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연합] |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공범의 자백을 피고인이 법정에서 부인하면 증거능력이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재차 나왔다. 대법원은 지난 6월에 이어 같은 법리를 재확인했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서경환)는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를 받은 A씨에 대해 이같이 판시했다. 앞서 2심은 공범의 자백에 대한 증거능력을 인정해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해당 혐의를 무죄 취지로 뒤집고 사건을 대구지법에 돌려보냈다.
A씨는 두 가지 혐의를 받았다. 지난해 3월께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 2022년 12월께 본인의 승용차 안에서 현금 15만원을 받고 필로폰을 판매한 혐의를 받았다. 그는 “A씨에게 필로폰을 샀다”는 공범의 수사기관 자백 내용(피의자 신문조서)과 마약 검사 결과 등을 근거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런데 A씨가 법정에서 “공범의 자백은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하면서 증거능력이 법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2022년 개정된 형사소송법에 따라 경찰·검찰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는 본인이 법정에서 그 내용이 사실이라고 인정할 때만 증거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본인뿐 아니라 공범의 조서도 포함이다.
검찰은 1심 과정에서 공범을 법정에 증인으로 세웠지만 공범도 “필로폰을 산 사실이 없다”며 진술을 번복했다. 증거능력에 대한 하급심(1·2심)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2심은 “공범의 진술이 직접증거가 되는 중대한 사안에서 처벌의 공백이 생긴다”며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1심을 맡은 대구지법 서부지원 형사4단독 김수영 판사는 지난해 11월, A씨의 두 혐의 중 필로폰 투약 혐의만 유죄로 인정했다. 징역 1년 실형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공범이 ‘선처를 받기 위해 필로폰을 매매했다고 거짓 진술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공범의 자백 내용을 부인하고 있다”며 “이를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2심을 맡은 대구지법 4형사부(부장 김형한)는 지난 5월, A씨의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징역 2년 실형으로 형량이 가중됐다.
2심 재판부는 “기존 대법원 법리를 유지할 경우 권력형 범죄, 조직적 범죄 등 공범의 진술이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사안에서 회복 불가능한 처벌 공백이 생긴다”며 “공범이 허위로 진술을 번복할 경우 법원은 허위 진술만을 기초로 사안을 판단해야 하므로 법관의 합리적 판단에 중대한 제약을 가져온다”고 밝혔다.
2심에서 증거능력을 인정하자, 당시 대검찰청은 2심 공판 검사를 ‘우수 사례’로 선정했다. 당시 대검은 “기존 대법원 판례를 뒤집는 항소심 판결을 끌어낸 사례”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법원은 2심 판결을 깼다.
대법원은 “해당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한 원심(2심) 판단엔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피고인 측이 법정에서 내용을 부인한 이상 형사소송법에 따라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시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6월에도 유사한 사안에서 같은 법리를 선언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당시에도 대법원은 공범에 대한 검찰의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해 피고인이 내용을 부인하면 증거능력이 없다고 명시적으로 판시했다”며 “위 판례에 따라 이 사건에서도 같은 법리를 재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향후 진행될 4번째 재판에서 A씨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일부 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