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헤럴드경제DB] |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잔소리가 심하다는 이유로 70대 친아버지를 흉기로 살해하고, 아파트 물탱크에 시체를 유기한 30대 남성에게 징역 15년이 확정됐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오경미)는 존속살해, 시체은닉 혐의를 받은 A씨에게 이같이 판시했다. 대법원은 심신미약을 인정해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2심) 판결을 수긍하며 확정했다.
자폐성 장애가 있는 A씨는 지난해 5월, 집에서 70대 아버지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어머니가 여행 간 사이를 노린 범행이었다.
A씨는 시체를 1개월 전 미리 물색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물탱크에 유기한 혐의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아파트 현관·엘리베이터에 설치된 CC(폐쇄회로)TV화면을 청테이프로 가리는 치밀함을 보였다. 범행 장소에 물을 뿌려 흔적을 지우려는 시도도 했다.
범행 계기는 사소했다. 피해자는 평소 A씨에게 “지하철에서 다른 짓 하지 말고 휴대전화 게임을 해라”, “많이 먹지 마라”, “영어단어를 외워라”, “용돈 기입장을 작성하라”는 등 잔소리를 자주 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평소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어머니와 비교해 피해자에 대해 앙심을 품게 됐다.
A씨는 장애 판정을 받긴 했지만 2016년께 1차례 약물 치료를 받은 것 외에 별다른 치료를 받은 사실은 없었다. 특수반이 있는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의류공장 등에서 근무하며 사회생활을 해왔다.
1심은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A씨 측은 재판 과정에서 “자폐성 장애로 인해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심을 맡은 서울북부지법 11형사부(부장 반정모)는 지난해 12월, 이같이 판시했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미리 범행 도구를 구입하고, 시체를 은닉할 장소를 물색하는 등 범행을 계획했다”며 “CCTV에 청테이프를 붙이는 등 나름대로 치밀한 범행의 은폐를 시도하기도 했다”며 “자신이 의도한 대로 행동했고, 당시 상황을 변별하는 능력에 별다른 장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아들에 의해 참혹하게 살해당한 피해자가 느꼈을 극심한 정신적·육체적 고통의 정도는 가늠하기 어렵다”며 “피해자 가족이 평생 치유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고 양형의 배경을 밝혔다.
2심에선 징역 15년으로 감형이 이뤄졌다. 1심과 반대로 심신미약이 인정됐다. 2심을 맡은 서울고법 13형사부(부장 백강진)는 지난 6월, 이같이 판시했다.
2심 재판부는 “A씨에게 소통의 제한, 감정인식 능력의 결여 등 자폐적 특성이 여전히 남아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심신미약 상태가 범행 당시 지속되고 있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이유로 “안정된 사회생활을 해왔던 것으로 보이지만 담당한 업무가 청소, 포장, 물건정리 등 단순 작업이라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업무”라고 밝혔다.
이어 “존속살해의 동기로 보기엔 계기가 지나치게 경미하다”며 “범행 이후에도 ‘후회는 하지 않고 지금 아버지가 죽어서 마음이 편하고 좋다’고 진술하는 등 감정에 대한 공감능력이 현저히 결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판단력 부족, 사회성 결여 상태 등 자폐스펙트럼 장애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에 이르게 됐다”며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있다”고 감형을 택한 이유를 밝혔다.
대법원도 원심(2심) 판단에 대해 수긍했다. 대법원은 “원심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징역 15년형을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