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최대 위협 사라졌다…헤즈볼라 수장 나스랄라는 누구

27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베이루트 공습으로 사망한 하산 나스랄라 헤즈볼라 수장 [AFP]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32년간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이끌어온 하산 나스랄라(64세)은 27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베이루트 공습으로 사망했다.

나스랄라는 1960년 베이루트 동쪽 부르즈 하무드 난민촌의 시아파 가정에서 태어난 나스랄라는 남부 항구도시 수르에서 교육을 받고 시아파 정당 아말 운동에 가입했다.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 대응하여 이란 주도로 창설된 헤즈볼라에 합류, 1992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한 공동 창립자 아바스 알무사위의 뒤를 이어 헤즈볼라의 사무총장이 됐다.

나스랄라의 지도 아래 헤즈볼라는 이란의 지원을 받으며 강력한 군사 조직으로 성장, 레바논 정계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당으로 발전했다.

헤즈볼라는 3만에서 5만명의 병력과 12만에서 20만기의 비유도 미사일과 로켓을 보유, 레바논 정부군보다 우세하다고 알려져 있다.

2006년, 나스랄라의 지도 아래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군인 2명을 포로로 잡고 34일간 전쟁을 벌였으며, 이 전쟁은 양측의 승리 선언으로 종결되었다. 헤즈볼라는 아랍권에서 대이스라엘 항전의 성공으로 칭송받았다.

또한, 헤즈볼라는 2000년 이스라엘군의 레바논 철수를 이끌어내고, 역내 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이란의 대리인’으로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2011년 시리아 내전에서는 이란과 함께 위협받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했으며, 지난해 10월 7일 발발한 가자 전쟁 중에는 하마스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표명하며 이스라엘과 11개월 넘게 대치했다.

헤즈볼라는 하마스와 이라크 내 친이란 민병대 등 다른 ‘저항의 축’ 세력의 무장대원 훈련소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나스랄라는 ‘세예드(sayyid)’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얻었으며, 이란 쿰의 신학교에서 수학한 바 있고, 이란 이슬람 혁명을 시아파의 지위 향상 모델로 여긴다.

검은 터번과 턱수염을 기른 나스랄라는 예루살렘 해방과 평등한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주장해왔다.

2006년 이스라엘과의 전쟁 이후, 나스랄라는 대중 앞에 나타나는 것을 극도로 피하며 보안을 강화했다. 2002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는 취재진의 펜까지 검사할 정도였다.

나스랄라는 주로 TV 연설을 통해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며, 최근 연설에서는 헤즈볼라 대원들을 사망케 한 공격을 비난하고 보복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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