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패딩 사는 이유? 리퍼브역시즌이 요즘 ‘대세’ [다시, 리커머스 바람]

지난 7일 오후 서울 명동 시내 한 의류 매장에 진열된 가을옷 앞으로 반팔 차림을 한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전새날·김희량 기자] #. 직장인 정현주(30)씨는 최근 역시즌 세일 기간을 이용해 겨울옷을 장만했다. 정 씨는 “정가 40만원짜리 패딩을 50% 넘게 저렴한 가격에 구매했다”며 “비슷한 옷을 겨울에 사면 분명 이보다 비싼 값을 줘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날씨가 더워 지금 당장 입을 일은 없겠지만, 매년 겨울은 돌아오니 합리적인 소비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고물가로 의류비 지출에 대한 부담이 커지면서 한 푼이라도 싸게 소비하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패션 플랫폼에서도 ‘리퍼브(기능엔 문제가 없으나 단순 변심 등의 이유로 반품됐거나 전시됐던 제품, 재고로 쌓여있던 제품 등을 재판매하는 것)’와 ‘역시즌(현재 시점과 반대되는 계절)’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다.

W컨셉에 따르면 클리어런스 세일을 진행한 기간이 포함된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4일까지 리퍼브·역시즌 상품 매출은 행사 직전 2주보다 각각 60%, 67% 증가했다. W컨셉은 티셔츠, 속옷, 가방, 액세서리 등 패션 제품이 주로 인기를 끌었다고 설명했다.

혜택 규모가 큰 세일 기간에 집중적으로 소비가 급증하기도 한다. 지그재그는 연중 최대 규모로 11월 1회 진행하던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를 올해에는 여름에 한 차례 더 진행했다. 상반기 최대 규모 할인 행사로 이뤄진 행사 ‘직잭세일 여름 블프’는 지난 6월 24일부터 7월 8일까지 열렸다. 인기 쇼핑몰과 패션, 뷰티, 라이프 브랜드 4700여 개가 참여해 최대 95% 할인가에 상품을 선보였다.

블프 기간 1인당 평균 구매 객단가는 전년 동기 대비 16% 증가했다. 지그재그는 티셔츠, 팬츠 등이 주력인 여름에는 객단가가 낮아져 매출을 올리기 쉽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며 비수기에 좋은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했다. 실제 전체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41% 증가했다. 특히 직전 할인 행사 ‘직잭세일(3월 15일~4월 7일)’보다 12% 올랐다. 지그재그는 할인 제품 수요에 맞춰 봄여름 시즌 상품을 최대 92% 할인해 판매하는 ‘SS 서머 시즌오프’도 진행 중이다.

도매택 브랜드명을 검색해 가격으 비교하는 방법(왼쪽)과 네이버 쇼핑렌즈 기능을 활용해 같은 옷을 찾는 방법. 전새날 기자

저렴한 보세 옷을 ‘더 싸게’ 사려는 움직임도 뚜렷하다. 직장인 김민서(30) 씨는 좋아하는 유명 보세 도매택 의류 브랜드명을 줄줄이 꿰고 있다. 브랜드명을 찾아 검색하면 가장 저렴한 가격에 옷을 구매할 수 있어서다. 도매택은 동대문 사입 브랜드를 뜻한다.

김 씨는 “도매택 이름을 알아내 포털에 검색하면 가격을 비교하기 쉽다”며 “같은 옷인데 판매처에 따라 할인율, 쿠폰 적용 가격이 달라 최저가를 찾는다”고 말했다. 그는 “네이버에 입점한 스마트스토어 외에도 도매택만 전문적으로 할인해 판매하는 온라인 카페도 있다”며 “배송이 일반 쇼핑몰보다 다소 느린 것이 단점이지만, 최소 몇천원부터 최대 몇만원까지 아낄 수 있어 이득”이라고 전했다.

의류 사진 이미지 분석을 통해 최저가를 직접 찾아 나서는 방법도 있다. 대학생 장미연(26) 씨는 “온라인 쇼핑몰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을 구글이나 네이버 쇼핑렌즈를 통해 이미지 검색하면 비슷한 의류가 뜬다”며 “보세 의류의 경우 같은 모델컷을 활용하는 경우도 많아 가격 비교가 쉽다”고 말했다.

의류 브랜드가 운영하는 정책도 소비 다이어트에 보탬이 된다. 직장인 이모(31) 씨는 SPA브랜드 ‘H&M’의 의류수거 시스템(가먼트 콜렉팅 프로그램)을 종종 이용한다. H&M은 중고 의류를 매장으로 가져다주면 다음 구매 때 사용할 수 있는 할인 쿠폰을 제공한다. 브랜드나 종류에 상관없이 계산대에서 직원에게 헌 옷을 건네고 디지털 바우처 5000원을 적립하는 방식이다.

H&M 매장 내 의류 수거함에 모아진 옷들은 H&M의 협력 업체로 보내진다. 상태에 따라 3가지로 분류되는 옷들은 각각 재착용, 재사용, 재활용된다. 이 씨는 “매장에 있는 수거함을 보고 할인 정책에 대해 알게 됐다”며 “집에서 안 입는 옷은 정리하고 새 옷은 할인받아 살 수 있어 일거양득”이라고 말했다.

서울 시내 한 백화점에서 시민이 패딩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소비자가 패션 지출을 아끼는 이유는 높은 물가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7월 의류 및 신발 소비자물가지수는 114.38로 전년 동월 대비 2.5% 증가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이미 작년에 6.7% 오르며 10년 중 최대치를 기록했다.

의류 구매에 대한 부담이 커지면서 소비 위축도 진행형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7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지출전망 CSI(소비자동향지수) 항목 중 의류비는 97로 집계됐다. 소비지출전망 CSI는 6개월 후에 지출을 더 늘릴지에 대한 소비자의 판단을 보여준다. 지수가 100보다 작으면 씀씀이를 줄이겠다고 응답한 가구가 늘릴 것이라고 답한 이들보다 많다는 의미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필수재가 아닌 제품에서 지출 규모를 줄이려는 소비자가 많아진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의료비 등 필수·고정지출이 늘어날 것을 예상해 의류처럼 불요불급한 품목부터 지갑을 닫는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예산을 객관적으로 점검하며 소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의류의 경우 전에는 무조건 소비를 줄이는 경우가 많았다”며 “최근에는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실질 구매력을 유지하려는 소비자의 노력이 뚜렷하다”고 분석했다. 다만 “싸게 여러 제품을 구매하다 과도한 소비로 이어지면 결국 전체 지출이 늘어날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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