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계 “기후 분야 외 지속가능성 정보 공시, 기업 선택에 맡겨야”

지난해 말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제2차 ESG 경영위원회’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제공]

[헤럴드경제=서재근 기자] 한국경영자총협회(회장 손경식)는 ‘국내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공개초안’ 관련 경영계의 입장을 담은 의견 제출을 완료했다고 28일 밝혔다. 이번 의견 제출은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가 이번 달까지 이해관계자 의견조회를 종료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경총 측은 “파리협정 이후 국제적 공감대가 보편적으로 형성된 기후 분야부터 공시를 추진하되, 기후 분야 외 지속가능성 관련 정보는 기업이 주제별로 선택해 공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일반 재무제표 정보와 달리 지속가능성 관련 정보는 데이터를 획득·관리하는 데 사회적으로 많은 비용과 노력이 요구되는 만큼 우선순위를 고려해 기후 분야 공시부터 순차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주요 쟁점사항 가운데 하나인 공급망 내 온실가스 배출량, 이른바 ‘스코프(Scope) 3’ 공시에 관해서는 “데이터를 신뢰할 수 없는 기술적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산업계 전체가 과도한 비용 부담과 그린워싱 리스크에 무방비로 노출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경총은 “기업들은 통일된 스코프 3 배출량 산정기준이 확립돼 있지 않아 물리적 공시 부담을 가늠하기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며 “국제적으로 널리 활용되는 ‘GHG 프로토콜’의 경우 원재료 조달에서 제품 폐기까지 최대 15개의 배출량 산정 범위를 제시하고 있지만, 개별 기업의 해석에 따라 적용하는 산정 범위가 다르고 동일한 산정 범위 내에서도 산정 방법에 따라 배출량 값은 크게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스코프 3 배출량 데이터가 대부분 추정치라는 점도 정보의 유용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공급망 내 중견·중소기업은 배출량을 일일이 측정하기 어렵고, 설령 측정했다고 하더라도 그 값을 그대로 신뢰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과도한 비용 부담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경총은 재계 순위 20~30대 그룹 회사에서 전문컨설팅, IT시스템 개발·구축 및 유지 등 스코프 3 배출량 공시를 위한 내부 준비에만 연간 최소 3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검·인증 비용과 원재료별 전 과정 평가(LCA) 데이터 수집 비용이 제외된 수치다.

아울러 경총은 기준서 제101호(정책 목적 달성을 위한 추가 공시사항)에 대해 “‘지속가능성’ 개념이 과도하게 확장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내용상 국제적 정합성도 떨어지며, 부처별로 기업 정보공개 제도가 이미 있는 상황에서 중복공시 부담만 늘어날 것”이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경총은 또 공시 의무화 일정과 관련 “올해 말 공시기준이 확정되더라도 기업 현장의 안정적 공시 시스템 구현과 정부 차원의 제도 정비 및 기반 조성까지 갈 길이 먼 만큼, 2028년 회계연도부터 ‘거래소 공시’를 적용(2029년 공시)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제안했다.

우리나라는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제조업 중심 산업구조를 갖고 있고, 기업규모에 따른 역량 차이가 매우 커, 생산기반을 해외에 둔 유럽연합(EU)이나 미국과 달리 공시 이행력 확보를 위한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동근 경총 상근부회장은 “회계기준원의 공시기준 공개초안 발표 이후 경총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위원회와 실무위원회를 여러 차례 소집하며 공시 준비 상황과 여건을 종합적으로 점검해 왔다”며 “국제 동향도 살펴야겠지만, 국내 현실에 부합하는 ‘한국형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마련을 위해 정부가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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