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 [AFP] |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가 27일(현지시간) 미국과의 핵 협상에 대해 어떤 장애물도 없다고 밝혀 그 배경과 의도가 주목되고 있다.
하메네이는 이날 이란 국영 TV로 방송된 영상에서 이란 정부가 적과 논의하는 데 “장벽이 없다”며 미국과의 핵 협상 추진을 시사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하메네이는 “어떤 곳에선 같은 적과 관계를 맺는 것은 모순이 아니며 장벽도 없다”며 “문제는 우리의 희망을 적에게 걸고 신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이런 발언은 이란과 이스라엘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중도 개혁파인 마수드 페제시키안 신임 이란 대통령 및 내각과의 회의에서 나왔다.
하메네이가 이란의 핵 프로그램과 서방의 제재에 대해 이란과 미국의 비공식 채널을 통한 대화보다 더 실질적인 협상 의사가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인지는 아직 불분명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달 말 취임한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대선 운동 때 이란 경제를 마비시키는 서방의 제재를 해제하기 위해 서방과 핵 협상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지난 5월 이란 내 강경파인 아브라힘 라이시 당시 대통령이 헬리콥터 추락사고로 숨지고 그 후임으로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등판하면서 이란과 서방 간에 대화의 물꼬가 트일 수 있다는 기대가 생겼다.
하메네이도 페제시키안 대통령의 제재 완화 목표는 공유하는 것으로 관측되지만, 이란 권력 구조상 보수 강경파의 목소리가 크고 그 중심에 있는 하메네이가 최종 의사 결정권을 갖고 있어 외교 정책에 대한 페제시키안 대통령의 입지가 얼마나 클지는 불확실하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가운데 누가 승리하느냐도 변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때인 2018년 이란과 서방의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파기하고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복원했다.
이란은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비롯해 중동의 친이란 무장 단체들에 대한 군사적 지원으로 미국과 대척점에 서있다. 또 자국 수도 테헤란에서 하마스 수장 이스마일 하니예 암살이라는 수모를 당한 뒤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 공격을 벼르고 있어 미국의 우려를 사고 있기도 하다.
미국외교협회의 이란 전문가인 레이 타케이 선임연구원은 하메네이의 이번 발언과 관련해 “(이란) 이전 행정부의 많은 사람은 트럼프를 예측할 수 없는 인물로 보기 때문에 트럼프와 협상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본질적으로 해리스가 승리할 경우를 가정해 협상의 매개변수를 설정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다른 미국의 이란 전문가인 메르자드 보루제르디는 하메네이의 발언이 미국과의 공개적이고 직접적인 대화에 대한 청신호를 뜻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최근 몇 년간 그의 공개 발언은 다소 일관성이 없다고 평가했다.
미국 국무부 대변인실은 하메네이의 발언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미국은 이란의 말이 아닌 행동으로 판단할 것이며 양국의 갈등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