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딥페이크 성범죄 기승인데…피의자 잡는 ‘위장수사’ 예산은 제자리

6일 저녁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한국여성의전화 주최로 열린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 대응 긴급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박준규 기자] 딥페이크(Deepfake)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성범죄가 연령대를 막론하고 들불처럼 번지면서 가해자를 발본색원하기 위한 수사기관의 언더커버(위장수사)가 확대돼야 한단 목소리가 커진다. 하지만 경찰에 내년에 배정된 위장수사 관련 예산은 동결된 것으로 파악됐다.

9일 경찰청이 국회 조승환 의원실(국민의힘)에 제출한 ‘디지털 성범죄 관련 예산 및 예산 세부 내역’을 보면 경찰청이 요구한 디지털 성범죄 내년 예산은 총 8억8300만원. 올해 예산과 견줘 48.9%(2억9000만원) 증가했다. 이는 기획재정부가 이달 초 국회에 제출한 정부안(案)으로, 국회에서의 논의와 심의를 거쳐 연말에 확정된다.

외형적으론 디지털 범죄 대응 예산이 확대됐다. 아동 성착취물을 삭제하고 접속 차단을 위한 국제대응 플랫폼 구축·고도화 예산(9000만원)이 새로 반영됐고, 기존 운영 중이던 ‘불법 촬영물 추적시스템’을 고도화하기 위한 예산도 2억원 증액돼서다. 이들 항목은 온라인에 몰카 영상이나 불법 합성물이 온라인에 게재된 사실을 탐지하고 삭제, 확산 방지를 목적으로 하는 예산이다.

[챗GPT로 제작한 딥페이크 불법 합성물 관련 이미지]

정작 범죄 피의자를 붙잡을 수 있는 위장수사 예산은 제자리에 머물렀다. 경찰청의 ‘아동 청소년 디지털 성범죄 위장수사 지원’ 예산은 1억5200만원으로 올해와 동일하다. 이 재원은 일선 수사관들이 위장수사(신분비공개·신분위장수사) 과정에서 사용하는 휴대전화·노트북·위조기기 같은 장비 확보와 IP 우회 접속을 위해 가상 사설망(VPN) 서비스 이용료 등에 활용한다. 말 그대로 수사실무를 지원하기 위한 각종 비용에 투입하는 예산이다.

익명의 온라인 공간에서 딥페이크 불법 합성물이 만들어지고 유포되는 범죄가 빗발치며 위장수사를 확대해야 한단 목소리가 커지지는 상황. 하지만 경찰의 예산이 잡힌다는 것은 경찰의 위장수사 여건이 올해와 비슷한 규모로 유지된단 얘기다.

경찰도 향후 위장수사관과 가용장비 규모를 확충하길 희망한다. 다만 그 전에 위장수사를 벌일 수 있는 범위가 법적·제도적으로 확대되어야 하는 선결과제가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내년 예산은) 일단 기재부와 정리된 단계”라면서 “법 개정 등으로 위장수사 범위가 확대되는 등의 변화가 생긴다면 추가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에선 관련법 개정을 위한 기초가 놓였다. 현재로선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 수사에서만 허용되는 위장수사 특례를 성인 대상 범죄에도 적용하는 내용의 법안(성폭력처벌법 개정안) 등이 발의됐다. 다만 위장수사가 피해자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 등도 거론되는 등 쟁점화될 여지도 있다. 법안이 국회 절차를 거쳐 입법에 성공할지는 향후 논의를 지켜봐야 하는 처지다.

장응혁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이 예산을 무장적 증액 신청할 순 없을 것”이라면서 “다만 사이버 범죄는 크게 증가하고 있고 담당 수사부서의 부담은 꾸준히 지적된 만큼 (향후) 예산과 인력 증원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