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간송미술관은 훈민정음, 미인도 등 일제가 탈취해갈 뻔 한 우리의 유산을 사재를 털어 지켜낸 대표 K-헤리티지 지킴이이다.
그리고 행여 유산 보존에 어려움이 생길까봐 국민의 향유 시간을 제한하고, 필요한 항온항습 등 조치를 치밀하게 진행해왔다.
자존, 품격, 엄밀, 사랑, 신뢰 등의 이미지로 굳어진 간송이 대중들을 위해 격조있는 자태를 조금 해제하고 끼를 부리기 시작했다.
신윤복의 풍속도. 기생 한명을 두고 싸움난 조선의 한남들 |
▶한국 전통미술 첫 몰입형 미디어아트= 간송미술관(관장 전인건)은 간송미술문화재단의 지적재산권(IP)을 활용한 이머시브&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 콘텐츠를 통해 간송컬렉션의 가치와 의미를 오감으로 느끼며 체화할 수 있는 이머시스-K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 부니 별이 빛난다’ 전시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구·달·바·별’은 K-컬쳐의 근간인 한국 전통 미술만을 소재로 한 간송미술관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우라나라 국보·보물 및 주요 작품 99점을 디지털 콘텐츠로 만날 수 있다. 8개의 대형 전시실과 2개의 인터미션 공간, 그리고 체험존으로 구성된 총 1462㎡(411평)의 대규모 전시 공간에서 옛 거장들의 영혼이 깃든 유물들은 미래의 기술과 만나 다양한 시공간을 넘나들며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혁신이 교차하는 변화무쌍하고 다채로운 예술작품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훈민정음이 제주의 모네 처럼= 신비로운 미로처럼 이어진 전시 공간을 따라 걷다 보면, 훈민정음 창제의 순간을 우주의 빅뱅 속에서 발견하고, 웅장한 관동 산수의 절경 속을 함께 노닐며, 때로는 고요한 부처의 자비에 잠겨 사유하게 된다.
훈민정음 |
평면의 그림이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이고, 추사의 붓질이 춤추듯 공간을 힘차게 가로지르며, 금강산의 사계절이 눈앞에서 순식간에 변화하는 모습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경험으로 이끈다.
각각의 콘텐츠는 홀로 발화하여 영상미를 뽐내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의 동선과 액션을 인식하여 상호작용으로 이어지고, 관람객의 개입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한 걸음씩 발을 내딛는 공간은 흑백에서 컬러로 물들어 간다. 그림의 한 장면이 현실 세계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키네틱아트, 모션그래픽, 라이다 센서 등의 다양한 기술력을 도입했다. 관람객과 미디어의 인터랙티브 시너지는 간송 컬렉션을 온몸의 감각으로 체화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간송도 ‘실험’에 임하다= 개별 컬렉션 영상은 대규모 미디어아트 공간뿐만 아니라 글로벌 전시, CF, 영화 CG, 현대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기술을 접목한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해온 국내 최고의 영상 미디어 랩과 작가들이 참여했다.
미인도(신윤복), 서화(김정희), 관동명승첩(정선), 삼청첩(이정) 등도 제주의 모네, 르느와르, 크림트처럼 춤을 춘다.
김홍도의 그림 능파대(지금의 동해시 추암) |
몰입을 위해 오감을 자극하는 요소들도 다양하게 시도했다. 전문 조향사들이 참여하여, 관마다 원작 작품과 영상 연출 컨셉에 맞는 향기를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세종의 애민정신을 표현하기 위해 조향된 향기는 ‘Overwhelm Wave’라고 이름 지어졌으며, 〈미인도〉관의 ‘Awe Green’향은 여인의 신비로움을 표현한 것이다.
영어를 굳이 한글로 번역하지 않는 것은 기획자 나름의 의미를 지켜주기 위함이다. 사전에는 오버웰름은 ‘압도적’, 오는 ‘치명적’ 등으로 나와있다.
추사 김정희의 방으로 이르는 길목에서는 다양한 요소들이 오감을 일깨운다. 눈앞에 화려한 꽃길이 펼쳐지고, 흩날리다가 두 손에 살포시 내려앉은 꽃잎에서는 추사가 사랑한 수선화 향기가 은은히 느껴지는데 걸음을 천천히 옮기다 보면, 어느 사이 후각을 강렬하게 자극하는 먹향이 피어오른다.
관람객의 발걸음이 향하는 인터미션 공간에도 짚을 엮어 깔아두었다. 은은한 짚 향과 신발에 느껴지는 조금은 생소한 짚풀의 느낌은 자연스럽게 18세기 조선의 길로 인도한다.
▶MZ를 껴안다= 빛, 소리, 냄새, 질감까지 사용해 관객에게 다감각적 경험을 제공하면서 인스타그래머블하게 연출한 공간은 MZ, GenZ 세대가 화려한 외국 유수 미술관의 IP 못지않은 우리 문화유산의 아름다움과 독창성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 대목에서 간송은 청년들을 적극 끌어안으려 꼭 필요한 꼰대 이미지 조차 버린다.
간송의 소통 |
전시 제목인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 부니 별이 빛난다〉는 간송미술관의 설립자인 간송 전형필(全鎣弼, 1906~1962)이 광복 후 남긴 예서대련, “雲開千里月 風動一天星” 에서 따왔다.
일제 강점기, 어둠의 시대를 지나 광복의 새 시대를 맞이하는 기쁨을 표현한 문장이다.
어둠 속에서 새로운 빛으로 그려낸 우리 문화유산들, 그 상상력을 통해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하는 이번 전시의 기획 의도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글이어서 전시 제목으로 결정됐다.
▶K-컬쳐의 글로벌 확산, 깊은 뜻= 간송미술관 첫 미디어아트 전시 ‘구·달·바·별’은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이머시브 케이(IMMERSIVE_K)시리즈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는 우리 문화유산의 글로벌 확산을 위해 디지털 전시를 기획하는 간송미술문화재단의 새로운 미디어 브랜드이다.
알고보니, 간송미술관과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사실, 간송미술관은 시대와 장소, 매체를 넘어서는 도전을 꾸준히 진행해 왔다.
2014년 DDP 개관전 ‘간송 전형필’에서는 구범석 감독과 함께 간송의 일대기와 심사정(沈師正, 1707 ~ 1769)의 ‘촉잔도권’을 디지털 미디어로 선보였고, 2017년 ‘바람을 그리다’ 전시에서는 위지윅 스튜디오와의 작업으로 혜원전신첩과 해악전신첩을 새롭게 재해석한 미디어 작품을 내놓아 수많은 아트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바 있었다.
간송메타버스뮤지엄(KMM)에서 발행한 훈민정음 해례본과 혜원전신첩 속 단오풍정과 주유청강 NFT 또한 우리 문화유산을 가장 가까이서 향유할 수 있도록 제시했던 시도의 일환이었다. 이와 같은 시도는 ‘단오풍정’ NFT 발행 수량이 완판되며 그 빛을 발했다.
▶다시 간송 답게, MZ도 공감하는 “문~화 보국!”=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한국형 미디어아트 콘텐츠로 널리 알리고자 하는 간송미술문화재단의 시도는 간송 전형필의 문화보국(文化保國)정신의 21세기적 실천이다. K-Pop, K-Food 등이 유행과 흐름의 단계를 넘어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한 것처럼, 간송미술문화재단은 우리나라의 문화유산들이 K-Culture로서 국경과 세대, 시간과 장소를 넘어서 널리 알려지기를 목표로 하며 전시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 부니 별이 빛난다〉 를 통해 그 시작을 알린다.
이번 전시는 오는 8월 15일부터 내년 4월 30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진행된다. 20시(입장은 19시까지) 하니까, 칼퇴한뒤 막바로 가도 감상하는데 지장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