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키시마호’의 스틸컷. |
[헤럴드경제=홍승희 기자] 일본 정부가 80년 가까이 은폐해 온 우키시마마루(浮島丸·이하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의 피해자 명부 일부를 우리 정부에 제공했다.
외교부는 5일 "그간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를 입수하기 위해 일본 정부와 교섭을 거친 결과 일측으로부터 승선자 명부 일부를 제공받았다"고 밝혔다.
일본은 확보한 75건의 자료 중에서 내부 조사를 마친 19건을 우선 주일한국대사관을 통해 제공했다.
정부가 이날 제공받은 자료의 목록명은 ▷ 승선 명부 1945년 8월 24일 승선 ▷ 승선자 명부의 건 보고 ▷ 승선 반도 노무자 명부 1945년 8월 ▷ 우키시마마루 승선자 명부 ▷ 우키시마마루 승선 조선인 명부 1945년 8월 22일 ▷ 우키시마마루 조난자 명부 1945년 8월 24일 ▷ 사망자 명부 등이다.
이들 자료에 전체적으로 몇 명의 사망자·생존자 등 개인 정보가 담겼는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일부 자료에는 성명은 물론 생년월일과 본적 등 비교적 구체적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으로부터 강제징용 노동자 명부를 입수한 것은 지난 2007년 '한반도 출신 구(옛) 군인·군속의 공탁서 정본의 사본'을 받은 이래 17년 만이다.
일본은 다른 자료들도 내부 조사가 완료되는 대로 제공할 예정이라고 외교부는 전했다.
우키시마호는 1945년 광복 직후 귀국하려는 재일 한국인들을 태우고 부산으로 향한 일본의 해군 수송선이다. 1945년 8월 22일 아오모리현 오미나토항을 출발해 이틀 뒤인 24일 교토 마이즈루항에 기항하려다 선체 밑부분에서 폭발이 일어나 침몰했다. 탑승자들은 대부분 강제노역 피해 노동자들로 알려졌다.
일본은 우키시마호가 해저 기뢰를 건드려 폭침했고 승선자 3700여명 중 524명이 숨졌다고 발표했으나, 유족들은 일본이 고의로 배를 폭파했고 승선자 7500∼8000명 중 3천명 이상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사고 후 수년간 선체를 인양하거나 유해를 수습하지 않아 의혹을 키웠고 지금까지도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지 않았다.
외교부는 일본의 자료를 모두 넘겨받으면 사건의 진상 및 사망자·생존자 규모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에 확보한 자료를 피해자 구제에 활용할 예정이다. 특히 근거 자료 부재로 과거 정부 차원의 위로금 지급 신청을 기각·각하 당한 희생자 유족에 대한 위로금 지급 재심의에 명부를 활용할 계획이다.
과거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 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를 통한 위로금 지급 당시 우키시마호 승선 피해자는 자료 부재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외교부는 "명부는 희생자 분들의 개인 정보를 다수 포함하고 있다"면서 "국내 법령에 따라 정보를 열람 또는 제공받을 권리가 있는 자에게 제공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한국 정부와 유족들의 거듭된 공개 요구에도 불구하고 승선자 명부가 우키시마호 침몰로 상실됐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일본은 최근 일본 언론인의 정보공개 청구에 응해 명부 3개를 공개한 데 이어 미야자키 마사히사 후생노동성 부대신(차관)이 지난 5월 국회에 출석해 "승선자 등의 '명부'라고 이름 붙은 자료가 70개 정도 있다"고 밝히면서 더 이상 한국의 명부 제공 요구를 외면할 수 없게 됐다.
일본이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한국 방문을 하루 앞두고 자료를 제공한 것은 최근 한일관계 개선 흐름의 성과가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일본 측이 오랜 세월 자료를 사실상 은폐해 오다가 일부 명부가 공개되면서 뒤늦게 안팎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