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이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대한응급의학의사회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의료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응급실 파행이 속출하는 가운데, 현장의 최일선에 있는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한국의 의료체계가 붕괴하고 있다며 다가오는 추석에 혼란이 더해질 것이라 강조했다. 이들은 현재의 상황을 ‘의료재난’으로 보고 의료정상화를 위한 1000만명 서명 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30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정기학술대회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은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날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현재의 응급의료는 재난상황으로 붕괴하고 있지만 붕괴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현장의 위기감은 고조되는데 정부는 위기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가 전국 응급실 대부분에 문제가 없다고 한 것은 거짓말”이라며 “정부가 생각하는 위기는 문 닫는 것이고 문만 열려 있으면 위기가 아니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문을 열어도 기능을 못 하면 그게 위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가올 추석에는 응급의료대란으로 많은 환자들이 길거리를 헤매다 사망할 것이며 지치고 탈진한 의료진의 이탈로 혼란은 더욱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의료계를 무시한 정부는 혹독한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며 그 비용은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오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의사회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응급의료에 대한 형사책임 면책 실시 ▷119(구급차 이용) 유료화 ▷응급실 전담전문의 전문과목 표시 관련 법률 제정 ▷중앙응급의료센터 독립 및 상설 논의기구 마련 등 응급의료 개선책들을 내놓았다.
이형민 회장은 “조속한 입법을 통한 ‘형사책임 면책’만이 현장 의료진 유출을 막을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응급의료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한정적인 응급의료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위한 119 유료화를 제언했다. 이형민 회장은 “119가 무료라는 인식 때문에 도덕적인 해이나 인프라 낭비 같은 문제점이 생기고 있다”며 “(이용료를) 일괄 부과한 후 나중에 건보공단에서 평가해 중증인 경우 환급해 주는 식으로 제도를 바꾸자”고 했다.
아울러 의사회는 “무너져 가는 응급의료를 정상화하기 위해 1000만명 서명운동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전국 응급의료기관, 필수의료과목 의사들과 협력해 서명운동본부를 발족하고 시민단체, 정치권과도 교감하겠다고 예고했다.
한편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한국 면허로 캐나다에서 의사하기’ ‘미국 의사 되기’ 등의 제목을 단 강연들이 열려 눈길을 끌었다. ‘더는 버티기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해외로 눈을 돌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