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삼성바이오, 회계처리 기준 위반”…이재용 ‘회계 부정’ 의혹 재판과 엇갈려

파리 올림픽 참관 등 유럽 출장을 마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7일 오후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를 통해 귀국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신현주 기자]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가 제기한 행정소송 1심 재판부가 삼성바이오의 2015년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 지배력 상실 처리와 관련해 “회계처리 기준 위반”이라고 명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부당 합병-회계 부정’ 의혹 사건에 전부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의 판단과 다소 엇갈리는 판단이다. 같은 사안에 대한 형사소송과 행정소송 재판부의 세부적 판단이 다르게 나온 탓에 항소심에서도 해당 쟁점을 두고 치열한 공방이 오고갈 것으로 보인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최수진 부장판사)는 지난 14일 삼성바이오가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를 상대로 낸 시정요구 등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하면서도 구체적 판단에는 이 같은 내용을 담았다.

재판부는 “삼성바이오는 자본잠식 등의 문제를 회피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별다른 합리적 이유가 없는 상태에서 단독지배에서 공동지배로 변경됐다고 주장하면서 시점을 2015년 12월 31일로 봐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 상실 처리를 했다”며 “이는 회계처리기준을 위반해 에피스 투자주식을 공정가치로 부당하게 평가함으로써 관련 자산 및 자기자본을 과대계상한 것에 해당한다고 판단된다”고 적었다.

앞서 삼성바이오 측은 2015년에 에피스 주요 제품의 국내 판매승인 및 유럽 예비승인 등 바이오시밀러(복제약) 사업의 성과가 나타난 이후 콜옵션(주식매수청구권)이 실질적 권리가 됐고 삼성바이오가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에피스의 합작사인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삼성바이오가 에피스를 단독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바이오젠과 공동지배하게 됐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부분을 인정하지 않았다. 구 삼성물산의 합병 과정에서 삼성바이오의 콜옵션을 부채로 인식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자본잠식을 회피하기 위해 삼성바이오가 지배력 상실 회계처리 방안을 논의하게 된 것이라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지배력 상실 처리’라는 결과를 미리 정해놓고 원인을 거꾸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당초 삼성바이오가 에피스의 나스닥 상장을 지배력 상실의 주된 사유로 고려했지만 나스닥 상장이 무산되자 이를 위해 2015년 말에 있던 ‘에피스 주요 약품에 대한 유럽의약품청(EMA) 산하 약물사용자문위원회(CHMP) 긍정 의견’ 등을 대안으로 주장한 것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바이오시밀러 사업의 성과가 지배력 상실 회계처리의 합당한 이유가 된다는 삼성바이오의 주장도 반박했다. 재판부는 국내 판매 승인 등은 에피스 설립 시부터 이미 계획된 것으로 2012~2015년 에피스 사업계획에 따라 일관되게 진행된 것이고 바이오시밀러 사업의 특성상 제품 개발의 실패 위험이 높지 않아 중대 이벤트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바이오시밀러 제품이 허가기관으로부터 확인을 받아 임상시험에 착수했다는 것은 허가기관이 요구하는 오리지널 신약과 품질 동등성을 확보했다는 의미”라며 “임상에 진입한 경우라면 성공 확률이 상당히 높다고 볼 수 있고 판매승인까지 무난히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재판부는 삼성바이오가 지배력 상실 시기로 2015년 12월 31일을 정해놓고 이를 위한 근거자료를 임의로 만들어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같은 내용은 지난 2월 이 회장 등의 형사사건 1심 재판부의 판결내용과 상이한 지점이다. 당시 재판부는 삼성바이오의 지배력 상실 처리는 합당했고 분식회계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행정소송 1심 재판부는 전제사실이 잘못됐다며 증선위 제재를 취소해야 한다고 결론 내리긴 했으나 각론에서는 회계처리 기준에 위반 지점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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