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헤럴드경제DB] |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전자증권법 시행 이후 코스닥에 상장한 벤처기업은 주권을 발행해 임직원에게 인도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전자등록제도가 시행된 이상 주식을 새로 발행하려면 신규 전자등록을 신청해야 한다는 취지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노태악)는 의료용 생체재료 개발 벤처기업의 전 감사 A씨가 기업을 상대로 “주권을 인도하라”며 낸 소송에 대해 이같이 판단했다. 앞서 1심과 2심은 A씨 측 승소로 판결했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A씨는 2012년 3월, 해당 기업에 감사로 취임했다. 기업은 2014년 12월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A씨 등 임직원 40명에게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을 부여했고, 2015년 12월에 상장했다. A씨는 2018년 3월 “스톡옵션을 행사하겠다”고 했지만 기업이 거절하면서 갈등이 생겼다.
기업 측은 A씨가 스톡옵션 행사에 필요한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했다. 주식 부여일(2014년 12월)부터 2년 이상 재임해야 스톡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데, A씨의 임기가 2015년 7월에 종료됐다고 했다.
이에 대해 A씨 측은 “2015년 3월 정기주주총회 때 감사로 재선임됐다”고 반박했다. 반면 기업 측에선 “당시 주주총회에선 재무제표 승인 건, 이사 증원 건에 관한 결의만 이뤄졌을 뿐”이라며 “A씨를 감사로 재선임하는 의안은 상정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결국 사건이 법원으로 왔다. 1심과 2심에선 A씨가 이겼다.
당시 주주총회에 참석했던 주주가 법원에 증인으로 나와 “A씨에 대한 감사 재선임 안건이 만장일치로 통과됐었다”고 진술한 점이 컸다. 또한 기업이 A씨가 감사로 있음을 전제로 이사회소집통지 이메일 등을 주기적으로 보낸 것도 증거가 됐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17민사부(부장 진상범)는 2019년 10월, “기업은 A씨에게 5600만원을 지급받은 다음 액면 금 500원인 보통주 8만주를 표창하는 주권을 발행해 인도하라”고 판결했다.
2심의 판단도 같았다. 2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18민사부(부장 정선재)는 2020년 9월, “기업은 A씨에게 5600만원을 지급받은 다음 보통주식 48만2443주를 표창하는 주권을 발행해 인도하라”고 했다. 2심은 갈등이 생긴 당시의 주식 가액과 행사하게 된 금액의 차액에 해당하는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설령 기업의 주장과 같이 A씨가 감사로 재선임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는 비자발적인 퇴임으로 본인에게 책임 없는 사유의 퇴임”이라며 “벤처기업법상 이런 경우엔 2년 이상 감사로 재임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스톡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도 원심(2심) 판단에 스톡옵션 행사요건 등에 관해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직권으로 해당 기업이 주권을 발행할 순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전자증권법이 시행된 2019년 9월 이후 상장주식에 대해선 유효한 주권이 발행되거나 존재할 수 없다"며 “주권의 발행·인도를 청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심(2심)의 변론종결일 이전 주식 전자등록제도가 이미 시행됐고, 이때 기업의 주식이 코스닥 시장에 상장돼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며 “A씨가 스톡옵션을 행사하더라도 해당 기업에 주권의 발행 및 인도를 구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기업이 주식을 새로 발행할 경우 주식에 대한 신규 전자등록을 신청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이에 따라 A씨는 기업에 주권을 발행해 인도할 것을 청구하는 게 아니라 전자등록주식에 관해 ‘계좌 간 대체의 전자등록절차를 이행하라’는 취지로 청구해야 승소할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