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이 신규 원전 2기 건설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체코 두코바니 원전의 전경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
미국 원자력발전 기업 웨스팅하우스가 한국 기업의 체코 원전 건설 사업 수주와 관련해 체코 반독점 당국에 진정을 제기했다. 미 대선 경합주의 일자리를 뺏고 있다는 주장까지 펼쳐 웨스팅하우스가 ‘몽니’를 부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웨스팅하우스는 26일(현지시간) 체코전력공사(CEZ)가 한국수력원자력을 두코바니 신규 원전 2기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결정에 항의하기 위해 “체코반독점사무소에 진정을 냈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이에 따르면 웨스팅하우스는 원전 입찰에 참가하는 사업자는 CEZ와 현지 공급업체에 제공하려는 원전 기술을 체코 측에 이전하고 2차 라이선스(특허 허가권)를 제공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이 APR1000과 APR1400 원자로의 원천 기술을 소유하고 있지 않으며 웨스팅하우스의 허락 없이 그 기술을 제3자가 사용하게 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웨스팅하우스만 자사 기술을 수출하는 데 필요한 미국 정부의 승인을 구할 법적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웨스팅하우스는 체코 원전 건설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자사의 AP1000 원자로를 갖고 한수원과 프랑스전력공사(EDF)와 경쟁했지만 탈락했고, 체코 정부는 지난달 17일 한수원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바 있다.
웨스팅하우스는 “AP1000 원자로 대신 APR1000 원자로를 도입하면 미국 기술을 불법으로 사용할 뿐만 아니라 체코와 미국에서 창출할 수 있는 수천개의 청정에너지 일자리를 한국에 수출하게 되며 그 일자리에는 웨스팅하우스의 본사가 있는 펜실베이니아주의 일자리 1만5000개가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웨스팅하우스는 진행 중인 국제 중재와 미국 내 소송을 통해 계속해서 자사 지식재산권을 격렬하게 보호하고 미국 수출통제 규정을 준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재 결정이 2025년 하반기 전에는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체코 정부에 대한 진정 등은 향후 세계시장에서 입지를 넓히려는 한국 원전을 견제하고 한수원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자리를 점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실제 국내 원전 업계가 원전 수주전에서 잇달아 웨스팅하우스를 압도하고 있고, 세계 원전 설비 규모도 향후 성장 가능성이 큰 분야로 꼽히고 있다.
웨스팅하우스 본사 전경 |
웨스팅하우스는 한국이 체코 등에 수출하려는 원전 기술이 자사 기술이라 미국 수출 통제 규정을 적용받는다고 주장하며 2022년 10월 미국에서 한수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9월 미국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은 “원전 수출통제권은 전적으로 미국 정부에 있어 웨스팅하우스는 소송 자격이 없다”며 한수원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웨스팅하우스는 다음 달 항소했고 현재 항소법원에서 소송이 진행되고 있고, 동시에 한국에서는 대한상사중재원의 국제 중재 절차가 진행 중이다.
미국 원전에 기반을 둔 한국형 원전은 미 에너지부의 수출통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체코는 미국과 원자력 협정을 맺고 있어 원전 수출을 위해서는 신고 절차만 거치면 된다. 그러나 웨스팅하우스가 신고 자체를 미루고 있다.
한수원이 내년 3월까지 체코 원전 수주 최종 계약을 맺으려면 미국 정부에 체코 원전 수출을 신고하는 게 바람직한데 그러려면 웨스팅하우스와 지재권 분쟁을 원만하게 해결할 필요가 있다. 이에 웨스팅하우스가 향후 시장 공동 진출을 노리고 몽니를 부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웨스팅하우스의 지배 구조도 한수원과의 분쟁 배경으로 지목된다. 웨스팅하우스우의 본사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있지만 최대 주주는 캐나다 사모펀드인 브룩필드다 리뉴어블 파트너스다. 브룩필드는 2018년 경영난에 처한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하면서 대주주에 올랐다. 2022년 지분 49%를 캐나다 우라늄 업체인 카메코에 넘겼지만, 51%는 브룩필드가 갖고 있다. 사모펀드가 최대 주주가 된 후 한국에 기술 침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눈앞의 수익성을 우선 고려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웨스팅하우스가 한수원이 체코에 원전을 수출하도록 두면 펜실베이니아의 일자리를 뺏긴다고 주장한 점도 주목된다. 펜실베이니아는 이번 대선 승패를 좌우할 경합주로 꼽히기 때문에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이곳의 일자리 문제에 예민하다.
한수원은 황주호 사장이 이달 초 미국에서 웨스팅하우스 경영진과 직접 만나 지재권 분쟁 상황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등 분쟁을 대화로 풀어가려고 하고 있다. 김현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