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영 핵심 인사로서 진보진영과 교류에 힘쓴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15일 오전 8시10분께 노환으로 영면에 들었다. [연합] |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보수진영 핵심 인사로서 진보진영과 교류에 힘쓴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15일 오전 8시10분께 노환으로 영면에 들었다고 유족이 16일 전했다.
고인은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청주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서울대 재학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 이강석 씨가 서울대 법학과에 부정 편입학하자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
1958년 한국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해 민국일보를 거쳐 조선일보 기자와 정치부장, 편집부국장, 서울신문 편집국장과 주필을 지내고 관훈클럽 총무를 맡았다.
1979년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서울 강서구에서 10~13대 4선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1980년 민주정의당 창당에 참여하고 민정당 정책위의장을 두 번 역임하는 등 전두환 정권 핵심 인사로 활동했다.
당시 두 딸이 운동권 학생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1986년 3월 ‘국회 국방위원회 회식 사건’의 주역이기도 하다.
국회의원들과 육군 수뇌부가 함께 한 회식 때 양측 간 신경전이 격화되던 과정에서 고인이 벽으로 던진 술잔 파편이 한 군 장성에게 튀었고 양측 간 폭력사태로까지 비화됐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3~1994년 노동부 장관을 맡았으며 퇴임 후에는 호남대 객원교소를 지냈다.
고인은 스스로 ‘체제 내 리버럴’이라고 표현할 만큼 자타 공인하는 보수 진영 핵심인사였지만 진보진영과 교류에도 공을 기울였다.
한 시인은 ‘의식은 야(野)에 있으나 현실은 여(與)에 있었다/ 꿈은 진보에 있으나/ 체질은 보수에 있었다’고 표현했다.
1990년 임수경 씨의 방북과 관련해선 “방북자 구속 문제는 범죄에 대한 처벌 차원이 아니라 트래픽 컨트롤 즉 교통정리적 차원”이라고 발언했다.
노동부 장관 재직 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현대중공업 파업 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하지 말라고 건의한 일화도 있다.
‘진보 열전-남재희의 진보인사 교유록 오십년’(2016), ‘시대의 조정자: 보수와 혁신의 경계를 가로지른 한 지식인의 기록’(2023) 등 저서가 있다.
딸 남영숙 이화여대 교수는 “아버지는 보수와 혁신을 넘나든 정치인이었고, 그 점을 스스로도 자랑스러워하셨다”고 회고했다.
새마을훈장 근면장과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은 19일 오전 5시20분이며 장지는 청주시 미원 선영이다. 향년 90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