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공지능(AI) 신기술을 활용한 딥페이크 성범죄가 잇따르고 있지만, 법원 판결은 대개 집행유예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조계에서는 기술 발달로 딥페이크가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교묘해진 데다 피해가 광범위하게 확산하는 디지털 성범죄 특성을 고려해 처벌 수위를 더욱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경찰청에 따르면 딥페이크 성범죄 발생 건수는 ▷2021년 156건 ▷2022년 160건 ▷2023년 180건으로 점차 증가하다, 올해에는 1월부터 7월까지 7개월 간 총 297건으로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딥러닝(Deep Learning)과 ‘가짜’를 의미하는 페이크(Fake)의 합성어인 ‘딥페이크(Deep Fake)’는 기존 사진이나 영상을 AI 기술을 활용해 다른 사진·영상에 합성하는 기술을 말한다. 최근 AI 기술 발달로 누구나 쉽게 허위 영상물을 제작할 수 있게 되면서 지인·유명인의 얼굴을 성적인 이미지·영상에 합성하는 ‘딥페이크 성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기술에 민감한 10대 청소년을 중심으로 딥페이크 제작·범행이 증가하며 경찰도 적극적인 단속에 나섰다.
딥페이크 성범죄 발생 건수에 비례해 10대 피의자 수도 2021년부터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전체 피의자 수는 ▷2021년 78명 ▷2022년 85명 ▷2023년 120명 ▷2024년(1~7월) 178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10대 피의자 수는 ▷2021년 51명 ▷2022년 52명 ▷2023년 91명 ▷2024년(1~7월) 131명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경찰이 적극 수사 방침을 밝혔지만 안팎에서는 딥페이크와 같은 디지털 성범죄 수사를 두고 고민이 깊다. 디지털 성범죄는 글로벌 플랫폼과 기술을 오가며 초국가적인 형태로 발생한다. 피의자 특정, 피해 사실 수집 등을 위해서는 국제 공조 수사가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유럽 사이버범죄 방지 조약(부다페스트 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라 딥페이크 성범죄 수사에도 어려움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위장수사도 불가능하다. 경찰은 현재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아동·청소년성보호법(아청법)을 근거로 위장수사를 할 수 있지만, 성인 성착취물에 대해선 법적 근거가 미비해 사실상 위장수사를 할 수 없는 처지다. 경찰은 딥페이크 범죄가 급증하고 있는 만큼 위장수사 범위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어렵게 수사해 재판에 넘겨질지라도 처벌이 약한 점 또한 문제다. 딥페이크가 ‘범죄’가 아닌 일종의 ‘놀이문화’가 된 것이 배경으로 꼽힌다. 현행법상 딥페이크 성착취는 피해자가 성인일 경우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허위 영상물 등의 반포)에 따라 처벌된다. 법정형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영리 목적일 경우 7년 이하의 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다. 피해자가 19세 미만 아동·청소년일 경우에는 아청법 제11조(아동·청소년성착취물의 제작·배포 등)가 적용된다. 제작·배포시 최소 징역 3년에서 최대 무기징역, 소지·시청 시 1년 이상의 징역 선고가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 처벌 수위는 이보다 낮다. 헤럴드경제가 최근 2년 동안 확정·공개된 딥페이크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총 8개의 사건 중 실형이 선고된 사례는 2건에 불과했다. 또 2건은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됐으나 2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됐다. 8건 중 4건은 1심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돼 항소하지 않거나, 항소 기각돼 확정됐다. 판결문이 공개되지 않은 사례까지 더하면 이미 딥페이크 판결만 수십 건에 달할 정도로 광범위하게 범죄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번 사례와 유사하게 텔레그램방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유포한 사례가 2심에서 감형되기도 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2000~3000명이 참여하는 텔레그램방을 운영하던 중, 주변 지인의 사진으로 딥페이크를 만든 후 텔레그램방에 배포했다. A씨는 딥페이크 영상과 함께 피해자의 개인 S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 아이디, 전화번호 등도 함께 게시해 2차 피해를 유발했다. 1심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으나 2심 재판부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으로 감형했다.
김경환 법무법인 민후 대표변호사는 “AI 기술이 악용된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딥페이크는 제작자 의도에 따라 음란성이 더 높은 형태로 만들 수 있어 위험하다”며 “처벌이 약해 딥페이크 제작·유포가 심각한 범죄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엄벌해 사회적 분위기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현행법상 딥페이크는 소지를 처벌하지 않는다. 소지만으로도 처벌되는 아청법, 불법촬영물에 비해 재판부가 약하게 처벌하는 이유 중 하나”라며 “딥페이크물 소지를 처벌하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지영·이용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