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 불법파업에 우리가 번아웃”…간호사도 내일 파업 ‘초읽기’

대한간호협회 탁영란 회장과 손혜숙 부회장이 20일 서울 중구 협회 서울연수원에서 의사집단 행동에 따른 간호사 법적 문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 종사자들이 속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별노조인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29일 조속한 진료정상화,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한다.

전공의 집단이탈로 시작한 의료공백 사태가 반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병원 노동자들이 병원을 떠나는 만큼 의료 현장의 혼란과 환자들의 불편이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28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보건의료노조는 노사 협상이 타결되지 않는 한 이날 저녁 각 의료기관별로 총파업 전야제를 개최한 뒤 29일 오전 7시를 기해 파업에 돌입한다.

보건의료노조는 간호사를 중심으로 간호조무사, 의료기사, 약사, 치료사, 요양보호사 등 의료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가입한 산별노조로, 조합원이 8만2천명에 육박한다. 의사는 일부만 가입해 있지만 의료계의 다양한 직역이 속해 있다.

총파업 대상 의료기관은 모두 61곳이다.

고려대의료원, 한양대의료원, 중앙대의료원, 강동경희대병원, 조선대병원, 한림대의료원, 이화의료원, 노원을지대병원, 대전을지대병원 등 사립대병원이 19곳이다.

이가운데 절반인 31곳이 지방의료원이나 국립중앙의료원 등 공공병원이다. 중소병원은 12곳이다.

수도권 대형병원인 ‘빅5’ 병원 가운데서는 서울아산병원과 성모병원이 보건의료노조에 속해있지만, 쟁의 사업장은 아니다.

노조는 지난해 19년 만의 총파업을 이틀간 벌인 바 있는데, 이번에 돌입할 계획인 사업장은 작년 140곳(4만5000명 참여)의 절반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정부 의대증원에 반발하며 의료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으며 의료공백이 이어진 21일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관계자들이 휴식하고 있다. [연합]

노조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 분만실, 신생아실 등 환자 생명과 직결된 업무에 대해서는 필수인력을 투입할 계획이다.

작년보다 파업 의료기관이 적고 빅5 등 대형병원 노조는 파업에 나서지 않지만,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을 이미 떠난 지 오래된 상황에서 간호사 등 다른 의료 직역의 역할이 커진 점을 고려하면 파업으로 인한 의료 현장의 혼란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간호사를 비롯한 보건인력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배경에는 의사 이탈로 인한 의료공백 장기화 상황에서 입은 과중한 업무 등의 피해가 작용했다. 노조는 의사들의 불법적인 집단행동이 가져온 경영 악화 상황인데도, 병원 측이 간호사 등에게 장기 휴직 등의 고통 분담을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노조는 지난 24일 파업 가결 소식을 알리며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끼니를 거르고, 폭언·폭행에 시달리며 의사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몇 배로 늘어난 노동강도에 번아웃(소진)되면서 버텨왔다”며 “의사들의 집단 진료거부가 부른 의료공백으로 인한 경영위기 책임을 더 이상 보건의료 노동자들에게 떠넘기지 말라”고 강조했다.

진료지원(PA) 간호사에 대한 법적 근거가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겪는 혼란을 해소하라는 것도 노조의 요구 사항이다. 여야가 각각 PA 간호사의 합법화를 위한 간호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관련 법안이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하며 난항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28일 간호법이 국회 논의 과정에서 급물살을 타면 파업을 앞두고 노조의 반발이 누그러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관련 이슈가 노조의 여러 요구사항 중 하나일 뿐인 만큼 법 통과가 파업 여부를 가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응급·중증 등 필수진료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감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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