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왼쪽) 서울시장과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가 지난 7월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동행식당에서 만나 인사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헤럴드경제=신현주·김진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연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지구당 부활’ 정책을 겨냥하고 있다. 지구당 부활은 한 대표가 7.23 전당대회 때부터 내건 정치개혁 1호 정책이다. 오 시장이 한 대표와 메시지를 차별화하면서 대권 잠룡들이 때 이른 신경전을 벌이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오 시장은 지난 10일 SNS에 “최근 여야 대표가 함께 추진하려고 하는 지구당 부활은 어떤 명분을 붙이더라도 돈 정치와 제왕적 대표제를 강화한다”며 “정치개혁에 어긋나는 명백한 퇴보”라고 지적했다.
지구당은 1962년 정당법 제정 당시 도입된 정당의 지역 조직이다. 당시 정당들은 지구당에 기반한 사무실을 운영했고 후원금을 모아 선거를 치렀다. 현역 국회의원이 아닌 원외 당협위원장도 사무실을 설치하고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구당이 불법 정치 자금 수수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지적이 나오자 2004년 폐지됐다. 이 때 통과된 법이 ‘오세훈법’이다.
오 시장은 “‘오세훈법’은 단순히 돈 정치, 돈 선거를 막자는 법이 아니었다”며 “제왕적 당대표 시스템에서 필연적으로 파생되는 한국정치의 정쟁성과 후진성에서 벗어나 미국식의 원내정당 시스템으로 변화해 보자는 기획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실을 핑계로 다시 유턴해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정치인의 자세냐”며 “지금은 지구당 부활이라는 역행이 아니라 원내 정당이라는 발전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오 시장은 지난 5월 한 대표가 처음으로 지구당 부활을 주장했을 때부터 직간접적으로 우려를 드러냈다.
한 대표의 정치개혁이 “오세훈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당내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대선을 3년 앞둔 시점에서 오 시장이 ‘신인’ 한 대표를 견제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된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오 시장이 없앤 지구당을 부활시키는 것에 대해 오 시장 입장에서는 비판적 입장을 내놓을 수 밖에 없다”며 “좀 이르지만 한 대표가 오 시장을 견제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또 다른 중진 의원은 “한 대표가 취임한 지 100일도 채 되지 않았는데 삐걱거리는 모습이 많이 연출됐다. 문제는 삐걱거리는 이유가 한 대표의 소통 방식 때문이라는 점”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은 상황에서 서툰 대권주자보다 다듬어진 대권주자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점점 커질 것”이라고 봤다.
실제 복수의 여권 인사들은 오 시장이 대권 물밑 행보에 시동을 걸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친윤계로 분류되는 김병민 서울 광진갑 당협위원장을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임명한 데 이어, 곽관용 경기 남양주을 당협위원장을 서울시 정무수석에 임명하는 등 ‘인재풀’을 넓히고 있다. 2022년 서울시장 선거캠프에서 호흡을 맞춘 진수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서울시복지재단 대표이사 임명도 같은 맥락으로 여겨진다.
한편 한 대표는 ‘원외’ 당협위원장들과 여론을 동력 삼아 지구당을 부활시키겠다는 계획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한 대표의 정치개혁에 동참하지 않는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대표가 두 달에 한 번씩 당원협의회를 평가하고 수도권비전특별위원회를 띄우는 등 행보에 나선 것도 원외 당협위원장들의 활동 반경을 넓히기 위한 포석이다. 국민의힘은 당무감사를 내년 초~중으로 연기하는 대신 두 달에 한 번씩 집계되는 당원협의회별 실적보고를 당무감사에 반영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원외 당협위원장들이 현역 국회의원에 비해 활동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평가 지표를 다르게 적용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 한다.
원외 당협위원장들은 오는 10월 워크숍을 열 계획인데 당 지도부도 참석해 원외 정치인들의 고충을 듣고 충분히 반영하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는 “한 대표 입장에서 원내의 동의를 얻어 법안을 추진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국회의원들 상황에서 집권 3년 차에 대통령실과 부딪히는 미래권력 편에 섰다는 이야기를 누가 듣고 싶겠냐”면서도 “한 대표의 가장 큰 장점은 여론과 팬덤이기 때문에 이를 움직여 본인의 개혁을 추진하지 않겠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