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영끌시대’보다 가파르다…막차수요 패닉 대출 [가계대출 전쟁]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강승연·홍승희·김광우 기자] 은행권이 유주택자의 신규 주택담보대출을 사실상 틀어막는 초강수를 둔 것은 역대급으로 불어난 가계대출 속도 조절을 위해서다. 대출규제 강화 전 몰려든 ‘막차 수요’로 대출이 지나치게 늘자, 은행의 수익기반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계산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 광풍이 불던 2021년보다 대출 증가세가 가파른 만큼, 이달에도 증가세 완화 조짐이 보이지 않으면 대출 전면 중단과 같은 특단의 대책까지 동원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는 부동산 열풍에 영끌족들이 ‘패닉바잉’(공황구매)에 뛰어들었던 2021년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8월 중 가계대출·주담대 증가액은 각각 9조6259억원, 8조9115억원으로 은행들이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16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였다.

특히 올들어 진정을 찾아가던 신용대출마저도 심상찮은 증가세를 보였다. 8월 말 가계 신용대출 잔액은 103조4562억원으로 7월 말보다 8484억원 늘었다. 이 같은 증가폭은 2021년 7월(1조8637억원) 이후 3년 1개월 만에 최대 기록이다. 최근 두 달여간 은행들이 주담대 금리를 잇따라 올리며 주담대 축소 시그널을 보내자, 신용대출로 대출 수요가 이동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서 전세살이 중인 직장인 김모(39) 씨는 “연말에 전세계약을 연장하거나 매매도 알아보려고 했는데 주담대 받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들어 일단 마이너스통장을 마련해놨다”며 “한도가 예전만큼 안 나온다고는 하지만, 아예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풍선효과는 금융당국이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를 시행하며 본격적인 가계대출 죄기에 나선 이달이 대출 증가세 향방을 가를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미 은행들의 릴레이 금리 인상에 ‘금리 역전’이 발생한 2금융권이나 지방은행으로 차주들이 몰려가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어서다. 최근 보험사들이 부랴부랴 주담대 금리를 인상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금융상품통합비교공시에서 만기 10년 원리금분할상환 방식 주택담보대출로 1억원을 빌린다고 가정했을 때, 부산은행의 대출금리가 2.92~4.22%로 가장 낮았고 신협 일부 단위 조합(3.50~5.70%)이나 삼성생명(3.59~4.94%) 등 2금융권 대출금리가 주요 시중은행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은행들이 내놓은 초강수 대출관리 대책이 이달 초부터 시행되는 만큼, 가계대출 증가세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 시중은행들은 유주택자의 주담대·전세자금대출 중단, 주담대 만기 축소(40~50년→30년), 생활안정 목적 주담대 한도 감축(2억원→1억원) 등 대출 대상과 한도를 대폭 축소하는 자체 가계부채 관리 대책을 마련해 이달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여기에 농협은행도 6일부터 2주택 이상 다주택자의 수도권 주담대와 조건부 전세자금대출을 한시 중단하겠다고 이날 발표했다.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도 이날부터 유주택자에게 주택 구입 목적의 주담대를 중단한다.

주요 은행들이 가계대출 관리 강화 카드를 앞다퉈 꺼내든 것은 금융당국의 압박을 무시하기 힘들어서다. 앞서 금감원은 올해 가계대출 증가액이 경영계획을 초과한 은행에 대해 내년도 DSR 관리목표를 더 낮추도록 지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30%대 초반 수준인 은행별 DSR을 낮추려면 주담대는 물론 가계대출 전반의 한도 축소 정책이 불가피하다. 금감원은 한 발 더 나아가 고위험 대출의 DSR 관리를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앞으로 주담대 등 가계대출 열기가 가라앉지 않으면 은행들이 추가 이자수익 타격을 감수하고 고육책을 고민할 수도 있다. 영끌 광풍인 2021년에는 농협은행을 시작으로 일부 시중은행들이 신규 주담대와 전세자금대출 판매를 전면 중단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금감원이 풍선효과를 막기 위해 시중은행과 2금융권에 신용대출 한도 축소를 요청해 신용대출 한도는 연소득 이내로, 마이너스통장 한도는 5000만원 수준으로 제한되기도 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지금 은행들이 각종 대출규제 방안을 내놓은 것은 지금이 2021년 부동산 열풍 때보다 심각한 상황이라고 판단한 것”이라며 “미국의 금리 인하 사이클이 시작되고 부동산 경기 회복세가 확산되면 대출수요가 더 자극될 텐데, 풍선효과 방향에 따라 당분간 대출 중단, 한도 축소 같은 고강도 대책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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