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각시탈'(1974년작) |
허영만 작가는 만화 그리기 이전에 사전 취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은 도박꾼들이 속고 속이는 손 기술을 자세히 관찰해 그린 노트를 바탕으로 '타짜' 작품을 내놨다.(연도미상) |
허영만 작가의 특별전에 연일 많은 관람객으로 붐비고 있다. /박대성 기자. |
[헤럴드경제(광양)=박대성 기자] '각시탈' '비트' '타짜' '식객' '날아라 슈퍼보드'…
만화가 허영만(77) 화백만큼 원작이 만화나 애니메이션, 드라마로 제작된 작가는 흔치 않다. 게다가 흥행 작품으로까지 거듭난 것은 그의 뛰어난 선구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50년 간 그림 그리기를 업으로 삼은 그는 평소 "만화는 소리 없는 영화다"라고 외칠 만큼 만화의 중요성과 시사성을 강조해 왔다.
'한국 만화계의 대부'로 꼽히는 허영만 작가의 50여 년 간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전남도립미술관(광양시 소재)에서 열리고 있다.
예술이 된 만화, 칸의 미학을 풀어보는 '종이의 영웅, 칸(Cannes)의 서사'가 전남도립미술관 특별초대전으로 10월 20일까지 전시 중이다.
전남도립미술관이 정부의 '대한민국 미술축제' 참여 기관에 포함돼 이달 30일까지는 허영만 특별전 뿐만 아니라 모든 전시를 입장료 없이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매주 월요일 휴관)
허 작가의 특별 초대전은 그의 대표 작품을 비롯해 만화 원화, 드로잉, 취재 자료 등 만화로 출판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관람할 수 있고 체험도 가능하다.
한국신문 최초의 네컷 연재만화 '멍텅구리 헛물켜기'. 1924년 10월 13일자 조선일보. |
허영만 작가는 여수고를 졸업하고 상경해 유명 만화가 문하생 생활을 거쳐 1974년 한국일보에 '집을 찾아서'로 데뷔했고 그 해 소년한국일보에 연재한 만화 '각시탈'로 이름 석 자를 대중에 알렸다.
지금 나이 칠순을 훌쩍 넘겼지만 젊은 세대와의 교감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시대가 달라져 종이 만화보다 웹툰 시장이 대세가 된 만큼 웹툰 작품을 내놓기 위해 요즘 컴퓨터로 만화 그리기 공부에 여념이 없다.
허 화백은 "지금 19살, 과연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참으로 망막했던 시간이었다. 이렇게 큰 것은 치만 형 말대로 어쩜 운이 좋아서 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피를 말리는 순간들이 없었으면 아무리 운이 좋았던 들 살아 남았을 리 없다"고 술회했다.
전남도립미술관에서는 허영만 특별전 외에도 '몽상블라주(The Assemblage of Dreams)'를 12월 8일까지 1~5전시실에서 절찬리 전시 중이다.
전남도립미술관 이지호 관장은 "우리나라 인구의 50%가 수도권에 몰려 있어 지방은 존속이 불투명해지는 실정에서 일자리, 학업, 결혼 등의 이유로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이주해 와 이제는 한국 사회가 다문화 사회가 됐다"면서 "이런 변화 속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인 이주민에 대한 인권과 타 문화에 대한 존중의 중요성을 깨닫자는 취지로 '몽상블라주'를 전시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