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중국 성인으로 평가받는 기자(箕子)는 어려운 일을 해결할 때 다섯 가지를 기준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 중 둘이 복(卜)과 서(筮)다. 쉽게 말해 점을 본 것이다. 다섯 사람이 각각 점을 쳐서 그 중에서 많은 사람의 판단을 믿고 따르는 방식이었다. 점괘를 믿는 걸까 아니면 사람의 판단을 믿는 걸까?
중요한 것은 객관성이다. 사기(史記) 귀책열전(龜策列傳)에서는 ‘구하는 바를 점치면 뜻대로 안 된다’(以蔔有求不得)고 강조한다. 백설공주에 나오는 마법의 거울은 요구에 반응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여줄 뿐이다. 보아야 할 것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 연준은 ‘거울’일 뿐 …실물 경제를 봐야
최근 경제 기사를 보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를 얼마나 내릴 지에만 관심이 집중된다. 제롬 파월 의장이 중국 고대 성인인 ‘기자’라고 치자.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나름 여러 기준이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를 어떻게 해석할 지다. 연준 위원들의 입장은 투자자들과 다르다. 연준의 판단과 결정에 대한 해석은 거울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일 수 있다. 거울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 지금 투자자들에게 중요한 건 연준의 거울에 다 담을 수 없는 실물 경제다. 재정도 보고 해외 요인 등 여러가지를 살펴야 한다.
낙관론자는 수익을, 비관론자는 명성만 얻는다. 시장의 위험 요인만 보고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결코 성공한 투자자가 될 수 없다. 낙관론자를 넘어 성공한 투자자가 되려면 시장의 위험요인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충분히 투자수익을 낼 수 있는 환경이라면 더욱 주의해야 한다. 시장이 오를 때는 마냥 오를 듯하지만 결과적으로 끝이 없는 상승은 없었다. 경제 환경이 크게 바뀔 때면 더욱 그렇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지는 않은 지, 연준에만 너무 매몰되지 않고 있는 지 살펴볼 때다.
▶ 식어가는 미국 경제…증시, 눈 높이 조정 불가피
최근 미국 증시의 화두는 고용이다. 고용 둔화는 뚜렷한 현상이다. 미국의 노동시장은 유연해서 경기에 일자리가 민감하게 반응한다.이는 소비 위축으로 반영되는데 소득 대비 저축 비중이 낮아지고 있는 데서 읽을 수 있다. 주택시장 역시 중요한 지표다. 한국은 아파트를 공급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개인주택 비중이 높은 미국의 주택시장은 이보다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올 들어 미국의 주택 착공은 전년대비 8%이상 줄었다. 상업용 부동산의 공실 비율은 역대 최대치를 연일 경신하고 있다. 제조업 신규주문 역시 감소 추세가 뚜렷하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법(SA) 수혜를 노린 공장 건설 수요 덕분에 늘던 자본재 수입도 정점을 향해 가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이 역시 일자리를 통해 소비에 영향을 줄 요인이다.
뜨거웠던 미국 경제의 온도가 정점을 지나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연방준비제도(Fed)가 사실상 기준금리 인하까지 예고한 것은 그 반증이다. 중앙은행의 완화적 통화정책은 경기부양을 위해서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이후 경기가 침체됐다는 분석이 최근 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의 이익 증가의 기울기가 둔화되고 있다. 주가수익비율(PER)은 금리 영향도 받지만 미래 기대도 반영한다. 이익 증가세가 둔화되면 높은 PER 값이 인정받기 어렵다. 21배에 달하는 S&P500의 PER이 앞으로 낮아질 가능성이다. 한 전문기관(BCA리서치)은 S&P500의 PER가 16배까지 떨어질 것이란 예상을 내놓기도 했다. 이 예측이 맞다면 S&P500는 3800수준이다. 지금보다 30% 이상 낮으니 폭락이 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지나친 비관일 수 있지만 PER 값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성공한 투자자들 유동성 공급하겠지만
연준의 가파른 금리인상에도 미국 증시가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던 바탕은 코로나19 유행 기간 정부가 푼 돈의 힘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가계는 빚을 크게 줄였다. 덕분에 코로나19 지원금이 소비와 투자의 재원이 됐다. 코로나19 국면 탈출(reopening)과 일반형 인공지능(AI) 시장 부상 등의 재료와 맞물리며 증시로 돈이 몰렸다. 미국 정부도 친환경을 명분으로 돈을 풀었다. 금리가 올랐지만 가계 빚이 줄어든 덕분에 미국 국민들 대다수는 이자부담 보다는 이자수익 기회로 받아들였다.
최근 미국 증시의 호황은 이른바 연금 백만장자를 만들어냈다. 올 상반기 말 기준 미국의 대표적 연금인 401(K)의 피델리티 계좌에서 100만 달러 이상의 투자자산을 가진 숫자가 49만7000명에 달했다. 1년 전보다 31% 급증한 수치다. JP모건 분석을 보면 미국 가계 금융자산에서 주식 비중은 무려 42%로 1952년 이후 최고치다. 주식으로 자산이 불어난 만큼 증시에 대한 낙관도 커졌다.
만연한 낙관이 유동성의 힘으로 주식 가치를 떠받치고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유동성의 변심은 가치의 급격한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뉴욕 증시에서는 그 동안 상승을 이끌었던 초대형 빅테크 7개사(Magnificent 7) 보다 러셀지수 같은 중소형주가 인기다. 우리나라 말로 따지면 순환매다. 순환매를 다른 말로 풀면 키 맞추기다. 추가 상승 여력으로 읽히지만 뜻으로 풀면 ‘정점이 가까워 왔다’이다. M7의 핵심 사업은 경기에 민감하다. M7은 AI 산업의 최대 투자자다. 경기가 좋아야 AI관련 투자금도 감당할 만하다. 경기가 둔화되면 이들의 실적도 나빠지고 그만큼 AI 관련 투자 여력도 줄어들게 된다. 이는 반도체 등 AI 관련 생태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달라진 시장 에너지…中 침체에 한국 증시 전망 더 어두워져
M7과 같은 성장주와는 다른 가치주의 반등은 오래가지 않을 확률이 크다. ‘시장 대비 저평가’가 가치주의 판단 기준이다. 밸류에이션이 낮아져 시장 대비 저평가 폭이 적어진다면 그만큼 투자 매력도 감소한다. 그 동안 거둔 평가이익이 크다면 일단 수익을 굳힐 지 심각히 고민할 때다. 경제가 어려워지는데 주식시장이 크게 오를 확률은 거의 없다. 지금은 가속페달 보다 브레이크에 발을 올려둘 때다.
미국과는 딴 얘기 같지만 요즘 중국 경제도 심상치 않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중국의 경기 둔화를 반영해 내년 원유수요 전망을 낮췄다. 과잉 투자가 문제였는데 돈 들여 지은 중국 생산 설비의 효율이 떨어지고 있는 모습이 뚜렷하다. 저가 수출 전략도 각 국의 무역 장벽에 직면하고 있다.
생산부진은 고용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미온적이어서 내수 회복도 기대하기 어렵다. 수입보다 수출이 많은 중국이지만 이처럼 내수가 위축되면 대중 수출이 많은 무역 상대국, 즉 한국에도 타격이 갈 수 있다. 2대 교역국인 미국과 중국 경제가 모두 어렵다면 우리 경제는 어떨까? 우리 증시 전망도 그리 밝다고 하기 어렵다. 선별적인 투자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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