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 [부산국제영화제] |
[헤럴드경제(부산)=이정아 기자] 남풍도와 거제시 구조라 마을.
한국인에게도 낯선 이토록 작은 동네에 ‘혼밥 시초격’이자 ‘원조 먹방’의 대명사인 고로 상이 당도했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세계 처음으로 공개되는 영화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 속 주인공 이야기다.
만화를 원작으로 2012년부터 TV도쿄를 통해 방영되고 있는 대표적인 일본의 장수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가 첫 극장판을 내놨다. 10개 시즌이 제작된 TV 시리즈에서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를 연기한 마츠시게 유타카는 직접 연출을 맡아 마침내 영화까지 만들었다. 마츠시게는 3일 부산 해운대구 영상산업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제가 이 드라마를 처음 만났을 때는 ‘아저씨가 밥 먹을 뿐인데 재밌다는 사람이 있을까’하고 불안했다”며 “그런데 오랫동안 사랑받으며 영화까지 만들어지다니 기적과도 같다”고 말했다.
영화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 감독으로 데뷔한 마츠시게 유타카가 2일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영화 속 등장하는 ‘건낫토’를 먹으며 레드카펫을 밟았다. 그는 영화에서 주연 배우로도 등장한다. [뉴시스] |
‘혼밥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이는 마츠시게가 가장 기억에 남았던 한국인 시청자의 반응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과 중국, 대만에서 특히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셔서 놀랍다”며 “솔직히 아시아는 운명공동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독한 미식가를 영화화하기로 결심한 초기에 봉준호 감독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봉 감독이 연출을 맡으면 ‘드라마와는 다른 피’를 영화에 넣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두 감독은 지난 2009년 영화 ‘도쿄!’에서 인연을 맺었다.
마츠시게는 “유감스럽게도 봉 감독과 일정이 맞지 않았는데, ‘꼭 완성되기를 기대한다’는 답장을 받았다”며 “봉 감독이 기대한다니 꼭 영화를 해야겠는데 다른 감독에게 맡기느니 그냥 내가 하자고 마음먹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가 감독으로 첫 데뷔하게 된 배경이다. 그는 “요즘 일본 TV업계 환경이 좋지 않은데 스태프들을 성장시키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고도 덧붙였다.
영화에서 일본의 수입 잡화상을 홀로 운영하는 고로 상은 프랑스 파리에 갔다가 죽기 전 어린 시절 먹었던 어떤 국물을 맛보고 싶다는 노인의 부탁을 듣게 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고로 상은 일본 섬에서 예기치 못한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극적으로 한국 섬에 도착한다. 110분 분량의 영화는 TV 시리즈와 달리 고로 상의 맛집 기행에 이처럼 특별한 사연을 부여했다.
영화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 [부산국제영화제] |
무엇보다 영화에는 공감을 자아내는 코미디적 요소가 가미됐다. 고로 상을 맞이하는 입국 심사 직원으로 배우 유재명이 출연하는데, 실제로 그가 등장하는 장면마다 관객석에선 웃음소리가 터졌다. 마츠시게는 영화 ‘소리도 없이’(2020)에서 연기하는 유재명을 보고 ‘이 사람이다 싶었다’고 했다. 그는 “말이 통하지 않아도 함께 웃음을 자아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데, 잘 표현됐다”며 “유재명과 함께할 수 있었다는 게 이번 영화의 큰 성과”라고 강조했다.
마츠시게는 감독을 맡게 되면서 한국에서 직접 촬영 장소를 물색하고 음식도 선정했다. 영화에는 황태해장국, 고등어구이 등 친숙한 한국 음식들이 저마다 맛깔나게 담겼다. 정갈하게 차려진 음식의 참맛을 음미하는 고로 상의 모습은 없던 입맛까지 되살아나게 만드는 강력한 영화적 흡입력을 발휘한다. 그는 “특히 아시아 사람들은 ‘먹는 행위’에 대해 친근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후쿠오카에서 태어나고 자란 마츠시게는 “어렸을 때부터 한국 라디오 방송을 듣고 성장했다”며 “한국은 일본과 가깝고 비슷한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바다를 건너기만 하면 같은 식재료로도 맛을 내는 방법이 이렇게 달라진다는 게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오늘은 삼겹살, 삼계탕, 부추전 중 하나를 먹고 싶다”며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