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없는 협의체…4자 구성부터 난항

의대 증원 문제를 포함한 의료개혁 논의를 위한 여·야·의·정(與·野·醫·政) 협의체가 의료계의 참여 저울질 속에 ‘반쪽짜리’로 출범할 전망이다. 정치권은 국민적 의료 대란 우려를 감안해 추석 이전 협의체를 띄우겠다는 방침이지만, 그 뒤의 여야 셈법은 전혀 다르다. 협의체가 의정갈등 문제를 풀 돌파구가 될 것이란 전망과 함께, 정쟁의 새로운 전선이 될 것이란 관측이 동시에 나온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9일 “의료계는 (참여에) 전제조건을 달고 있어 바로 참여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며 “그럴 경우 여·야·정이라도 먼저 (협의체를) 개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로 나뉜 의료계가 협의체에 참여를 결정하지 않은 가운데 ‘여야정’ 협의체 먼저 띄우겠다는 것이다. 여야는 주말 사이 국회 보건복지위·교육위원회 소속 의원을 각각 3~4명씩 협의체에 참여시키는 방안을 논의해 왔다. 당초 참여가 예상됐던 여야 정책위의장은 정기국회 민생입법 성과를 위해 한 발 물러나 협의체 구성·운영을 위한 실무협의에만 관여하기로 했다.

협의체는 4일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제안한 것을 6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재차 제안, 여야가 합의하는 모양새를 갖추면서 급물살을 탔다. 대통령실도 “(한 대표의) 제안에 대해 긍정적”이라며 “의대정원 문제는 의료계가 합리적인 안을 제시하면 언제든 제로베이스에서 논의하겠다”고 즉각 입장을 내놨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불붙듯 번진 의료대란 우려를 진화하기 위해 정치권이 돌파구 모색에 나선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민주당 모두 저마다 셈법은 다르다. 여권에서는 의정갈등 장기화로 부담이 커진 대통령실이 한동훈 대표에게 공을 넘겼고, 한 대표는 협의체를 지휘하며 여권 내 입지 강화를 노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한 대표가 제안한 ‘2026년 의대정원 증원 유예’ 등 대안을 놓고 이견을 빚었던 당정이 이번 만큼은 이해관계가 일치하며 한목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대통령실과 정부, 당 소통 과정에서 가교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에서는 국민의힘 내에서 터져 나온 책임자 경질 요구 등 내부 균열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협의체 구성 제안이 유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의료계에 단일안 마련을 압박하는 카드로도 여겨진다. 한 여권 관계자는 “여야정이 손을 잡으면 의료계도 논의 테이블에 일단 들어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은 협의체 구성을 대여 압박 포석으로 활용하는 모습이다. 민주당은 협의체 제안을 수용한 직후 의정갈등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와 보건복지부 조규홍 장관, 박민수 2차관 등 책임자 경질을 요구했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두 가지 조치가 선행되면 완강하게 복귀를 거부하고 있는 의료계에서도 논의의 여지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의료계 참여 없이 협의체가 표류할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의료계를 설득해서 테이블에 앉도록 하는 게 정부·여당의 능력이고, 협의체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의협은 2025년·2026년 증원 계획을 백지화하고, 2027년 정원부터 재논의해야 협의체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반면 정치권에서는 여야 모두 이날부터 2025학년도 대학입시 수시원서 접수가 시작되는 만큼 2025년 증원 계획 백지화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김진·박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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