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퇴근 후엔 운동’이 지겨워…절 소개팅이 커플 명당이네

지난 9~10일 양일간 강원도 양양의 천년고찰 낙산사에서 진행된 대한불교조계종의 ‘나는절로’ 프로그램에 참가한 참가자들의 모습. 최종 성사된 6커플 중 한 직녀-견우 커플이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해보이고 있다. 이민경 기자.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8월의 땡볕 아래에서도 차마 찡그릴 수는 없다. 언제 그(그녀)의 눈빛이 나에게 다다를지 모른다. 웃는 얼굴만 보여주기에도 시간은 짧다.

지난 9일 견우와 직녀가 1년에 단 한 번 오작교 위에 만난다는 음력 칠월칠석을 맞아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에서 ‘나는 절로’가 진행됐다. ‘나는 절로’는 조계종사회복지재단이 저출생 문제를 극복하고자 보건복지부와 협력해 지난해 11월 시작한 1박 2일 미팅 프로그램이다.

특히 이번 5기는 전국 각지에서 무려 1500여명이 지원해 그중 남녀 각각 10명씩 총 20명이 선정됐다. 남자는 70.1대 1, 여자는 77.3대 1의 경쟁률을 기록,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뜨거웠다.

9일 이른 아침 서울 종로구 조계사 앞에서 집결한 참가자들은 버스를 타고 2시간 여를 달려 낙산사에 도착했다. 남녀가 눈이 맞기까지 단 0.5초면 충분하다고 했던가. 결말을 미리 조금 ‘스포’하자면 인연은 이미 버스 내 자리 선정 때부터 움트고 있었다.

편한 법복으로 갈아입고 진행된 레크리에이션 시간. 견우와 직녀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친해지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전해졌다. 이민경 기자.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온 참가자들이다 보니 자기소개를 경청하는 집중도도 남달랐다. 먼저 역순으로 견우 10호부터 1호까지 남성 참가자들의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1992년생 ‘견우 10호’는 “단아하고 웃음이 예쁜 여자가 이상형”이라고 밝혔다. 1990년생 ‘견우 9호’는 “저는 100대 명산을 완주한 등산가”라며 “함께 등산을 즐길 수 있는 여자친구를 찾으러 왔다”고 했다.

직업도 다양했다. 경찰, 연구원, 시청 공무원, 노무사 등 주최 측이 다양성을 고려해 고심해서 선정한 느낌이 역력했다.

솔로라서 퇴근 후에 운동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는걸까. 아니면 운동만 열심히 하느라 솔로인걸까. 남성 참가자 10명 모두가 퇴근 후 주 5일~6일 운동에 매진한다고 해 놀라움을 샀다. 1988년생인 ‘견우 6호’는 “집-회사-헬스장 혹은 집-회사-러닝을 한다. 일주일에 5번에서 6번 운동을 하면서 퇴근 후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1989년생 ‘견우 7호’ 역시 “2년 째 주짓수를 하고 있다”고 운동애호가의 면모를 뽐냈다.

직녀들도 하나같이 퇴근 후엔 운동을 한다며 건강미(美)를 어필했다. 직업이 화가인 ‘직녀 1호’는 “견우들이 다 운동을 좋아한다고 해서 반가운데 저도 주 6일은 밖에 나가서 뛴다”고 했다.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직녀 2호’ 역시 수영을 즐겨한다고 밝혔다. ‘직녀 3호’는 “솔로들의 공통적인 특성이 운동광(狂)인가 싶을 정도로, 저도 운동을 좀 많이 좋아한다”고 웃었다.

물론 자기소개에선 운동 루틴 외에도 참가자들의 나이, 사는 지역, 직업, 가치관, 가족 계획 등을 들을 수 있었다. 과연 나와 맞는 사람일까, 밖에서도 계속 만날 수 있는 사람일까, 견우와 직녀의 마음속에선 이름이 새롭게 각인되기도 하고, 혹은 아쉽게 지워지기도 했다.

최고의 커플사진을 가리는 대결을 놓고 참가자들이 저녁 데이트 상대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명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풋풋한 청년들의 모습이 미소를 자아낸다. 이민경 기자.

속세에서 통할 매력포인트는 이 때를 끝으로 잠시 접어둬야 했다. 예쁘고 멋지게 차려입은 견우와 직녀는 이제 사람이 둥그스름해지는 마법을 부리는 법복, 즉 사찰 패션으로 갈아입었다. 대화를 통해 인품과 센스로 진검승부를 겨루는 후반전이 시작됐다.

‘마음의 창’인 눈에서 비어져 나온 눈빛은 진심과 비례할까. 어떤 견우가 어떤 직녀를 보는 눈빛은 반짝반짝 빛나는데, 직녀는 그를 보는 눈길에 생기를 잃은 눈치였다. 또 가까이에 있는 이성을 두고 저 멀리 다른 사람에게 눈빛이 꽂히기도 했다. 후에 고백컨데, 커플이 된 한 견우는 “정신없는 레크리에이션 시간에도 제가 관심있는 직녀 0호님을 멀리서 계속 눈으로 쫓고 있었다”며 웃었다.

색이 고운 한복을 갖춰입은 견우와 직녀가 10대 10 로테이션 차담을 진행중이다. 한 상대와 최소 15분의 대화를 하면서 미처 몰랐던 매력을 발굴하는 기회로 작용했다. 이민경 기자.

고기 한 점 없는 절밥을 먹고난 후 쉼 없이 차담(茶談)과 야간 데이트가 이어졌다. 낮의 뜨거운 열기가 채 빠지지 못한 밤,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지만 모두 어여쁜 한복으로 환복했다. 랜덤으로 고른 한복 치마는 은은한 파스텔톤부터 쨍한 붉은색과 녹색의 원색 등으로 다양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한복에 낙점된 이는 의기양양했지만, 일부는 어울리지 않는 색상을 골라 못내 아쉬워했다.

하얗게 불태운 금요일이 지나고 다음 날 오전 8시, 기상과 동시에 어젯밤 문자 투표로 사랑의 작대기를 주고받은 커플이 공개됐다. 커플은 총 6쌍이 탄생했다. 정확하게 서로를 처음 본지 24시간 만에 ‘내 님’을 골라낸 집중력이 빛났다.

저녁 9시가 넘은 시간에도 열띤 대화 분위기가 창문을 뚫고 전해져온다. 이민경 기자.

4살 차이가 난다는 ‘직녀 8호’와 ‘견우 5호’는 출발 버스 안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 사람이다’라는 감이 왔다”고 말했다. 견우 5호는 “버스에서 얘기를 하면서부터 이미 서로가 닮아있는 걸 느꼈다”며 “사는 지역도 가깝고 생각하는 가치와 방향, 하루에 만 보 이상을 걷는 것까지 공통점이 많았다”고 소개했다.

6살 차이의 ‘직녀 4호’와 ‘견우 6호’는 시간이 가면서 자연스레 눈에 들어온 케이스다. 직녀 4호는 “자기소개를 들으면서 저 분 괜찮다고 생각해서 제가 먼저 다가가서 ‘자기소개 잘하셨다’며 말을 걸었다”고 웃었다. 견우 6호도 “레크리에이션 때 저 멀리 4호님을 보느라 사실 집중이 잘 안됐다. 10명과 모두 차담을 로테이션 하는 와중에도 빨리 4호님한테 가서 편하게 말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미처 커플이 되지 못한 참가자들은 올 연말 계획된 동창회에서 한 번 더 심기일전 할 수 있다.

한 때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라 불리던 MZ(밀레니얼+Z)세대들. 누가 이들더러 낭만을 잃었다고 하던가. 적막이 내려앉은 낙산사 경내,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에서 그들은 “우리 내일 서로를 뽑자”고 약속하며 지그시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낮 시간동안의 관광객이 모두 빠져나간 뒤의 고요해진 낙산사 경내. 고즈넉한 분위기가 여섯 커플 탄생에 한 몫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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