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신한은행 인도 푸네 지점 전경, NH농협은행 인도 노이다 지점, 인도 구르가온에 위치한 우리은행 지점 전경 |
주요국 중 경제성장률 전망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기회의 땅’ 인도 시장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은행권에서도 현지 영업 확대를 위한 ‘인디아 러시’가 시작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몇 년간 막혀있던 해외 진출 길이 뚫린 데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금융 수요가 늘어나며 주요 은행들이 앞다퉈 현지 지점 증설에 나선 것이다.
일각에서는 인도로 막대한 자금이 모여들며 독보적인 아시아 ‘금융 허브’의 지위를 차지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나온다. 주요 은행들은 이미 현지 한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영업에 머무르지 않고, 사업 다각화를 통해 현지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기회의 땅’ 인도를 선점해 글로벌 금융사 도약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다.
▶“지금이 기회” 서둘러 인도 지점 늘리는 은행권=19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올 들어 인도 현지에 약 7개의 영업점을 추가 개설할 계획이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은행권의 인도 지점 수가 16개로 변화가 없었던 것을 고려하면, 올 들어 유난히 빠른 속도로 사업 확장을 추진하고 있는 셈이다.
2019년 2월 인도 구루그람에 첫 지점을 설립한 국민은행은 올해 첸나이와 푸네에 각각 1개 지점을 추가로 설립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 돌입했다. 현재 첸나이와 푸네에는 각각 1명의 개설준비위원장과 2명의 개설위원 등 6명이 파견됐다. 인도 첸나이에는 삼성전자와 현대차 공장이 있다. 푸네에는 포스코·LG전자 등 다수 자동차부품 협력업체가 진출한 상태다.
우리은행은 현재 인도 내 총 3개 지점(첸나이·구르가온·뭄바이)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곧 푸네와 아마다바드에 새로운 지점을 개설해 거점 지역을 5곳으로 늘릴 예정이다. 올 초에는 인도 중앙은행으로부터 지점 개설 예비인가를 획득하기도 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글로벌 대기업 및 국내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지는 곳”이라며 “10월 중 2개 지점 개설이 목표”라고 말했다.
현재 2개 지점(첸나이·구루그람)을 운영하는 하나은행도 뭄바이와 데바나할리 지점 개설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는 금융당국에 신고를 마치고, 인도 중앙은행 앞으로 승인신청서를 제출했다. IBK기업은행은 2015년 뉴델리 지점 이후 약 9년 만에 추가 지점 개설을 추진하고 있다. 2015년 인도 뉴델리에 지점을 낸 이후 9년 만이다.
인도는 생산력을 통해 꾸준한 경제 성장을 보이고 있었지만, 특히 코로나19 시기 이후 매력도가 더 높아졌다. 미·중 패권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글로벌 기업들이 인도로 관심을 돌리며, 새로운 제조업 생산 기지로 떠오른 영향이다. 인도에는 현재 삼성전자·현대차·SK 등 굵직한 국내 대기업들이 진출해 사업 규모를 늘리고 있는 상태다. 은행들의 인도 진출 가속화된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은행권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해서 해외 진출에 제약이 생겼던 와중에 인도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커졌다”면서 “은행들 사이에서도 인도의 성장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형성된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지에 진출한 대기업이나 협력업체들을 대상으로 영업 규모를 확대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빨리 거점 기지를 개설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인도 뭄바이에서 진행된 업무협약식에 참석한 이은형(왼쪽) 하나금융그룹 부회장과 디네시 쿠마르 카라(가운데) 스테이크뱅크오브인디아 회장, C.S 세티(오른쪽) 스테이트뱅크오브인디아 전무이사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하나금융그룹 제공] |
지난 5월 16일 서울 중구 우리금융그룹 본사에서 진행된 업무협약식에 참석한 임종룡(왼쪽) 우리금융그룹 회장과 기리쉬 와그(오른쪽) 타타모터스 최고 경영자 및 타타대우상용차 회장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우리금융그룹 제공] |
▶인도 기업금융은 사업 다각화 ‘초석’=인도에 대한 금융사들의 관심은 비단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기업금융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14억명을 넘어선 인도 인구와 경제 성장 추이를 고려할 때, 소매금융 등 다른 영업 분야에서도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은행들은 이미 인도 내 소매금융·중소기업 시장의 수익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례로 글로벌 은행 HSBC는 인도의 소매금융 및 영세중소기업 대출 부문에서 고객기반을 늘리기 위해 성장성이 큰 도시에 신규 지점을 개소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DBS은행(구 싱가포르개발은행)이 2019년 설립한 현지 법인 DBS 인디아는 현재 20~30%에 머물러 있는 소매금융 등 관련 수익 비중을 최대 60%까지 높일 계획이다. 일본 SMBC도 외화대출 사업을 위한 지점 개소 및 영업에 착수했다.
황원정 국제금융센터 책임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인도가 자국 은행산업 보호 및 소도시 등 낙후 지역 은행보급 확대를 위해 외국계 은행들의 진출을 규제하고 있지만, 글로벌 은행들은 인도 내 소매금융 등 시장의 수익성을 높이 평가한다”면서 “주요 글로벌 은행들이 인도 내 높은 수익성을 기대하고 사업 확대를 추진 중”이라고 분석했다.
신한은행은 1996년 최초로 한인은행을 설립한 후, 2017년부터 소매금융 사업을 시작한 바 있다. 지난 4월에는 학자금 전문 금융기관인 크레딜라에 대한 지분 투자를 진행했다. 2016년에는 국내은행 최초로 인도 뭄바이에 S&T 산하 글로벌트레이딩 센터(GTC)를 구축해 현지 수출 기업 등을 대상으로 환리스크 관리 컨설팅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다른 시중은행들 또한 현지 기업과의 업무협약 등을 통해 사업 다각화를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하나금융은 지난해 인도 최대 국영 상업은행과 글로벌 사업 확대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해외 금융시장 공동투자를 비롯해 IB·무역금융 등 사업을 다각화한다는 게 하나금융 측의 전략이다. 이은형 하나금융 부회장은 당시 협약식에서 “인도 시장에서 선제적이고 능동적인 대응은 물론 다양한 해외사업을 전개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우리금융은 지난 5월 인도 현지 자동차제조업체 타타모터스와 상호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기존 국내 자동차금융 부문에 집중된 협업 분야를 타타모터스 관계사와 벤더사에 대한 금융서비스 제공으로 늘릴 계획이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인도의 경우 타타모터스에 대한 국민의 성원과 신뢰가 높다”면서 “글로벌 시장 진출 확대의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국민은행은 처음 개설한 인도 구루그람 지점에서 수출입금융 외에 캐피탈마켓(자본시장)팀 운영을 통한 FX 및 파생상품 세일즈 등 자본시장 업무 제공을 계획하고 있다. 지난해 인도 노이다 지역에 첫 지점을 개설한 농협은행은 해당 지점을 서남아시아 시장 진출의 거점으로 삼고, 농업과 공공금융 능력을 활용해 다양한 시너지 사업을 전개할 예정이다.
김광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