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데바 워크숍? 의대생 교육용만으로도 부족한 실정”[카데바 비즈니스]

지방의 한 의대 해부학 실습실의 모습 [연합]

[헤럴드경제=이용경·박지영 기자] 의과대학 교육에 가장 중요한 자원 중 하나는 의료 실습용 기증 시신, 즉 ‘카데바(Cadaver)’다. 해부 실습을 받는 의대생들은 카데바를 통해 사람의 신체 구조와 질병 메커니즘을 배운다. 하지만 의대생 모두에게 균등한 교육이 이뤄지는 건 아니다. 시신 기증이 많은 일부 의대에선 학생들 교육 외에도 외부 워크숍에서 카데바를 활용할 정도로 그 수가 충분했던 반면, 기증이 태부족한 의대에선 학생 교육용으로 활용하기에도 벅찬 실정이다.

문제는 정부가 내년부터 의대 정원을 확대키로 하면서 카데바 수급 불균형에 따른 교육 양극화가 더욱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다만 카데바를 대학 간 공유하도록 추진하겠다는 정부 계획을 두고서 의료계 안팎에선 부정적 기류가 관측된다.

▶카데바 1구에 실습 의대생 최대 20명 몰렸다= 의대에선 통상 카데바 1구당 5~6명의 학생들이 해부 실습을 받는 것이 적정한 규모로 알려져 있다. 이는 학생들이 카데바를 직접 해부하고 관찰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설정된 기준이다. 하지만 카데바가 부족한 대학들에선 이 같은 기준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일부 대학에선 카데바 1구당 해부 실습을 받는 의대생이 적정 인원의 2배가 넘었다. 5~6명당 카데바 1구를 배정해 교육하는 의대에 비해 실습 경험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30일 헤럴드경제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실로부터 회신받은 ‘최근 3년간 전국 38개 의과대학별 교육용 시신 확보 현황’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카데바 1구당 실습인원이 가장 많았던 대학은 차의과학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카데바 9구를 보유했던 차의전원에선 카데바 1구당 의대생 20명이 모여 실습 교육을 받았다. 이 밖에도 경북대에선 15명이, 경희대에선 12.3명이, 가톨릭관동대와 동아대에선 각각 11.8명이 카데바 1구로 해부 실습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카데바 보유 구수가 551구로 가장 많았던 가톨릭대는 5.7명당 카데바 1구를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카데바 보유 구수가 다른 의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던 이화여대(73구), 성균관대(60구), 한양대(50구), 강원대(38구), 아주대(40구)도 각각 카데바 1구당 5.4명, 5명, 5명, 4.3명, 4명씩 수업을 들은 것으로 조사됐다. 상대적으로 여유 있게 교육이 이뤄질 수 있는 조건이었던 셈이다.

카데바가 부족한 의대에선 의대생들이 직접 해부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제대로 된 실습 교육을 받기 어렵다. 카데바 1구에 12명의 의대 동기들과 함께 실습했던 전공의 A씨는 헤럴드경제에 “해부실습은 기간에 따라 상지, 하지, 머리목, 복부, 흉부 등 파트로 이뤄지기 때문에 공간상의 제약으로 한 부위에 위치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많아야 2~3명 수준”이라며 “메스를 다루다보니 위험해서 결국 1~2명으로만 절개해 들어가는데, 그러면 보통 사람들을 나눠서 누구는 다른 테이블(일반책상)에서 책을 보면서 ‘여기 구조물 뭐 있었지’ 하며 복기하며 공부하고, 계속 교대해가는 그런 구조로 실습했다”고 말했다.

그는 “실습 조원수가 많다 보면, 내 차례가 돼 해부를 하려고 해도 갑자기 수업이 빠르게 진행돼 있는 경우가 자주 있긴 하다”며 “내가 직접 해부하면서 보는 것과 남이 이미 해부해서 분리돼 있는 걸 보는 것은 차이가 있다”고 덧붙였다. 카데바 1구당 8명씩 실습했던 전공의 B씨도 “카데바 해부가 생각보다 체력이 많이 소모되는데, 8명이서 할 때는 확실히 직접 메스를 들고 시신을 해부할 기회가 적게 돌아간다는 느낌이 들긴 했다”고 말했다.

경희대 의대 관계자는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카데바 수급이 원활한 곳은 1구당 학생 6명에서 8명 정도가 배정돼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해부 실습을 할 수 있다”며 “하지만 학생 수가 그보다 많아지게 되면 누군가는 실습에 있어 메스를 들고 해부하는 등의 일정한 역할 배정을 받지 못하고 머물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카데바를 직접 육안으로 보는 것도 인원이 많으니까 한 번에 보지 못한다”며 “자연히 수업에 대한 참여도도 떨어지고 메스 등 수술도구로 인한 안전사고 발생 위험도 있어 여러 어려움이 크다”고 덧붙였다.

동아대 의대 관계자도 “카데바 1구에 학생들이 너무 많이 붙는 데 대한 교육 진행상 어려움을 교수들도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며 “가장 급선무인 건 기증 시신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어서 현재 안치실을 확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는 20구의 카데바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라 시신 기증을 더 받고 있지는 못하는 상황”이라며 “물론 시신 기증을 받고 싶다고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냉장고 등 안치시설을 확충해 학생들 교육에 문제 없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복지부 ‘카데바 공유’ 추진…부정적 기류도 관측= 정부는 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5년도부터 의대 정원을 증원할 예정이다. 의대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면, 더 많은 카데바가 필요하다. 최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 국립대로부터 제출받은 ‘비수도권 소재 국립대학 의대정원 증원 수요조사서’에 따르면, 국립대 9곳에서만 2030년까지 추가로 확보해야 할 카데바가 약 1286구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또한 지난 5월 김인범 가톨릭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와 주경민 성균관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등은 대한의학회 학술지(JKMS)에서 “의대 정원이 2000명 확대될 경우 전국 의대에 해부학 교수 82명, 카데바 270구가 더 필요하다”는 연구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다만 시신 기증은 기증자와 유족의 자발적 기부에 의존하는 구조여서 원하는 만큼 수급이 안정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특히 수도권을 중심으로 일부 종교를 기반으로 한 대학들에 기증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지방에 있는 사립의대는 현실적으로 카데바 수급에 더욱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정부에선 이와 관련한 여러 정책적 개선을 꾀하고 있지만, 해부학계 등 일각에선 벌써부터 부정적 반응이 나온다. 기증자나 유족의 동의를 얻더라도 ‘카데바 공유’라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에서다. 앞서 복지부는 지난 10일 ‘의학교육 여건 개선을 위한 투자 방안’을 발표하며 카데바를 둘러싼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껏 문제로 제기돼 왔던 카데바 혼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기증자와 유족이 동의할 경우 대학들끼리 카데바를 공유할 수 있도록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주된 골자였다.

지방의대 소속 한 해부학 기사는 복지부가 추진하는 제도 개선에 대해 “카데바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의대에서 공유를 해준다면야 부족한 의대 입장에서 당연히 좋겠지만, 해당 대학들이 지금껏 카데바를 워크숍 등에 운영하면서 대학 재정으로 충당해온 부분도 있기 때문에 (공유가)쉽지는 않을 것 같다”며 “더구나 기증하신 분들 사이에선 기본적으로 ‘특정 의대에 시신 기증을 했는데 왜 다른 의대로 보내느냐’는 어떤 반발도 많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서울 소재 의대 한 카데바 담당자도 “기증자의 동의뿐만 아니라 시신운구 등 제반 조건이 엄격하게 설정돼야 가능한 방법인 것 같다”고 비판 취지로 말했다. 그는 “동의를 전제로 하더라도 유가족들은 굉장히 부정적으로 생각할 것 같다”며 “나쁘게 얘기하면, 어딘가로 ‘팔린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과연 카데바를 공유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맞는 방법일까 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에서 모든 절차상 지원을 해준다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의대 서로 간에 카데바 공유를 하다보면 실무에 있어 부정적 반응이 나올 것 같다”며 “기본적으로 정부가 ‘시신만 배정하면 끝’이라는 식으로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수도권 소재 의대에 근무하는 행정담당자는 “유가족들의 유지(遺志)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상황에 따라 학교 교육행정을 바꿔서라도 학생들이 충분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려면 적어도 디테일한 법 개정이 선행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한해부학회 소속 의사도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해부학회 안에서도 이미 카데바 공유를 추진하는 정부 정책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시신을 이동시킨다는 것이 비용도 많이 들고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다”며 “지금도 각 지자체에서 잘 하고 있지만, 시신기증 운동을 확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편집자주

지난 6월, 비의료인 대상 ‘카데바(시신) 워크숍’이 사회적 문제가 됐습니다. 기증 받은 시신이 누군가에 의해 영리 목적으로 활용됐다는 의혹은 지탄을 받았습니다. 지난 7월 보건복지부는 최근 3년간 국내에서 의료 교육 목적으로 활용된 카데바는 전체 4657구 중 1610구(34.6%)라고 밝혔습니다. 나머지 3047구의 카데바는 어디로 갔을까요. 헤럴드경제 취재팀은 이 사라진 카데바를 추적했습니다. 그 끝은 ‘윤리와 영리’로 이어졌습니다.

시신 기증은 한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사회 공헌입니다. 이런 선의가 누군가의 이익으로 귀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고민도 있었습니다. 카데바 기획 기사가 시신 기증을 꺼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카데바는 더 투명하게 관리·감독 돼야 한다고 믿습니다. 내 시신이 어떻게 활용되는지가 투명하게 관리된다면 더 많은 시신 기증 사례가 나올수 있습니다.

취재진은 지금도 카데바 관련 제보를 받고 있습니다. go@heraldcorp.com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끝까지 취재해 꼼꼼하게 보도하겠습니다.

〈카데바 비즈니스〉 싣는 순서
①평생 자부심이었던 시신기증…“우리가 상품인가요?”

②[단독]‘나랏돈’ 들어간 비의료인 대상 카데바 교육…‘복지부 보고’도 패싱

③[단독] ‘카데바 쏠림’의 부작용…1구당 지출 영수증 보니

④[단독]카데바 워크숍 연 대학들 “실비 수준”…정부 비용 분담 필요성 제기

⑤[단독]의대생 교육에 쓰인 카데바는 매년 30%대

⑥“카데바 워크숍? 의대생 교육용만으로도 부족한 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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