들의 동작을 흉내내며 인증샷 촬영에 임하고 있다. |
‘민족 자주와 독립 정신의 요람인 독립기념관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친일파를 옹호하는 인사가 독립기념관장에 임명되었다. 독립기념관은 일본의 거듭된 역사 왜곡에 맞서 국민 성원으로 건립되었고, 대한민국 수립의 근간인 자주독립 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존립한다. 우리의 광복은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선혈과 반백 년 독립운동 역사의 산물이다. 그렇기에 독립기념관의 관장은 독립유공자 본인이나 후손, 또는 독립운동사 연구에 현격한 공이 있는 연구자가 역임하였다. 전례에도 어긋나고, 건립 취지에도 반하는 인사가 독립기념관장에 임명된 것은 독립기념관의 역사와 정체성에 역행하는 것이다.
신임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은 최근의 저작과 발언을 통해 독립 정신에 상치되는 편향적 사고를 드러냈다.
첫째, 그는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을 강조하는 반면 1945년 광복의 주체적 의미를 퇴색시켰다. 대한민국 헌법은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로 시작된다. 이승만 정부 역시 1948년 8월 15일을 정부 수립 30주년으로 기념하고, 대한민국 30년으로 연호를 정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역대 대통령이 모두 1948년을 건국 시점으로 기산했다’고 오도한다.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편향적 사고에 매몰된 인사가 독립운동 사업을 좌우하게 된다면 불필요한 역사논쟁으로 갈등이 일어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둘째, 친일 경력 인사를 옹호하며 근거 없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안익태를 극일 인사로 평가하는가 하면,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던 백선엽의 친일 행적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백선엽의 경우, 이미 회고록에서 “우리가 좇은 게릴라 중에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다고 자인한 바 있다. 그럼에도 간도특설대와 백선엽을 분리하는 해괴한 논리를 펴며, 독립군 토벌 등의 ‘적극적’ 친일 행위는 없었다고 비호한다.
셋째, 한국근현대사에 대한 편향된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김영삼 정부의 ‘역사바로세우기’를 ‘역사전쟁’의 촉발 원인으로 지목하고, 43사건,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주장도 거듭한 바 있다. 독립기념관장에 취임하자마자 “친일파로 매도된 인사들의 명예 회복에 앞장서겠다”며 독립기념관의 존립 이유를 부정했고, 급기야 독립기념관 개관 이후 처음으로 ‘광복절 경축식’을 취소했다. 이대로라면 독립기념관은 건립 취지에 어긋나는 사업에 매몰될 공산이 크다.
윤석열 정부의 반역사적 정책은 느닷없이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해 일본 정부와 가해 기업의 사죄 없는 강제동원 배상안을 강행하였고 육군사관학교에 건립되어 있던 홍범도 장군 흉상을 이전하려 했다. 최근에는 수천 명의 한국인이 강제 동원되어 고통받았던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합의하였다. 정부는 ‘내용상 강제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지만, 현장에서 ‘강제’와 사과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한반도에서 이주한 노동자들의 삶’이 요식적으로 기술되고 있다. 올해는 청일전쟁 130년, 러일전쟁 120년이 되는 해이지만, 그에 걸맞게 과거사를 성찰하거나 독립정신을 굳건히 하려는 정부 노력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 사이 일본의 역사 부정은 격심해져 세계무대에까지 노골화되고 있다.
역사 관련 학회와 단체는 이미 강제동원 배상안 강행과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시도 때에도 정부의 반역사적 행위에 대해 경고하고 반성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현 정부의 반역사적인 행태는 이후에도 그치지 않았다. 이번 독립기념관장 임명은 그 흐름의 정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광복 80주년을 한 해 앞에 두고 부적절한 독립기념관장의 임명이 이루어졌다는 점에 역사 관련 학회와 단체는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광복 직후부터 추진된 독립운동 기념관 건립운동은 40여 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 국민적 성원으로 쌓아올린 독립정신의 터전이 훼손되지 않도록, 더욱 굳건한 유산으로 계승되도록 현 정부는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