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도 중국산 배터리 업체들이 글로벌 점유율을 확대하는 가운데 한국 배터리·소재 기업들은 투자 효율화와 기술력을 통해 위기 대응에 나서고 있다. 사진은 올해 2분기 전기차용 배터리 업체별 판매 실적에서 매출액 1위를 차지한 중국 CATL의 닝더시 본사 외관(왼쪽)과 LG에너지솔루션 직원들이 원통형 배터리를 소개하고 있는 모습. [CATL 홈페이지·LG에너지솔루션 제공] |
전기차 시장 둔화와 과잉 재고 등 여파로 세계 배터리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중국 업체들은 거대한 내수 시장을 무기로 가파른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다.
이에 한국 배터리·소재 기업들은 비용 절감, 투자 효율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차별화된 기술력을 앞세워 중국과 경쟁에 나선다는 포부다.
20일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전기차용 배터리 업체별 판매 실적에서 중국 CATL은 매출액 기준 1위를 기록했다. 31.6%의 시장점유율로, 2위인 LG에너지솔루션(14.7%)을 큰 차이로 따돌렸다.
3위 역시 중국 BYD가 차지했다. BYD는 11.9%의 점유율로, 4위 삼성SDI(7.1%), 5위 SK온(4.3%) 등을 제쳤다. 이 외에도 CALB(6위, 3.4%), 궈시안(8위, 3%), EVE(9위, 2.4%) 등 중국 업체들이 대거 순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영향력을 과시했다.
SNE리서치는 “중국 업체들이 탄탄한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해외 진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며 “다수의 완성차 업체가 LFP(리튬·인산·철) 채택 비중을 늘리고 있어 LFP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중국 업체들의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전기차 수요 둔화와 재고 과잉으로 배터리 업체들의 실적 악화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도 진단했다.
실제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중국 공급과잉에 대한 주요국 대응 및 시사점’ 통상 리포트에 따르면 글로벌 배터리 제조업체의 생산 규모는 이미 시장 수요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협은 올해 배터리 총생산능력은 4.1TWh인 반면, 예상 수요는 1.3TWh에 그칠 것으로 봤다. 공급과잉으로 인한 배터리 가격 하락이 예견된 셈이다. 무협은 “세계 리튬이온 배터리팩 가격은 2022년을 제외하고 2013년부터 지속 하락했으며, 올해 가격은 전년 대비 6% 하락한 KWh당 133달러가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이어 “지난해 중국의 배터리 생산량은 1.07TWh로, 전 세계 수요인 0.95TWh보다 높은 수준”이라며 “중국이 생산한 배터리만으로 글로벌 수요를 충족하고도, 중형 전기차 156만대 분량의 배터리가 남는 상황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특히 무협은 “중국 기업의 배터리 생산량이 자국 수요를 초과하면서, 글로벌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자국 정부의 보조금과 각종 연구개발 자금 등 우대 혜택을 받고 생산된 배터리가 해외로 수출돼, 타국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실제 중국 CATL과 BYD 등은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최근 들어 유럽, 북미로의 진출을 적극 확대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중국발 공급 과잉, 중국 업체의 약진, 배터리 수요 정체 등에 대응하기 위해 다방면의 돌파구를 모색 중이다. 비주력 부문 사업을 정리하는 등 비용 절감에 나선 동시에 혁신 기술 개발에 매진해 차세대 배터리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포부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최고경영자(CEO) 사장은 지난 7월 임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지금은 투자의 속도 조절이 필요한 시기”라며 “꼭 필요한 시점에 적절한 투자가 이뤄질 수 있는 민첩성을 확보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며, 조직별로 투자 유연성과 효율성을 높일 방안을 깊게 고민해달라”고 당부했다.
삼성SDI는 최근 전자재료 사업 부문 내 편광필름 사업을 중국 우시헝신광전재료유한공사에 매각하기로 했다. 거래 대금은 1조1210억원 규모로, 국내 충북 청주 및 경기 수원 사업장의 제조·판매 등 사업 일체와 우시법인 지분을 매각할 예정이다.
SK온 역시 지난 7월 비상경영을 선언하고, 흑자전환 달성까지 모든 임원의 연봉을 동결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다만 국내 배터리 3사는 핵심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연구개발(R&D) 분야 투자는 최대한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인 46파이의 양산을 올해 말 충북 오창공장에서 시작할 예정이다. 삼성SDI는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전지를 2027년에 양산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연구개발에 매진 중이다.
배터리 소재 업체들도 ‘허리띠 졸라매기’에 돌입한 것으로 관측된다. 포스코퓨처엠은 최근 OCI와 합작해 세운 이차전지 소재 기업인 피앤오케미칼 지분 모두를 OCI에 매각하기로 했다. 중국 화유코발트와 함께 포항 니켈제련과 전구체 공장 투자를 검토했지만 중단했다. 김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