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인천 서구 한 공업사에서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벤츠 등 관계자들이 지난 1일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전기차에 대한 2차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 |
최근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일어난 전기차 화재 사고로 배터리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전기차에 탑재되는 배터리 제조사가 소비자들의 차량 선택을 하는 데 있어 주요 요건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도 국내외를 막론하고 ‘전기차 포비아(공포)’ 확산을 막기 위해 자사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잇달아 공개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까지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한 완성차는 현대자동차(제네시스 포함)와 기아, KG모빌리티, BMW, 메르세데스-벤츠, 볼보, 폴스타, 토요타, 폭스바겐, 아우디 등이다. 스텔란티스 그룹 산하 브랜드를 비롯한 다른 수입차 업체도 현재 배터리 제조사 정보 공개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완성차 제조사별로 살펴보면, 현대차그룹이 공개한 20종의 전기차 가운데 중국산인 CATL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은 총 3종(기아 니로EV SG2, 레이EV, 현대차 코나 SX2 EV)이다. 그외(중복 도입 기준) 14종은 SK온의 배터리가, 9종은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를 사용했다.
BMW도 국내에 선보이고 있는 전기차 10종에 탑재된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했다. BMW iX1과 BMW iX3 등 전동화 엔트리급 모델에는 CATL 배터리가, 그외 BMW i7 xDrive60와 BMW i7 M70을 포함한 8종의 자동차에는 삼성SDI가 제조한 각형 배터리 제품이 탑재됐다. 미니(MINI)는 현재 국내에 판매 중인 전기차가 없어서 배터리 제조사 공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폭스바겐과 아우디의 경우 폭스바겐 ID.4(LG에너지솔루션), 아우디 e-트론 S(삼성SDI) 등 국내에서 판매 중인 14개 차종 모두 국산 배터리를 장착했다고 14일 밝혔다. 또한, 스텔란티스코리아도 이날 산하 브랜드 6개 차종에 장착된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개했다. 푸조의 e-208 및 e-2008 SUV, DS 오토모빌의 DS 3 E-Tense 모델과 다음 달 출시 예정인 지프의 첫 순수 전기 SUV 어벤저는 CATL의 배터리가 탑재됐다. 지프의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랭글러 4xe와 그랜드 체로키 4xe는 삼성SDI 배터리가 들어갔다.
이번 전기차 화재로 안전성 논란이 불거진 벤츠코리아의 경우 공개 차종 11개 가운데 8개에 CATL, 파라시스 등 중국 업체의 배터리가 탑재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산 배터리가 탑재된 것은 EQC 400 4MATIC(LG에너지솔루션), EQA(SK온), EQB(SK온)에 불과했다.
인천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정부가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향후 출시되는 전기차들은 탑재하고 있는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로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반사 이익을 누리게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반적으로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의 생산 원가는 국내 업체의 40%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불량 비중도 높은 편이다.
반면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Z폴딩으로 알려진 배터리 화재 안전성 기술을 도입하고, 불량 체크를 위한 사후 작업에도 열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Z폴딩은 분리막을 지그재그로 쌓아 양극과 음극이 접촉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아 화재 발생 가능성을 큰 폭으로 낮추는 기술이다. 또 삼성SDI가 생산하는 각형 배터리의 경우, 이차전지 업계에 주류로 자리 잡은 원통형 제품과 비교했을 때 안정성 측면에서 잇점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화재를 계기로 고품질 배터리를 사용하는 국산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니즈가 커질 것”이라며 “이번 일을 통해 국내에서 판매되는 전기차의 경우 국산 배터리를 선호하는 경향이 짙어질 가능성도 관측된다”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국내를 넘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까지 배터리 공개 여론이 확산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로이터 등, 글로벌 외신 매체들이 인천에서의 화재 사고를 대대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면서다. 특히 로이터는 13일 이번 배터리 화재 사고에 따른 완성차업체들의 배터리 원산지 공개를 집중적으로 다룬 바 있다.
한편, 유럽연합(EU)은 오는 2026년부터 전기차 제조업체들이 소비자에게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했다. 배터리 법에 따라 배터리의 생산·이용·폐기·재사용·재활용 등 전(全) 생애주기 정보를 디지털화하는 ‘배터리 여권’ 제도를 도입하는 게 골자다. 미국에서도 배터리 정보 공개 의무화가 부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2026년부터 ACC(Advanced Clean Car)Ⅱ 규정의 ‘배터리 라벨링’ 항목을 통해 제조사와 구성 물질, 전압, 용량 등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도록 준비하고 나섰다.
국제기구에서도 배터리 제조사 정보 공개를 권고하는 추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OECD 다국적 기업 가이드라인’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소비자 선택권’을 명시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배터리 원산지나 제조회사의 출처를 숨기는 것은 소비자를 오도하는 등 불공정한 표시로서 지양하도록 하고 있다. 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