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편입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이후 은행권의 투자상품 판매가 주춤한 가운데, 주요 은행들이 퇴직연금 상품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은퇴시점에 따라 위험자산 비중을 조절하는 타깃데이트펀드(TDF)가 각광받고 있다.
5일 헤럴드경제가 집계한 지난 7월 말 기준 4대 시중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의 TDF 판매잔액은 6조6882억원으로, 지난 12월 말(5조3149억원) 대비 25.84%나 급증했다. TDF 판매잔액이 가장 많은 국민은행은 지난달 기준 판매잔액이 2조원을 넘겼다.
TDF는 투자자의 은퇴시점을 고려해 생애주기별로 자산을 배분해주는 상품으로, 가입자가 스스로 포트폴리오를 짜야 하는 기존 연금상품과 달리 은퇴 시점을 정해주면 알아서 자산별 비중을 조정해준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정해진 날짜에 맞춰 주식비중과 채권비중을 조절해 자동으로 포트폴리오를 조절해주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한 펀드로 꼽힌다. 경제활동기에는 상대적으로 높게 위험자산을 가져가는 게 일반적이고, 은퇴날짜가 가까워질수록 안전자산 비중이 늘어나게 된다. 노후자산을 운용하기 위한 유용한 수단으로, 생애주기펀드라고 불리기도 한다.
최근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의 창구 직원은 “TDF는 청년기에는 성장주와 고수익 채권 등에 자산을 집중해 수익률을 끌어올리고, 은퇴시기가 가까워지면 배당주와 국채 비중을 높여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식”이라며 “이전에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안의 한 종목 중 하나로 ELS 판매를 했었지만 현재는 팔고 있지 않고, TDF 상품을 많이 추천드리고 있다”고 부연했다. TDF가 은퇴 후 노후자금 등을 불리기 위해 소비자들이 찾던 ELS의 대체재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은행들이 TDF 판매에 열올리는 이유는 최근 ELS와 같은 특정금전신탁 상품의 판매 수수료가 급감해 돌파구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해 H지수 편입 ELS 상품의 대규모 손실사태가 발생하자 은행들은 우리은행을 제외하고 ELS 상품을 전면 취급 중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탁상품의 신규취급이 줄고, 중도해지가 늘어나자 은행들의 비이자이익이 줄기 시작하면서 대체재가 필요하게 됐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비이자이익을 일정부분 이상 벌어들여야 하는데 벌 데가 없다”며 “각 사업부는 수수료를 벌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모색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TDF 역시 여전히 손실위험은 존재한다. 김현 우리은행 투자상품전략부 애널리스트는 “TDF는 기본적으로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손실 위험이 따른다”며 “단순히 수익률이 좋아서 비대면으로 가입하는 경우가 있는데 자신이 공격형인지 안정형인지 투자성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은퇴시점을 고려해 상품을 구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은행창구에서는 예·적금 상품의 또 다른 대체 상품으로 저축성보험에 대한 추천도 이어가고 있다. 저축성보험은 은행 수신상품 대비 금리가 높고, 계약 때 약속한 금리가 만기 때까지 유지되는 확정금리형 상품도 있어 금리 인하기 ‘막차’수요가 몰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 7월 기준 ‘생보사 저축성보험 요약공시’에 따르면 현대해상의 저축성보험 실질수익률은 3.8%에 해당했다. 은행 예금금리가 높아봐야 3.7%대인 걸 감안하면 보험상품 가입이 더 높은 수익률을 보장받을 수 있는 셈이다.
시중은행 직원은 “보험은 원래 보장성 상품이 주를 이뤘는데, 요즘은 보험을 가입 안 하는 고객들이 많아졌다”며 “중도해지 없이 만기가 됐을 때 정해진 만기 보험금이 보장되고, 비과세 혜택도 주어지기 때문에 월 2억~3억원씩 여유가 있는 분들에게는 은행에서도 보험 상품까지 팔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동결에도 은행의 예금금리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은행권의 전월취급 평균 예금금리는 3.09~3.72%에 해당한다. 장기투자·고수익을 원하는 투자자들의 시선이 다른 투자상품으로 쏠리는 배경이다. 홍승희·정호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