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중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저신용인 취약차주의 대출이 1년 사이 13조원 가깝게 불어났다. 올 1분기 두 자릿 수를 넘긴 연체율도 여전히 떨어지지 않고 있다.
민간 소비가 줄고 내수 회복이 더디게 나타나면서, 빚만 늘고 갚지 못하는 이들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회생이 어려운 자영업자에 대한 적극적인 채무 재조정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득 없는 자영업자, 돈 더 빌렸다=26일 한은이 발표한 금융안정 상황 내 ‘자영업자 대출 및 연체율 동향’ 참고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취약 자영업자의 대출 규모는 121조9000억원으로 1년 전 같은 시기와 비교해 12조8000억원 늘어났다.
이에 따라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 또는 저신용인 취약자영업자의 대출 비중도 10.5%에서 11.5%로 상승했다. 그 수는 약 41만명으로 전체 자영업자 차주의 13.1%에 달했다.
대출 증가 속도는 소득과 신용 차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중소득·중신용 차주의 대출은 줄어든 반면, 저·고소득 및 저·고신용 차주의 대출은 동시에 늘었다.
올해 2분기 중소득 자영업자 계층의 대출잔액은 198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200조900억원에서 2조7000억원이 감소했다. 그런데 저소득 자영업자는 125조2000억원에서 132조3000억원으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고소득도 717조1000억원에서 729조6000억원으로 증가했다.
신용등급별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다. 중신용 대출잔액은 지난해 2분기 196조7000억원에서 179조8000억원으로 16조9000억원 줄었지만, 저신용(32조3000억원→42조4000억원)과 고신용(814조2000억원→838조원)은 늘었다.
▶빚은 늘어나는데, 갚을 능력은 없다=취약 자영업자의 빚은 눈덩이처럼 불고 있지만, 갚을 능력은 더 줄고 있다. 2분기 말 취약 자영업자 대출의 연체율은 10.15%를 나타냈다. 올해 1분기 말 10.21%에 이어 2분기 연속으로 10%대를 기록했다. 취약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0.44%)와 비교하면 20배가 넘는 수준이다.
앞서 몇 년간 응축된 고물가 압력과 장시간 지속된 고금리로 내수 회복세가 지연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풀이된다.
부진한 내수 지표는 최근 발표된 2분기 국내총생산(GDP) 지표에서 여실히 나타났다. 2분기 실질 성장률(-0.2%·전기대비)에 대한 기여도를 보면 민간 소비가 0.1%포인트 성장률을 낮췄다. 건설투자(-0.2%포인트)·설비투자(-0.2%포인트) 등 다른 주요 내수 부문도 ‘마이너스(-)’ 기여도를 보였다.
전반적인 자영업자 대출 규모도 증가 폭은 둔화했지만, 여전히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2분기 말 현재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1060조1000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1.6% 증가했다. 개인사업자대출과 가계대출이 각각 707조8000억원 및 352조3000억원을 차지했다.
연체율도 비슷한 형국이다. 2분기 말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1.56%로, 비은행 대출을 중심으로 상승했다. 자영업자의 가계대출(1.72%)과 개인사업자대출(1.48%) 연체율이 모두 뛰었다. 업권별로 살펴보면 비은행 대출 연체율(3.30%)이 빠르게 상승한 반면 은행 대출 연체율(0.41%)은 전기대비 소폭 하락했다.
▶300만 넘는 자영업자 차주, 선별지원하고 채무 재조정해야=자영업자 차주는 총 312만6000명으로 집계됐다. 이중 개인사업자대출과 가계대출을 모두 보유한 차주는 242만6000명으로 나타났다. 전체 자영업자 차주의 77.6%로 대부분이 개인사업자대출과 가계대출을 모두 이용하고 있다. 개인사업자대출만 보유한 차주는 70만명에 불과했다.
한은은 “향후 자영업자 차주들의 상환능력에 따라 선별적 지원을 지속하는 가운데 회생 가능성이 낮은 일부 취약 자영업자에 대해서는 새출발기금 등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채무 재조정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금융기관들의 양호한 복원력 등을 감안할 때 이들 취약 자영업자의 부실 증가가 전체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태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