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2%라지만 “내수 힘들다”

지난달 23일 서울 한 대형마트의 과일 판매대 [연합]

“우리 물가가 2% 정도로 전년에 비해 안정되기 시작했다.”

지난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를 기록하면서 5개월 연속 2%대 물가상승률을 기록하자, 지난 3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정부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통계청이 발표한 물가가 피부로 체감하는 물가와 괴리가 크기 때문이다.

4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20년 0.5% 수준이던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1년 2.5%, 2022년 5.1%, 2023년 3.5%로 가파르게 치솟았다. 전날 통계청이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로 3년 5개월(41개월) 만에 최저 상승률을 기록했지만, 이 역시 전년 8월 소비자물가에 견줘 2.0% 상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년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4%에 달했다. 올해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를 기록했지만 체감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기저효과 탓이란 분석이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물가가 안정을 되찾았다고 판단하는 근거는 가격 변동성이 큰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가 1.9% 상승하면서 지난 7월보다 둔화됐다는 점이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근원물가 지표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의 상승 폭도 2.1% 수준이다. 하지만 실제 시민들이 자주 구매해 지출 비중이 높은 144개 품목으로 구성돼 ‘장바구니 물가’라고 불리는 생활물가지수는 전체 상승률 2.0%를 웃도는 2.1%를 기록했다. 게다가 생활물가지수는 작년 8월 3.9% 상승한 이후 지난 6월(2.8%)을 제외하곤 줄곧 3~4%대의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먹거리 가격이 크게 올랐다는 것도 2%대 물가상승률을 믿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실제 8월에도 전체 물가상승률이 2.0%인 가운데 어류, 조개, 채소, 과실 등 신선식품지수는 3.2% 큰 폭 올랐다. 작년 10월부터 올해 6월까지 상승률은 무려 20%에 육박한다. 지난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금(金)사과’ 논란이 컸던 것도 그래서다. 당장 9월 추석 연휴가 2주 앞으로 다가왔지만, 배는 120.3%, 사과는 17.0%나 올라 그 상승폭이 9.6%에 달했다. 명절에 빠질 수 없는 배, 사과 등 과일 등이 지속해서 고공 행진을 한 탓에 물가 체감도는 여전히 높을 수밖에 없다.

각 가계의 소비여력이 퇴보한 것도 많은 이들이 ‘물가 안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도 ‘실질임금’은 줄었다. 실질임금은 통장에 찍힌 명목임금을 소비자물가지수로 나눠 백분율로 환산하는,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돈의 실질적인 가치를 말한다. 올 상반기 근로자 1인당 월 평균 임금총액(명목임금)은 403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4% 증가했다. 하지만 실질임금은 354만3000원으로 오히려 0.4%(1만5000원) 줄었다. 임금 상승률이 치솟은 물가를 쫓아가지 못했다는 뜻이다.

고용부는 지난 2011년부터 실질임금 통계를 집계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시기인 2022년 전까진 단 한번도 감소한 적이 없다. 하지만 2022년 0.2% 감소세를 기록했고, 2023년엔 감소폭이 1.1%까지 더 커졌다. 올해에도 6월까지 또 다시 0.4% 감소한 만큼 2024년 연간 실질임금 역시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3년 연속 실질임금이 감소하는 셈이다.

게다가 각 가계의 빚 부담도 크게 늘었다. 실제 2분기 대출·카드 사용 금액을 합친 가계신용 규모는 1896조2000억원으로 13조8000억원이 늘었다. 임금은 줄었는데, 이자 부담은 늘어난 셈이다.

이러다보니 쓸 돈이 없다. 실제 7월 소매판매지수는 전월보다 1.9% 하락한 100.6을 기록했다. 이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내수가 극도로 쪼그라들었던 2020년 7월 98.9에 가까운 수치다. 내수 침체 시 정부는 통상 재정을 확대해 이를 부양한다. 그러나 올해 세수 결손 규모는 30조원대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기획재정부는 내년 예산안도 긴축재정을 고수해 재정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내수가 안좋아서 물가가 떨어진 것”이라며 “물가가 낮아진 것은 경제의 좋은 모습만 반영한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김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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