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자동차 급발진…”EDR 분석만으론 불충분”

3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제2차 제조물 책임법 개정을 위한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김도윤 기자]

[헤럴드경제〓김도윤 수습기자] "사고기록장치(EDR) 사고 분석이 제조사 책임의 면죄부를 주는 법적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차량 급발진 사고 조사에서 주요하게 사용하는 EDR의 저장 주기와 수집 정보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난달 30일 국회에서는 열린 ‘제2차 제조물책임법 개정안 정책 세미나’에서 나왔다. 현재의 EDR은 운전자의 행동 같은 사고 원인 파악에 중요한 요소를 제한적으로만 기록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날 세미나에는 소비자와 함께, 참여연대,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 등 여야 의원 10명과 상명대학교 반주일 교수, 대덕대학교 이호근 교수, 주식회사 로데이터 박정철 변호사, 국토부 관계자, 한국자동차 모빌리티 산업협회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현행 제조물책임법에 따르면 소비자가 제조물의 정상적인 사용 과정에서 발생한 손해를 입증해야만 제조사의 책임이 인정된다. 특히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의 경우, 사건 발생 이후 급발진 사고 당시와 동일한 조건에서 현상을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가 차량 결함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하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급발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사고 전후의 운행 정보가 저장되는 장치인 EDR을 분석한다. EDR은 사고 발생 5초 전부터 0.5초 간격으로 속도와 엔진 회전수, 가속 페달 밟은 정도, 브레이크 사용 여부 등의 정보를 기록한다. 그러나 국내에서 EDR 감정으로 차량의 기계적 결함이 인정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EDR이 최종 데이터만을 기록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엔진이나 자동변속기 등을 제어하는 전자 제어 장치의 오류로 급발진 현상이 발생한 경우, 원래 운전자의 조작이 아닌 오류로 발생한 기록만 EDR에 남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발제자로 나선 반주일 교수는 "운전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속이 되기도 하고 간헐적으로 제동이 안 되기도 하며 브레이크 페달이 무거워지기도 하는데 유독 급발진만 제조사의 책임이 아닌 운전자 오조작이라고 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반 교수는 이어 "EDR 장치는 당시 차량의 동작은 알 수 있어도 운전자의 행동은 증명하지 못한다"며 "미국에서는 EDR을 20초 동안 기록하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우리 정부도 저장 주기를 0.5초에서 0.1초 간격으로 조절하고, EDR 기록 항목을 45개에서 67개로 늘리도록 하는 내용의 법 개정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다른 전문가들은 국내 급발진 사고와 관련한 대책으로 크게 두 가지 방안을 제안했다.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제도 개선을 두고 문재승 사단법인 한국소비자안전협회 회장은 "입증 책임 완화나 전환에 있어, 제조 회사들이 그 입증에 있어서 급발진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를 생각하기 전에 설계 개발 단계에서 결함의 가능성이나 오류의 발생 가능성을 제조사가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해결해야 한다"며 "자료 제출 명령제도나 입증 책임 전환제도 도입 얘기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했다.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교수는 "제조사의 책임이냐 운전자의 오조작이냐 하는 문제는 1960년대부터 꾸준히 제기된 문제"라며 "기업과 소비자가 주장의 입장 차이가 분명한 사안인 만큼, 급발진 원인 규명을 위해 정부가 중재자적 입장에서 갈등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사고 방지를 위한 예방책을 두고 문학훈 오산대 미래전기자동차학과 교수는 "가정 내 두꺼비집에 전원을 내리면 모든 전기가 끊어지는 것처럼, 자동차의 전원을 차단하게 되면 급발진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차량의 비정상 주행 시 전원을 끄는 방법을 운전자들이 숙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운전 중 시동 버튼을 2초 이상 길게 누르거나 버튼을 3초 이내에 3회 누르는 방식을 말한다.

국토부 김혁 사무관은 "(급발진 사고에서) EDR가 화두인 만큼 기록 항목이나 기록 조건을 확대하는 방안을 지속 추진하고 관련법이 법제처 심사 단계까지 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다만 미국에서도 아직 입법 예고가 있을 뿐, 시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개정 동향을 계속 살피면서 안전 기준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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