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과 재해석…아티스트가 가져야 할 태도” [헤럴드디자인포럼 2024]

황정록 시니어 페이셜 아티스트가 캐릭터 제작작업에 참여한 영화 ‘아바타2’ 키리. 그는 70세가 넘는 배우 시고니 위버의 연기 데이터를 바탕으로 14세 소녀 캐릭터 얼굴 움직임을 표현했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가상 캐릭터 얼굴이 움직이도록 작업할 땐 때때로 고집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제 고유의 예술성을 지켜내되, 영화 제작의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조화롭게 협업을 해냈을 때, 더 멋진 성공을 이루게 되는 것 같아요.”

나만의 독창성이 발휘되면서도 대중적으로 공감 얻을 수 있는 디자인을 찾는 것. 이는 아티스트들이 가진 오랜 고민이다.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고 두 영역의 교집합을 찾아내는 것이 여간 쉽지 않아서다.

오는 10월 8일 서울 반포 세빛섬에서 ‘헤럴드디자인포럼 2024’ 강연자로 나서는 황정록 시니어 페이셜 아티스트는 헤럴드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아티스트가 가져야 할 태도로 ‘창의성의 재해석’을 강조했다.

영화 ‘반지의 제왕’, ‘아바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등을 만든 세계적인 스튜디오 웨타FX에서 활동하는 그는 시각특수효과(VFX) 디자인의 현재이자 미래로 평가받는다. 그런 그가 특히 애착을 갖는 캐릭터는 전설의 흥행 신화를 쓴 영화 ‘아바타2’ 제이크와 키리다. 그중에서도 키리는 70세가 넘는 배우 시고니 위버의 얼굴을 14세 소녀 캐릭터로 세월을 거슬러 담아내야 하는 매우 도적전인 작업이었다.

황정록 시니어 페이셜 아티스트

황 아티스트는 “모든 얼굴 표정과 세세한 감정이 담긴 시고니의 연기 데이터를 바탕으로 어린 키리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아티스트만의 재해석은 필수적”이라며 “생동감 있게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고양이의 표정을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방대한 레퍼런스를 재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나만의 방식으로 감정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얼굴 표정에 대한 해부학적 이해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감독의 요구 너머에 있는 의도를 간파하고 이를 자신의 독창적인 작업과 접목시키는 능력이 놀라운 결과를 만든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영화 감독인 제임스 카메론의 피드백은 때로는 추상적인데, 때로는 매우 세밀했다”며 “감독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이해하려고 많은 고민과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현실적이고 직설적인 조언도 나왔다. 그는 “캐릭터에 대한 제 욕심이 커질 때 프로젝트의 데드라인에 시달리게 된다”며 “이런 순간에는 자신을 좀 내려놓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그의 노력의 결실은 키리가 지난해 미국시각효과협회 어워즈(Visual Effects Society Awards)에서 포토리얼 영화 부문 최고 애니메이션 캐릭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누리게 했다. 그는 “특수효과 분야에서 아카데미와 같은 VES에서 상을 받은 것은, 캐릭터를 만든 아티스트로서 영화 주연상을 받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며 기쁜 내색을 보였다.

황 아티스트는 캐릭터 얼굴의 움직임을 만드는데 크게 세 가지 기준으로 캐릭터의 성격, 장면의 맥락, 그리고 관객의 기대감을 꼽았다. 이에 따라 현실적으로 묘사하는 ‘리얼리즘’ 추구와 사실주의에서 벗어나는 ‘스타일라이제이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판단이 따른다는 설명이다.

그는 “결국 결정의 기준은 캐릭터 요구사항과 해당 장면의 목적에 있다”며 “그래야 캐릭터가 더욱 생동감 있고,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영화 ‘지. 아이. 조’에서 듀크 역을 맡은 배우 채닝 테이텀을 재현한 디지털 배우를 최대한 현실에 가깝게 만든 반면, 영화 ‘고질라 X 콩: 뉴 엠파이어’에서 심술 궂은 캐릭터 스칼링을 제작할 때는 개성을 살린 과장된 표정을 강조한 이유다. 영화 ‘아바타2’에서는 배우의 세밀한 표정과 감정을 사실적으로 추구하면서도, 아티스트의 창의성을 더한 캐릭터를 완성해야 했다. 그는 “제이크와 키리 같은 캐릭터들은 배우의 얼굴 표정 데이터를 바탕으로 영화 설정인 나비족의 특성에 맞게 디자인됐다”고 했다.

황 아티스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고 있다. 인공지능(AI) 활용으로 기술과 예술의 결합이 더욱 강력해졌기 때문이다. 황 아티스트는 “최근 AI를 사용해 디지털 배우를 만들었는데, 완성도가 매우 향상됐다”며 놀라워 했다.

내년에 나올 영화 ‘아바타3’를 작업 중인 그는 “캐릭터 제이크와 키리를 더욱 생동감 있게 보완하고 있다”며 “새로운 차원의 모습에 크게 놀라게될 거라 확신한다”고 자신했다.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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