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희(왼쪽부터)·루나파크·김하나 ‘작가 3인방’이 지난 9월 24일 헤럴드 사옥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안효정 기자 |
“어디서 무엇을 하든 늘 더듬이를 세우고 다녀요. 방금 본 버스 광고가 흥미로웠다 싶으면 메모하고, 약속에서 만난 친구의 말이 웃겼다 생각되면 바로 적고…. 평소에 제가 보고 듣는 것들을 자주 기록으로 남기면서 영감을 얻고 있죠.” (루나파크 작가)
“영감은 괜히 각을 잡고 끌어내려고 할수록 부담감이 커지고 그 결과물도 억지스러워지는 것 같아요. 오히려 산책이나 샤워 등 일상적인 것들을 하던 중에 더 잘 떠올라요.” (구희 작가)
“남자친구랑 수다를 떨다가, 가족들과 오늘 하루 있었던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갑자기 ‘어?’ 하고 영감이 생기는 경우가 많아요.” (김하나 작가)
특별한 곳, 색다른 활동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일상 생활에서 창작의 소재를 찾는 이들이 있다. 김하나 이모티콘 작가, 구희 웹툰 작가, 루나파크 만화 작가가 그렇다. 이들은 새로움보다 익숙함에서 길어낸 영감을 바탕으로 창작 활동을 할 때 콘텐츠·대중 사이의 공통 분모가 넓어지고, 그만큼 디지털 세계에서 대중의 공감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 ‘작가 3인방’은 오는 10월 8일 서울 반포 세빛섬에서 열리는 ‘헤럴드디자인포럼 2024’의 ‘스페셜 토크’ 무대에 올라 각자의 창작 가치관 등을 전달한다. 이들은 포럼에 앞서 지난 9월 24일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가진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현장 경험과 소회 등을 얘기했다.
▶만화와 이모티콘…대중과 친밀하게 다가갈 수단=이들은 만화나 이모티콘이 갖는 장점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보통통한 강아지’, ‘우리는 연애 중’, ‘냥모티콘 총총’ 등으로 꾸준히 카카오톡 인기 이모티콘 상위권에 오르는 김하나 작가는 “이모티콘은 캐릭터 기반의 콘텐츠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아 좋다”고 했다.
전세사기 극복 과정을 만화로 풀어내 사회적 공감을 이끈 루나파크 작가는 “다소 무겁고 어려울 수 있는 내용도 만화를 활용하면 독자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또 편하게 전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송보송한 그림체로 기후위기 등 환경 문제를 알리고 있는 구희 작가도 “독자들이 만화를 읽을 때 작가는 그들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게 된다”며 “만화는 시간성을 부여할 수 있는 게 강점”이라고 말했다.
작가들 모두 콘텐츠를 담아내는 툴(tool)은 다르지만 영감을 얻는 곳은 비슷했다. 바로 일상 속 평범한 경험들이다. 구희 작가는 “과학자나 철학자도 목욕하다가 아이디어가 번뜩 떠오른다고 하지 않느냐”면서 “힘을 주고 뭔가를 찾으려고 하지 않고 반대로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생활하려고 한다. 그러다 콘텐츠 소재를 발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루나파크 작가도 “하루를 편하게 보내면서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하나씩 휴대폰에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면서 “기록 당시에는 아무 말이나 써놓은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모아놓은 ‘메모의 숲’을 보면 영감이 떠오른다”고 했다.
김하나 작가는 “평소 친구와 가족, 지인 등과 메신저로 대화를 나눌 때 문장의 서술어에 집중하는 버릇이 있다”며 “메시지를 보내는 순간마다 ‘아, 이런 이모티콘 없나?’ ‘이럴 땐 어떤 이모티콘이 있으면 좋을까?’ 등의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데, 이런 것들을 놓치지 않고 그때그때 노트에 적어두는 편”이라고 전했다.
▶대중과의 소통,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이들은 창작 활동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대중과의 소통’이라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하나 작가는 “이모티콘은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숨쉬는 콘텐츠”라며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내 이모티콘을 쓰면서 관계를 즐겁고 편안하게 이어갈 수 있을까 고민하며 제작한다”고 말했다.
구희 작가도 “결국 콘텐츠가 통하려면 작품에 재미가 있어야 한다”라며 “재미있는 분위기 속에서 독자들이 계속 머물 수 있도록 해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루나파크 작가는 대중과의 소통에서 ‘통찰’을 주목했다. 그는 “대중은 모두가 막연하게 느끼고 있었던 걸 작가가 말해줬을 때, 쉽게 말해 ‘가려웠던 부분을 제대로 긁어줬을 때’ 반응하는 것 같다. 이런 통찰을 갖고 대중에게 다가가고자 노력한다”고 했다.
물론 대중과 활발한 소통하려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도 적지 않다. 김하나 작가는 인기 순위, 실판매 순위 등 객관적·정량적 지표가 바로 나오는 이모티콘 산업 특성을 꼽았다. 그는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자극이 되는 한편, 이전만큼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할까봐 불안하기도 하다”고 털어놨다.
루나파크 작가도 “독자 반응이 신경 쓰여 애초 구상했던 전개 방식과 다르게 이야기를 풀어야 하나 고민했던 적이 많다”며 “건설적인 비평은 받아들이되 무분별한 비난은 넘어갈 줄 알아야 하는데, 그건 항상 어려운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콘텐츠 크리에이터(creator)가 갖는 창의성의 세계는 무한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하나 작가는 “크리에이터는 곧 콘텐츠를 매개로 대중과 만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며 “대중들의 관심사와 가치관 등이 시대에 따라 계속 변하기 때문에 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작가의 영감 포인트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루나파크 작가도 “시간이 지나면 대중도 변하지만 작가들도 바뀐다. 변화무쌍한 이 두 집단의 상호작용을 통해 작품이 만들어지다 보니 창의성은 무한하게 생성될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구희 작가는 “콘텐츠를 본 독자들이 콘테츠 밖의 세계에서 표출하는 반응과 뿜어내는 영향력까지 고려한다면, 또 그것들에 작가가 다시 영감받는 것까지 아우른다면 창작 활동에는 한계가 없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선한 영향력 줄 콘텐츠 만들고파=이들은 향후 꿈꾸는 미래에서도 ‘대중·독자’라는 요소를 빼놓지 않았다. 구희 작가는 “평소 좋아하는 작가들의 콘텐츠를 살펴보면 스스로가 미래의 자신에게 기대하는 바를 알 수 있다”며 “나의 경우, 내 심성을 건드려 날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콘텐츠에 눈길이 자주 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그리는 만화를 통해 독자와 내가 함께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쪽으로 변화하고 싶다”며 “느리더라도, 꾸준히 그렇게 뚜벅뚜벅 걸으며 같이 성장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루나파크 작가는 ‘감동시키는’과 ‘움직이는’의 두 가지 뜻을 지닌 단어 ‘무빙(moving)’을 키워드로 삼고 있다고 했다. 그는 “독자가 내 작품을 보고 난 뒤, 이전과 비교했을 때 마음이 달라졌다고(moving, 감동시키는) 느낄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며 첫번째 목표를 제시했다. 이어 “시간이 축적되는 대로 고여있지 않고 계속 변화를 추구하고 달라지는 세상과 독자들에 맞춰 부지런히 움직이는(moving, 움직이는) 작가가 될 것”이라고 두번째 목표를 말했다.
김하나 작가는 이모티콘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나아가 이모티콘에 서사를 부여해 메시지도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모티콘은 직관적인 미디어라 사람들을 설득하고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된다”면서 “이를 활용해서 캐릭터에 이야기를 덧붙인다면 사업의 확장성이 무궁무진해질 것이다. 먼 미래일 수 있지만 언젠가는 캐릭터 비즈니스를 제대로 도입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안효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