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애리조나주 투손에서 유세하던 도중 특유의 춤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틀 전 TV 토론에서 자신이 승리했다고 주장했다. [연합] |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15일(현지시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노린 암살 시도가 2개월 만에 또 발생하면서, CNN 등 외신은 “미국의 극단적인 정치적 양극화가 드러났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는 지난 15일(현지시간) 자신이 소유한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클럽’에서 골프를 치던 중 암살 시도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범인은 하와이 출신 백인 남성 라이언 웨슬리 라우스(58). 그는 골프장 경계덤불에 숨어 AK-47 유형 소총 총구를 트럼프를 향해 겨눴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앞서가던 비밀경호국(SS) 요원의 대응 사격으로 피해로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라우스는 소총을 떨어뜨리고 차량으로 도주했지만, 팜비치 카운티 북쪽 마틴카운티 고속도로에서 체포됐다.
외신 등에 따르면 라우스는 과거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했지만,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트럼프의 미온적인 정책에 실망해 반(反) 트럼프로 돌아선 것으로 추정된다.
15일(현지 시간) 미국 플로리다 골프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암살하려한 혐의로 체포된 라이언 웨슬리 라우스. [로이터] |
그는 지난 2020년 1월께 자신의 X(엑스·구 트위터)에 “(트럼프) 당신은 2106(2016을 잘못 쓴 것으로 추정)년에는 나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엄청나게 실망했고 당신은 더욱 나빠지고 있는 것 같다”고 게시한 바 있다고 한다. 지난 7월 13일 트럼프 전 대통령 총기 피격 사건과 관련해서도 여러 건의 글을 SNS에 게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엔 트럼프에 대해 적대적인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지난 4월 X 게시물에서 바이든 캠프의 계정을 태그하며 “바이든 캠프를 ‘미국을 민주적이고 자유롭게 유지하라’는 의미인 ‘KADAF(Keep America Democratic And Free)’ 같은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면서도 “트럼프 캠프는 ‘미국인을 다시 노예로 만들라’는 ‘MASA(Make Americans Slaves Again)’가 돼야 한다. 민주주의는 투표용지에 있고 우리는 질 수 없다”고 올렸다고 한다.
이 시기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한 시기와 겹친다. 복수의 언론에 따르면 라우스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큰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뉴욕타임즈(NYT)에 따르면 그는 X에 “자원병으로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가서 죽을 용의가 있다”는 게시글을 올렸다고 한다. 메시징 앱 시그널 자기소개 프로필에는 “민간인이 이 전쟁을 바꾸고 미래의 전쟁을 막아야 한다”고 쓰기도 했다.
지난해 자신이 출간한 291쪽 분량의 책 ‘우크라이나의 이길 수 없는 전쟁: 민주주의의 치명적인 결점, 세계의 포기, 그리고 세계 시민-대만, 아프가니스탄, 북한 그리고 인류의 종말’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가리켜 “‘무뇌(brainless)’ 대통령을 뽑은 자신에게도 문제의 책임이 있다”면서 “판단 오류와 합의 불이행에 대한 책임으로 트럼프 뿐 아니라 (그를 뽑은) 나도 자유롭게 쏠 수 있다”고 적기도 했다.
하지만 라우스가 우크라이나에서 각종 기행을 일삼아 외국인 의용병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우크라이나 외국인 의용병 부대 ‘국토방위 국제 군단’에서 일했던 한 관계자는 라우스에 대해 “‘아프가니스탄과 시리아에서 신병 수백 명을 모집해오겠다’는 등 쓰레기(shit)와 허풍으로 가득 찬 인물”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기묘한 행적에 대해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그에 대해 “돈키호테식(quixotic·공상가적인) 과거를 지녔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한편,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번 암살 시도를 민주당 탓으로 돌리며 자신의 지지자들을 결집할 기회로 삼으려고 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은 1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조준한 암살 시도를 ‘정치폭력’으로 규정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시민들이 지난 10일(현지시간)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의 대선 토론을 지켜보고 있다. [AP] |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날 자신을 향한 두 번째 암살 시도에 조 바이든 대통령과 경쟁자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책임을 거론했다. 16일(현지시간) 폭스뉴스 디지털과의 인터뷰에서 “그(암살 시도범)는 바이든과 해리스의 레토릭(트럼프에 대한 표현)을 믿었다”며 “그리고 그는 그 믿음에 따라 행동했다”고 주장하면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들의 레토릭이 내가 총에 맞도록 만들고 있다”며 “나는 이 나라를 구할 사람이고, 그들(바이든과 해리스)은 이 나라를 파괴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대선주자인 바이든과 해리스가 자신을 미국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면서, 이러한 언사가 자신에 대한 암살 시도로 연결되고 있다는 얘기다.
CNN은 이번 암살 시도 사건을 두고 “국가의 깊은 양극화를 드러낸다”며 “이런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은 미국 정치에 끊임없이 드리우는 폭력의 그림자를 말해주며, 이는 손쉬운 총기 접근으로 인해 더욱 심화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위 행정부 관료에 대한 암살 시도가 수십 년간 한 번도 없었던 가운데, 올해는 끔찍한 현실이 다시 살아났다”며 “즉, 최고 직책(대통령)에 출마하는 사람들은 잠재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걸고 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