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 슈퍼사이클(초호황기)에 진입한 조선업계에 파업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주요 조선사 노동조합은 회사가 임금과 복지 등 근무여건 개선에 소극적이라며 단체행동에 나서겠다고 예고하고 있다.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가 파업까지 단행할 경우 생산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난 13일 중앙쟁의대책위원회를 열고 오는 28일 오후 3시간 파업을 하기로 했다. HD현대중공업 노사는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에 난항을 겪고 있는데 이날 진행한 17차 교섭에서도 합의점은 찾지 못했다. 노조는 전체 조합원의 65.1% 찬성과 중앙노동위원회 쟁의 조정 중지 결정으로 파업권을 확보한 상태다.
파업에는 쟁의권을 확보한 HD현대삼호 노조도 참여한다. HD현대미포의 경우 아직 쟁의권을 확보하지 못했다. 다만 오는 30일 지방노동위원회 중재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돼 이후 쟁의에는 참여한다는 방침이다.
다른 조선사의 상황도 비슷하다.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와 한화오션 노조(민주노총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도 지난달 투표에서 높은 찬성률로 파업 추진에 의견을 모았다. 한화오션 노조의 경우 파업 의견을 모은 직후인 지난달 15일 7시간 총파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와 한화오션 노조도 주요 조선사 노조 모임인 조선업종노조연대 차원에서 오는 28일 부분 파업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노조는 조선업이 호황기에 들어섰음에도 처우는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불황기 임금·복지 축소, 대규모 희망퇴직 등의 고통을 감내해 온 만큼 합당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사측은 이제 막 업황이 회복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최근 수주 물량의 매출 반영까지는 시간이 소요되고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의 이슈도 있어 급격한 임금 인상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주요 조선사는 올해 상반기 나란히 흑자를 기록하며 실적 회복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상황이다. 향후 3~4년치 일감을 확보했고 기존 저가 수주 물량을 털어내면서 고부가가치 선박 매출이 서서히 반영되고 있다.
여기에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과 노후 선박의 친환경선 교체 수요가 늘어나고 있고 신규 건조 선박 가격도 사상 최고치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실적 개선 흐름은 가팔라질 것으로 보인다. 영국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2일 기준 신조선가 지수는 188.21로 사상 최고치(191.51) 대비 98.3% 수준을 기록했다.
다만 넘치는 일감을 소화할 숙련공 등 생산인력 확보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국이다. 조선 3사는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외국인 인력을 추가 고용하는 등 인력 확보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분석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조선업 생산인력이 약 9500명 부족할 것으로 예측된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오랜만에 다시 찾아온 조선 업황 회복의 기회를 살리기 위해 생산성 향상에 노사가 힘을 합쳐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파업을 결정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성실히 교섭에 임해 노조와 대화를 통해 타협점을 찾는 데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