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경기 부천 모 호텔의 화재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인명 수색과 화재 진압 작전을 논의하고 있다. 이 불로 7명이 숨졌고 다른 투숙객 등 12명이 다쳤다. [연합] |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완강기도 (못 봤고), 대피하라는 안내도 없었어요. 화장실에서 샤워기 틀고 버티며 구조를 기다리다가 기절했어요.”
7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부천 호텔 화재사고 현장에서 20대 여대생 A씨가 대학 실습 때 배운 지식을 활용해 극적으로 구조됐다.
A씨와 가족에 따르면 그는 불이 난 지난 22일 오후 발화 지점으로 지목된 호텔 객실 810호에 인접한 806호 객실에 있었다. 지방 소재 한 대학 간호학과 학생인 A씨는 병원 실습을 위해서 부천으로 왔다가 해당 호텔에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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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전날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 부천시의 한 호텔에서 경찰 및 소방 관계자 등이 합동 감식을 벌이고 있다. [연합] |
전날 오후 A씨는 비상벨 소리에 눈을 뜬 뒤 연기로 가득찬 객실 복도와 마주했다. A씨는 “비상벨이 네 번 정도 울렸다. 화재가 아닐 수 있어서 기다리다 문을 열었는데 복도 전체가 연기로 둘러싸여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복도를 메운 연기는 건너편 객실의 호실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짙었다. 방으로 돌아와 창문을 연 A씨는 밑에서 올라오는 연기에 창문을 도로 닫고 엄마에게 전화했다.
그는 엄마와 119 소방대원의 전화 안내에 따라 화장실로 대피했다. 이후 수건으로 입을 막아 연기를 차단하고, 샤워기를 머리 위로 튼 채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객실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일찍이 구조될 기회도 있었지만, 힘이 풀러 쓰러진 뒤 정신을 잃었다.
A씨는 1시간 뒤 기절한 채로 구조됐다. 그는 구급차에서 산소를 마신 뒤에 정신을 차렸다.
A씨는 “불이 난 후 안전 방송이나 완강기도 없었다”고 말했다. 소방에 따르면 호텔 내부에 완강기가 설치돼 있었지만 투숙객들은 이를 사용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의 어머니는 “화장실에서 사망한 분들도 있는 걸로 안다”며 “딸은 샤워기를 틀고 머리에 대고 있어서 오래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한편 해당 호텔은 스프링클러가 전 층에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소방법 개정 전인 2003년 준공돼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