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아이이테크놀로지 관계자가 대전 유성구 SKIET R&D센터에서 분리막 시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 제공] |
지난 20일 찾은 대전 유성구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R&D센터에는 오직 연구개발(R&D)을 위한 분리막 공장이 차려져 있었다. 충북 증평 공장 대비 약 10분의 1 규모로 축소한 작은 데모 플랜트(시험 생산 공장)지만 원료의 압출부터 감기(와인딩)까지 전 공정 설비를 모두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는 SKIET가 신규 개발한 포뮬레이션(화학식), 즉 레시피에 맞춰 시제품을 생산한다. 새롭게 고안한 레시피로 만든 분리막의 성능과 안전성을 각종 물리·화학 테스트를 통해 확인하는 것까지가 R&D센터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분리막은 리튬이온배터리의 양극재와 음극재 사이에서 이들의 접촉을 막고 미세한 구멍으로 리튬이온을 통과시켜 전기를 만들 수 있게 하는 절연 소재의 막이다. 배터리의 성능과 안전성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인 셈이다. 특히 충·방전 과정에 내부 단락을 방지하는 역할을 해 안전과 직결된다. 전기차 화재의 원인은 과충전, 외부충격, 차량결함 등 다양하지만 분리막이 배터리 화재 예방의 첫 번째 방어선이라는 점에서 최근 분리막 성능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이날 둘러본 연구실에서는 성능을 개선한 분리막 시제품 테스트가 한창이었다. 90℃, 120℃ 등 다양한 온도로 설정된 오븐에 제품을 넣어 얼마나 높은 온도까지 버틸 수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고 인장강도나 다공성 등을 시험하기 위한 장비도 대기 중이었다. 다른 연구실에서는 분리막 자체만이 아니라 전지를 만들었을 때 성능을 확인하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었다.
두루마리 휴지처럼 둘둘 말려 있는 원단(베이스 필름)은 얇고 표면이 미끄러운 게 기름종이 같았다. 조금만 힘을 줘도 찢어질 듯 연해 보였지만 힘 있게 당기고 비틀어도 찢어지기는커녕 그다지 늘어나지 않았다. 여기에 세라믹을 코팅하면 표면이 미세하게 가슬가슬한 분리막은 완성된다.
언뜻 보기에는 쉽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만 분리막은 기술 장벽이 높은 고부가가치 제품이다. 특히 고분자 가루에 오일을 섞어 압출한 뒤 오일을 빼내는 습식 분리막은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제조 단가가 비싸지만 두께가 얇고 기공을 균일하게 만들 수 있어 에너지 밀도가 높다. SKIET는 국내 최초이자 세계 세 번째로 개발한 독자 기술로 고품질의 습식 분리막을 생산하고 있다.
SKIET는 이곳 R&D센터에서 배터리의 안전성과 성능 향상에 초점을 두고 분리막 기술력을 키우고 있다. 특히 양극과 음극의 단락으로 배터리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는 이른바 열 폭주를 방지하기 위해 고내열성과 고강도, 기공 구조 균일도를 개선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김진웅 SK아이이테크놀로지 R&D센터장 겸 최고기술책임자(CTO)가 지난 20일 대전 유성구 SKIET R&D센터 회의실에서 분리막 기술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 제공] |
김진웅 SKIET R&D센터장 겸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분리막은 고분자 필름인데 온도가 올라가면 기공이 닫히는 셧다운이 나타나고 그보다 더 올라가면 수축되거나 용융된다”며 “셧다운 온도를 낮추고 고온 열 수축을 억제하고 용융 온도를 높이는 게 고내열성 측면에서의 최대 이슈”라고 말했다.
그는 “분리막 원단 위에 벽돌을 쌓듯 세라믹 입자를 올리고 접착제로 바인더(점결제)를 쓰면 단단한 층이 형성돼 고온에서도 수축을 안 하고 버틴다”며 “이 바인더를 건드려 160℃ 이하인 용융 온도를 350℃ 수준으로 올린 제품을 개발해 현재 고객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SKIET가 개발 완료한 고내열성 분리막 이야기다. 최대 350℃ 고온에서도 파단(깨짐)이 발생하지 않는 분리막을 만든 건 SKIET가 전 세계 최초다. 현재 2개 업체와 실질적으로 평가를 진행하고 있어 신규 고객사 확보가 긍정적이라고 SKIET 관계자는 귀띔했다.
SKIET는 제조원가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이 기술을 개발했다. 같은 가격에 내열성이 뛰어난 소재를 쓸 수 있다면 배터리 제조사로서도 밑질 게 없는 선택이다.
김 센터장은 “제조원가가 상당히 올라간다고 하면 최근 배터리 업계 분위기에선 (적용이) 불가능한 이야기”라며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에서 수십 년간 합성이나 원재료 설계, 디자인 등을 연구개발 했고 그 과정에서 가지고 있는 내부 역량이 많아 제조 가격 상승 없이 개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연구개발은 연구실에서 소규모 테스트를 하고 데모 플랜트에서 생산해 보고 양산 라인에서 생산성이 나오는지 확인하는 등의 단계를 거치는데 고내열성 분리막의 경우 1년 반 이상 걸렸다”면서 “내열성은 높을수록 좋다. 분리막 원단 쪽에서 내열성을 올릴 여지가 있어 그걸 복합화하는 방식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SKIET는 2003년부터 축적해 온 다양한 코팅기술과 연신기술, 신소재 개발과 활용 노하우를 바탕으로 초고강도 분리막, 셧다운 온도 저감 분리막 등도 개발 완료해 고객 평가를 받고 있다.
초고강도 분리막은 기존 제품 대비 약 20% 강도를 높인 제품으로 외부 충격이나 내부 팽창에도 손상되지 않고 단락을 방지한다. 셧다운 온도 저감 분리막은 배터리 온도가 특정 수준 이상 상승하면 자동으로 분리막 기공이 닫히게 함으로써 리튬이온의 흐름을 멈춰 화재를 예방한다.
전기화학적 관점에서 배터리 안전성을 높이는 분리막도 개발하고 있다. SKIET는 전해액 분해촉진물질 생성과 이산화탄소 가스 발생을 억제하는 소재를 각각 개발하고 이를 분리막에 적용해 배터리 제조사 평가를 수행 중이다. 전극과의 접착 기능을 추가해 배터리 생산성을 높인 점착형 분리막도 시제품을 만들어 특성 평가를 하고 있다.
배터리에서 안전성과 함께 중요시되는 것은 단연 에너지 밀도다. 에너지 밀도는 분리막 두께와 직결되는데 얇을수록 양극재 투입량을 늘려 높은 성능의 배터리를 구현할 수 있다.
김 센터장은 “과거 20마이크로미터(㎛) 이상인 원단에 양면 10㎛ 이상 코팅하는 제품을 만들었다면 점점 얇아지며 현재 주력 제품은 9㎛ 원단에 코팅이 3~4㎛ 수준”이라며 “분리막 두께는 강도, 즉 안전성과 연결되기에 당장 얇은 원단이 적용되기는 쉽지 않지만 얇으면서도 고강도인 원단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막화를 위해 SKIET는 1㎛ 이하의 세라믹 코팅으로도 150℃ 고온에서 수축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그 결과물을 신규 수주 프로젝트에 적용할 예정이다. 특허 출원은 이미 완료했다. 머리카락 굵기는 보통 80~120㎛다.
SKIET는 차세대 분리막도 개발 중이다. 특히 최근 개발한 무코팅분리막은 세라믹 코팅 없이도 130℃에서 변형을 최소화하는 안전성을 확보했다. 원천기술은 확보했고 상업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제품화가 되면 단일 분리막으로도 전기차용 배터리에 사용할 수 있어 배터리 제조사 입장에서는 대규모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
반고체·전고체용 전해질 특성에 맞는 분리막도 선제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전해질이 고체인 전고체 배터리의 경우 분리막이 필요 없어지지만 일부 배터리 업체가 기존 리튬이온배터리 제조 공정을 활용하기 위해 롤 형태를 고수할 가능성이 있고 이 경우 분리막이 필요하다.
통상 분리막은 고객사가 원하는 사양에 맞춰 제품을 주문 제작해 공급하는 방식으로 거래된다. 이에 고객사가 특정 조건의 제품을 요구했을 때 최단 시간 기호에 맞게 튜닝(개조)하고 시제품을 만들어 건네는 게 중요하다. 기술력이 축적되면서 최근엔 짧게는 2주 안에도 고객 맞춤형 제품을 만들어 고객사에 전달하고 있다고 SKIET 관계자는 설명했다.
김 센터장은 SKIET의 차별화 전략으로 경쟁업체 대비 높은 기술력과 합리적인 원가구조 구축을 손꼽았다. 특히 고가의 원·부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첨가 공정 없이 기존 공정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기술을 개발하면서 제조원가를 유지하면서도 성능을 높이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이러한 R&D 노력으로 SKIET는 매년 두 자릿수 가량의 특허를 국내외에서 등록해 왔다. 그간 SKIET가 출원한 특허와 실용신안은 309건에 달한다.
김 센터장은 “R&D를 해 온 축적의 시간이 있기 때문에 제품 개발 측면에서는 중국, 일본 등 경쟁사보다 확실히 우위에 있다”면서 “폭이 수 미터에 달하는 분리막의 전면을 균일하게 처리하는 게 어려운 기술이라 품질 면에서도 차이가 크다”고 단언했다.
SKIET R&D센터는 올해 5월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으로부터 독립했다. 글로벌 고객사의 다양한 요구에 부합하는 제품을 적시에 개발하고 기술 내재화를 통해 제품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김 센터장은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벽이 확실히 없어졌고 고객을 중심으로 하는 얼라인먼트(정렬·기업에서 조직과 개인의 목표를 일치시키는 작업)를 확립해 각 고객사를 담당하는 마케팅, 연구, 생산이 연결돼 소통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R&D 분리를 긍정적으로 평했다.
SKIET R&D센터는 최근 김철중 대표이사 사장을 포함한 주요 임직원이 참여하는 MPRQ 미팅을 통해 선행 연구 과제를 업데이트하고 전반적으로 검토했다. MPRQ 미팅은 마케팅(M), 생산(P), 연구개발(R), 품질(Q)을 담당하는 부서가 모여 주요 경영사항을 논의하는 자리로 한 달에 한 번 열린다.
이 자리에서 김철중 사장은 연구진에 고객사, 마케팅팀과 보조를 맞춰 컨센서스(합의)가 구축된 상태에서 R&D를 수행해 줄 것을 특히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객 입장에서 다음에 필요한 연구가 무엇인지 적극 소통하며 관련 기술력을 확보해 나가자는 의미로 읽힌다.
김 센터장은 “차별화된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며 다른 곳에서 넘볼 수 없는 기술을 개발하는 게 목표”라며 “전기차 캐즘(수요 정체)은 내년이면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메이저 배터리사의 메이저 소재사 역할을 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대전=김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