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왼쪽부터) 삼성전자 회장,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전략기획담당 사장. [연합] |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등 재계 1위 삼성그룹 일가의 주식 재산 규모가 약 3개월 만에 9조원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3분기 ‘어닝쇼크’를 기록한 국내 증시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 주가의 폭락세가 이 같은 결과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면서다.
9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전날 종가 기준 이재용 회장, 홍라희 전 관장, 이부진 사장, 이서현 사장 등 삼성가(家) 일가 4인이 보유한 주식의 지분평가액은 총 29조8886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삼성전자 주가가 종가 기준 연중 최고치(8만7800원)를 기록했던 지난 7월 11일 기록한 38조8080억원과 비교했을 때 8조9194억원이나 줄어든 것이다. 전체 주식 재산의 5분의 1이 넘는 금액이 허공으로 사라진 셈이다.
국내 주식 부자 순위 1위 이재용 회장의 주식 지분평가액은 이 기간 16조8621억원에서 13조5843억원으로 3조2778억원이나 줄었다. 그 뒤를 이어 홍라희 사장 2조7047억원(3위, 8조8567억→6조1520억원), 이서현 사장 1조4782억원(5위, 6조2331억→4조7549억원), 이부진 사장 1조4587억원(4위, 6조8561억→5조3974억원) 순서로 주식 지분평가액이 줄었다.
이 과정에서 홍라희 사장은 주식 부자 순위 2위 자리를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9조6770억원)에게 내준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가 4인의 주식 지분평가액이 큰 폭으로 감소한 가장 큰 요인으로는 삼성전자 주가의 급락세가 꼽힌다. 이 기간 삼성전자 주가는 무려 31.32%(8만7800→6만300원)나 하락했다.
홍라희 전 관장이 보유했던 삼성전자 주식 지분평가액은 7월 11일부터 전날까지 약 3개월 간 2조6748억원(8조5829억→6조1520억원)이나 줄었고, 이재용 회장이 보유했던 삼성전자 주식 지분평가액도 이 기간 2조6594억원(8조5335억→5조8741억원)이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부진-이서현 사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 지분평가액도 각각 1조3035억원(4조1825억→2조8791억원), 1조2910억원(4조1426억→2조8516억원)씩 줄었다.
삼성가 4인의 주식 지분평가액 감소분 중 삼성전자 주가 하락으로 발생한 금액은 7조9287억원으로 총 지분평가액 감소치의 88.89%에 이르렀다.
삼성전자 주가는 지난 7일 장중 5만9500원까지 내려 앉으며 ‘52주 신저가’ 기록을 경신했다. 전날 증시에서도 직전 거래일보다 1.15% 내린 6만300원으로 거래를 마치며 심리적 지지선인 ‘6만원 대’를 가까스로 지켜냈다.
최근 3개월 간의 삼성전자 주가 급락세는 외국인 투자자의 ‘엑소더스(대탈출)’가 이끌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수준이다. 이날도 외국인(KRX 정보데이터시스템 상 외국인+기타외국인)은 삼성전자 주식을 2473억원어치 순매도하는 등 무려 21일 연속 매도 우위를 기록했다.
연초부터 전날 장 종료 시점까지 외국인은 삼성전자 주식에 대해 1조957억원 규모의 누적 순매도세를 기록 중이다. 앞서 삼성전자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 순매수액은 지난 7월 11일 종가 기준 11조2901억원으로 올 들어 정점을 찍었다. 이 시점과 비교한다면 불과 57거래일 만에 외국인은 삼성전자 주식 12조3858억원어치를 내다 팔았다.
문제는 향후 삼성전자 주가가 반등세를 타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분석이 나온다는 점이다.
전날 개장 전 삼성전자는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74.49% 증가한 9조1000억원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이는 연합인포맥스 집계 기준 최근 1개월 내 보고서를 낸 증권사 18곳의 영업이익 컨센서스(실적 전망치)인 10조3047억원을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이 같은 부진은 스마트폰과 PC 판매 부진으로 메모리 출하량과 가격 상승이 당초 예상을 밑돌고, 고대역폭메모리(HBM)가 경쟁업체 대비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 탓으로 분석된다.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의 일회성 비용(성과급)과 파운드리 수주 부진, 비우호적인 환율, 재고평가손실 환입 규모 등도 배경으로 꼽힌다.
증권가는 4분기 이후 삼성전자 실적 반등 가능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분위기다. 삼성전자 4분기 영업익 컨센서스는 8월 14조3000억원대에서 12조2000억 수준으로 급락했다.
여기에 국내 반도체 업황 우려가 과도한 반면 삼성전자의 위기는 성격이 다르다는 진단까지 나오고 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전날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칩 블랙웰 공급이 예상되는 가운데 AI 반도체 수요가 증가하면서 내년 글로벌 반도체 업황이 호조를 띨 것으로 관측했다.
그러나 노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경우 “반도체의 겨울은 아니지만 삼성전자의 겨울은 이미 우리가 경험하고 있다”며 5세대 HBM HBM3E의 공급 지연, 파운드리 경쟁력 약화 등을 지적했다.
한동희 SK증권 연구원은 이날 삼성전자 실적과 관련해 “세트 부진 속 비메모리의 단기 회복 가시성이 낮다”며 “여기에 레거시 메모리의 수급 악화까지 고려하면 내년 보수적인 설비투자 전략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한때 국내 증권가에선 최고 13만원까지 제시됐던 삼성전자 목표주가도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컨센서스 기준 9만5833원까지 내려왔다.
외국인 투심을 되돌리고 지지부진한 주가 흐름이 반등하기 위해선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자체에 제기된 ‘미래 성장성’에 대한 의문 부호를 지워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HBM 부문에선 SK하이닉스, 파운드리 부문에선 TSMC 등 경쟁사와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고 꼬집었고, 김록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HBM의 경쟁력 입증이 필요하며, 메모리 1위 업체에 대한 작금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이 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