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 뉴스룸 캡처] |
지난달 30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열린 ‘국산 지속가능항공유(SAF) 상용운항 첫 취항 기념식’에서 오종훈(왼쪽부터) SK에너지 사장, 안와르 알 히즈아지 에쓰오일 대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S-Oil 제공] |
[헤럴드경제=정윤희·김은희 기자] 최근 뉴스를 보면 지속가능항공유(SAF)라는 용어를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친환경 항공유라고도 하는데, 지난달 30일부터 인천공항과 도쿄 하네다공항을 오가는 대한항공 여객기에 SAF가 쓰인다고 합니다. 항공사들은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2027년부터 국내 출발 국제선 항공유의 1%를 의무적으로 SAF로 사용해야 한다고 하죠.
대략 느낌이 오긴 하는데, 아직까지 궁금증이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도대체 SAF가 정확히 무엇이길래 SAF 의무화로 항공권이 비싸질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걸까요.
▶옥수수·폐식용유로 만든 친환경 항공유…탄소저감 핵심=일단, SAF는 기존의 화석연료가 아닌 동·식물에서 유래된 바이오 원료 등으로 만든 친화경 연료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폐식용유를 주로 사용하죠.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SAF가 기존 석유 기반 항공유보다 탄소배출량을 평균 80%까지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기존 항공기의 구조를 변경하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장점입니다. 기존 항공 급유 시설을 그대로 이용하면 되기 때문에 별도의 급유 인프라 시설도 필요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SAF는 수송 분야 탄소감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사실 비행기는 동체가 크고 장거리를 이동하다보니 높은 밀도의 동력원이 필요하고, 현실적으로 전기(배터리), 수소 등으로 항공연료를 대체하기 어렵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 만은 없습니다. 항공기는 운송수단 중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이죠. 세계 각국이 앞 다퉈 SAF를 도입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주요 참석자들이 30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서 열린 국제항공 탄소 감축 및 신산업 지원을 위한 지속가능 항공유(SAF) 확산전략 정책발표회에 참석해 MOU를 체결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정기 한국공항공사 사장 직무대행, 박주선 대한석유협회 회장, 안덕근 산업부 장관, 박상우 국토부 장관, 이학재 인천공항공사 사장, 박종흠 항공협회 부회장. 공항사진기자단 |
▶2027년 SAF 1% 의무화에 30조 시장 열려…글로벌 수요도↑=SAF 사용을 의무화한 것은 우리나라 뿐만이 아닙니다. 유럽연합(EU)은 내년부터 모든 공항에서 이륙하는 항공기에 SAF를 2% 이상 써야 하고, 2030년부터는 이를 6%로 늘려야 합니다. 이미 노르웨이, 프랑스, 스웨덴 등은 SAF 혼합 의무화 제도를 시행 중이며 일본 역시 오는 2030년부터 SAF 혼합 비율을 10%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죠. 미국은 2050년까지 항공유 수요의 100%를 SAF로 충당한다는 계획입니다. 즉, SAF 도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SAF 수요도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2022년 24만톤 수준이었던 글로벌 SAF 시장은 2030년까지 70배 이상(1834만톤)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나라가 세계 항공유 수출 1위(점유율 29%)라는 점을 생각하면 향후 SAF 공급역량이 수출 경쟁력과 직결될 수 있는 셈이죠. 국내에서도 2027년부터 SAF 1% 혼합을 의무화하면서 약 30조 규모 시장이 열릴 것이란 전망입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나라는 SAF 도입에서 다소 뒤쳐진 상태입니다. 세계서 20번째로 SAF를 상용 운항에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유나이티드 항공의 경우 이미 2016년부터 LA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기에 SAF를 사용한데 이어 2021년 12월에는 최초로 100% SAF만 사용해 여객기 운항에 성공했는데 말이죠. 네덜란드 KLM 항공은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SAF를 1% 혼합해 사용하고 있으며, 일본 ANA 항공도 2022년 11월부터 국내선에 SAF를 10% 혼합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SAF 원료 폐식용유 제한적…수입 불가피, 물량 확보 관건= 우리나라도 SAF 도입의 첫 발을 떼긴 했습니다만, 아직까지는 갈 길이 멉니다.
먼저, 원료가 부족합니다. 우리나라는 상업화에 가장 앞서있다는 수소화지방산(HEFA, 헤파) 방식을 통해 SAF를 생산하는데, 원료 확보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 걸림돌입니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국내 항공사들이 사용하는 항공유는 연간 700만톤 규모인데 이 가운데 1%를 SAF로 대체하려고 하면 7만톤의 SAF가 필요합니다. 7만톤의 SAF를 만들려면 70만톤의 폐식용유가 필요하죠. SAF 기술이 초기단계다 보니 수율이 10% 수준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국내서 연간 수거되는 폐식용유는 20만톤에 불과합니다. 수입이 불가피하다는 얘기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바이오원료의 국산 비중은 31%에 불과합니다. 국내 정유사들이 해외 생산업체에 지분 투자, 현지공장 설립 등 해외원료 확보에 주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SAF를 도입한 유럽 역시 폐식용유 부족으로 중국, 동남아 등에서 이를 수입한다고 합니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원료 확보가 사실 SAF 생산의 관건”이라며 “폐식용유를 수입할 수는 있지만 글로벌 수요가 많아 단가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물론 물량 확보도 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 역시 “바이오 원료 시장 자체가 아직 활성화되지 않았다”며 “SAF 생산 관련 정책만 나왔는데 원료 수급을 원활하게 하는 방법도 향후에는 논의가 나와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SK에너지가 신규 투자한 전용 탱크 및 배관을 통해 이송한 바이오 원료로 코프로세싱 방식의 지속가능항공유(SAF) 연속 생산이 가능한 설비 전경 [SK에너지 제공] |
▶2~3배 비싼 단가…항권도 오른다?=가격도 비쌉니다. SAF는 기존 항공유보다 단가가 2~3배 정도 높습니다. 헤파 방식 외에도 옥수수, 생활 폐기물 등을 발효해 알코올로 만든 후 탄화수소(석유)로 전환하는 ATJ(Alcohol to Jet), 그린수소와 이산화탄소를 합성해 석유화 시키는 e퓨얼 방식이 있습니다만, 이들 방식은 헤파 방식보다도 훨씬 가격이 비쌉니다. e퓨얼의 경우 일반 항공유보다 최대 7~8배까지도 비싸다고 합니다.
결국 SAF 의무화 소식에 항공권이 비싸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죠. 해외서는 루프트한자가 SAF 비용을 항공권 가격에 반영한 사례도 있습니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SAF 혼합 비율이 1%에 불과해 항공사의 부담이 크지 않고, 국제항공 운수권 배점 확대 등 항공사들에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비용 전가가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상태입니다.
▶국내 정유4사, SAF 생산 돌입…2030년까지 6조 투자= 정유업계는 본격적으로 SAF 생산에 돌입했습니다. SK에너지와 GS칼텍스, 에쓰오일(S-Oil), HD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는 SAF 포함 친환경 연료에 2030년까지 약 6조원을 투자키로 했죠.
SK이노베이션은 최근 코프로세싱 방식의 SAF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다음달부터 상업 생산에 착수하기로 했습니다. 앞서 SAF 생산을 시작한 경쟁사와 달리 전용관과 탱크를 설치해 연속 생산이 가능하게 했다는 점이 특징이죠. 원료 확보를 위해서는 진상, 대경오앤티 등 국내외 폐자원 업체에 선제적으로 지분투자를 해뒀습니다.
지난달 국내 첫 SAF 상용운항을 시작한 대한항공 국제선 여객기에는 S-Oil이 생산한 SAF가 들어갑니다. S-Oil은 올해 1월 코프로세싱 방식의 SAF 생산을 시작했고 4월 국제인증을 획득했습니다. 바이오원료는 DS단석 등으로부터 공급받고 있습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올해 6월 국내 최초로 직접 생산한 SAF 제품을 일본에 수출했습니다. 생산 인증은 물론 품질 인증까지 받아 실제 수출로 연결함으로써 국내 SAF 사업의 확장성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죠. 원료는 롯데웰푸드 등으로부터 조달받고 있으며 올해 바이오디젤 생산을 시작으로 2025년부터는 연산 50만톤 규모로 SAF를 생산한다는 계획입니다.
가장 먼저 SAF 공급을 실증한 GS칼텍스는 아직 SAF 생산과 관련해 검토 중입니다. 지난해 9월 대한항공과 SAF 실증을 진행했지만, 직접 생산이 아닌 SAF를 수입해 공급하는 방식이었습니다. GS칼텍스는 대신 바이오원료 사업에 먼저 뛰어들었습니다. 내년 2분기 생산을 목표로 포스코인터내셔널과 인도네시아 칼리만탄에 연산 50만톤 규모의 바이오원료 정제시설을 건설 중입니다.
이주현(왼쪽부터) 한국석유공사 서산지사장, 전병혁 한국석유공사 석유사업처장, 박진혁 HD현대오일뱅크 트레이딩부문장, 이승호 HD현대오일뱅크 생산운영기획부문장, 마사토미 류이치 한국마루베니 대표, 시라이시 준페이 마루베니 차세대 연료사업기획팀장이 지난 6월 열린 지속가능항공유(SAF) 초도 생산 수출 행사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 제공] |
▶정유사 노났다? 막대한 투자 부담 ‘양날의 검’…과감한 인센티브 필요=그렇다면 SAF를 생산하는 정유사들은 마냥 좋기만 할까요? SAF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비용이 들어가는데 아직까지 시장 규모가 크지 않고, 앞서 언급했듯 원료 수급도 제한적입니다. SAF 투자를 무작정 늘리기에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연간 20만~25만톤을 생산하는 헤파 공장 설립에만 약 1조원이 넘는 돈이 들어갑니다. 현재 국내 정유사들이 코프로세싱(Co-processing) 방식으로 기존 정제시설을 활용해 소량의 SAF만 생산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성장 잠재력이 큰 SAF 시장이 열린 건 맞는데, 아직까지는 ‘양날의 검’인 셈이죠.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의 보다 과감한 지원책과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큽니다. 정부가 지난달 30일 ‘SAF 확산 전략’을 발표하긴 했지만, 생산비용 부담을 완화할 보다 구체적인 투자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는 얘기죠.
영국은 정부와 SAF 생산자간 기준 가격을 체결해 SAF 가격을 보장해줍니다. 실제 SAF 판매가와 기준가격 사이의 차액을 정부가 보전해주는 식이죠.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를 통해 지난 2022년 8월부터 갤런당 최대 1.75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일본 역시 이달부터 리터당 최대 30엔의 세액 공제 인센티브를 제공합니다.
SAF를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해 법인세 세액공제율을 15%로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현재는 신성장원천기술로 지정돼 3%의 공제만 받고 있습니다. 석유협회 관계자는 “SAF 시설투자가 적기에 이뤄질 수 있도록 국가전략기술 지정, 투자세액공제제도 확대 등이 구체화될 수 있도록 정부에 지속적으로 건의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