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그륜 디자이너의 개인 NFT 작품 영상 화면 |
“지금까지는 ‘장인정신’의 인재가 인정받았다면, 앞으론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아티스트가 주목받는 시대입니다.”
김그륜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는 디자인업계의 변화 속도가 빠르지만, 한편으로는 쉽다고도 했다. 조금만 관심 갖는다면, 어렵지 않게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새롭게 생겨나는 정보에 빠르고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아티스트를 강조했다.
김 디자이너는 리드 애니메이터이자 아트 디렉터로 존경받는 저명한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이다. 뛰어난 메인 타이틀 제작 능력으로 에미상 수상 이력을 갖고 있다. 그는 오는 8일 서울 반포 세빛섬에서 열리는 ‘헤럴드디자인포럼 2024’에 연사로 참석,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의 경험담과 업계 변화를 강연할 예정이다.
김그륜 디자이너 |
그는 헤럴드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올해는 커리어의 가장 큰 꿈을 이룬 한 해”라고 소회를 밝혔다. 동명의 비디오게임으로도 유명한 드라마 ‘더 라스트 오브 어스(The Last of Us)’의 메인 타이틀 제작으로 에미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김 디자이너는 “(더 라스트 오브 어스가) 저에게 정말 의미가 큰 작품”이라며 “이미 다른 프로젝트 작업 중이라 처음부터 이 작품에 참여한 건 아니었다”고 귀띔했다. 이어 “어느 날 감독이 ‘곰팡이 번지는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느냐’고 물었고, 곰팡이가 자라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테스트 영상을 보내줬더니 이에 크게 만족하며 팀에 합류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어두운 분위기 속 디테일이 많은 작업을 좋아하는데, 이 작업은 정말 잘 맞았고 매순간 즐겁게 일했다”며 “곰팡이가 자라는 속도에 맞춰 카메라가 이어지는 방식으로 좀비 바이러스에 두 주인공이 가까워지는 여정을 표현한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그의 명성은 이 뿐만이 아니다. DC 코믹스의 ‘둠 패트롤’, ‘아마존 헌터스’, ‘황금나침반’, ‘맨 인 블랙’, ‘도금 시대’ 등 유명 프로그램의 메인 타이틀을 제작한 애니메이션팀을 이끌었다. TV광고 프로젝트로도 영역을 넓히며 IF(International Forum), 레드닷, 텔리, 뮤즈 등에서도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최근엔 교육으로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전미 방송협회 NAB(National Association of Broadcasters), 시그라프(Special Interest Group on Computer Graphics and Interactive Techniques) 등이 주최한 행사에서 발표자로 나서는가 하면, 유튜브나 강연 등을 통해 다양한 전문지식을 알리는 일에도 매진하고 있다.
지금은 애플TV 콘텐츠팀에서 활동 중이다. 그는 “올해 새롭게 출시된 애플의 MR 디바이스 ‘비전 프로’에 적용될 그래픽 작업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튜브 채널도 활발히 운영 중이다. 특히, 생생한 교육과 정보전달로 업계에 관심 있는 이들의 반응이 뜨겁다. 그는 “ ‘다 함께 성공하자’라는 게 삶의 모토”라며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양질의 정보를 함께 공유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같이 준비하자는 마음으로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공부하는 동시에 그 내용을 바탕으로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이를 소통해 외부로부터 더 좋은 아이디어를 얻는 ‘아웃풋 계획’을 많이 활용한다”며 “이런 계획을 AI 공부에도 적용시켜 사람들과 학습한 결과를 공유할 수 있는 별도 웹사이트를 만들었고, 그 내용을 정리해 유튜브 채널로 공유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AI는 최근 모션 그래픽 업계의 뜨거운 화두다. 그는 “아직 실무적으로 보면 AI의 작업이 부자연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금방 개선될 것”이라며 “앞으로 영상 제작에서 AI는 없어선 안 될 효율적 방법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이젠 콘텐츠만 보고 합성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힘든 수준으로까지 발전했기에 정보의 진위를 확실히 파악하고 AI의 결과물이 믿을만한지 알 수 있어야 한다”며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다면 이를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최근 실제 AI를 활용해 만든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화제를 낳았다. 김 디자이너는 “AI로부터 상상 이상의 결과물이 나올 때가 많아 정말 많이 놀라고 있다”며 “특히 사전 단계(프리프로덕션)에선 AI 제작을 병행하는 게 실무에 더 좋은 효과를 가져왔다”고 전했다.
AI가 모션 디자이너의 일자리를 위협할지에 대해선, “정말 실감 나는 작업이나 복잡한 시뮬레이션 작업도 AI가 순식간에 제작하고, AI가 발전할수록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며 “다만 AI가 모든 일자리를 대체하기보단 작업 파이프라인을 많이 바꿀 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했다.
국내 모션 그래픽 디자인 업계의 잠재력도 높이 평가했다. 김 디자이너는 “한국에선 영상업계 학습 시스템이 잘 돼 있어 상향평준화된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호평했다. 이어 “다만 독특하고 트렌드를 주도하는 작품은 드문 편이다. 해외 아티스트의 정보를 찾아보고 작품을 깊이 분석한다면 한국의 많은 아티스트들도 글로벌 인재로 급부상하리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김상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