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유학생들의 한글 열정, 한국인보다 더 뜨거웠다

지난 8일 오전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제1회 세종한글대전(세종한글올림피아드)’을 마친 참가자들이 정자관을 날리며 기념 세레모니를 하고 있다. 온라인 예선을 통과한 유학생 24개국 105명을 대상으로 열린 세종한글대전은 세종특별자치시와 코리아헤럴드 헤럴드경제, 세종시문화관광재단 공동주최로 개최했고, 국립한글박물관이 후원했으며 세레니티 골프&리조트가 메인 협찬사로 시몬느, 이도도자기, 삼구INC가 주요 협찬사로 참여했다. 세종=박해묵 기자

‘제 1회 세종한글대전’이 열린 8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는 100여명의 외국인 유학생들의 한글 실력 경연으로 열기가 뜨거웠다. 24개국에서 참가한 105명의 이들 유학생들은 인종, 국적이 서로 다르고 거주하는 곳도 다르지만, K-팝과 K-드라마를 좋아하고, 한글을 배우고 사용한다는 점은 모두 같았다.

서울시립대 국어국문학과에 재학중인 일본인 샤쿠토 모에(여·30)씨는 “한국어학당을 다니다 입학했다”며 “한국 드라마를 자막 없이 보겠다는 생각에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모에 씨는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국제교육원 누리집에서 확인하고 같은 과에 재학중인 가타하라 다카야(23)씨, 스포츠과학과에 재학중인 노무라 히로토(25)씨와 ‘한글사랑하조’팀으로 참가했다. 다카야씨는 일본에서도 한국어를 전공하다 편입했고, 히로토씨는 부모님을 따라 중·고등학교를 한국에서 다녀 한글에 익숙한 편이다. 히로토씨는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밤새 공부했는데, 속담은 여전히 어렵다”고 말했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에서 ‘인연’이라는 단어가 너무 마음에 들어 ‘인연’이라는 팀명을 정한 러시아인 무치카에바 지르갈라(21)씨는 “모스크바에 있는 세종학당에서 처음 한국어를 배웠다”며 “K-팝, K-드라마를 좋아해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가장 좋아하는 K-팝 그룹은 빅뱅과 BTS”라고 했다.

▶‘매운삼각김밥’,‘자음비’등 참가팀명도 가지각색=참가팀들 대부분이 한글을 이용한 팀이름으로 이날 대회에 참가했다. 팀이름에 담긴 의미도 각양각색이었지만, 담고 있는 심오한 의미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에티오피아 출신 2명과 대만 출신 1명의 팀원으로 구성된 ‘매운삼각김밥’은 매운 음식을 잘 먹는 3명이 뭉쳤다. 에티오피아 출신인 샨꾸때 라헬 솔로몬(27)씨는 “김과 밥이 붙어 있듯이 3명이 뭉쳐서 한국말을 맵고 맛있게 하는 팀이 되자는 뜻에서 이름을 붙였다”고 말했다.

팀원 모두 중국 국적을 갖고 중앙대에 재학중인 ‘용룡이들’은 중국을 상징하는 ‘용’과 중앙대 상징인 ‘용’을 결합해 팀명을 정했다.

‘유예정들’은 한국 ‘예’술종합학교에서 ‘유’학 중인 재학생들로 구성됐다. 이란 출신의 모스타바위 야사만(26)씨는 해금을, 몽골 출신의 아마르산아 몰로르산(20)씨는 무대미술을, 이집트 출신인 디압 민나(25)씨는 방송을 각각 전공하고 있다. 디압 민나씨는 “한예종 유학생들이라는 의미를 팀명에 담았고, 팀명 중에 ‘정’은 정이 많은 한국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자음비’팀은 ‘자음이 비처럼 내린다’는 의미를 팀명에 담았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압두서비토바 오조다(26)씨는 “음운이 모여 글자를 만들듯이 우즈베키스탄 친구들이 같이 대회에 참여해 추억을 만들어보려고 했다”고 참가 이유를 밝혔다.

‘다한민국’팀의 팀명은 의미가 더 깊다. 카빌로바 후스노라 할리로(여·26)씨는 “외국인으로 한국 생활을 하면서 가끔 차별을 접하게 되지만 ‘다같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뜻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사봉’팀은 ‘사회봉사’의 줄임말을 팀명으로 정했다. 한국에서 서로 알게 된 팀원들 모두 자국어 말벗, 의료·교육 봉사 등을 같이 하면서 친해졌다.

팀원들의 국적을 따 팀명을 정한 ‘튀러카’는 튀르키예,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 팀원들의 국적 앞글자를 땄고, ‘두유노칭기스칸’은 몽골 출신 3인으로 팀을 꾸렸다.

미얀마, 몽골 출신으로 구성된 팀은 ‘세종의 후예’를 자처했고, 중국 출신 3명으로 팀을 이룬 ‘질수없조’는 팀원들이 모두 승부욕이 강해 팀명을 정했다.

▶한국인도 헛갈리는 한글 문법, 사투리도 거뜬=이날 대회의 한 꼭지로 진행된 ‘OX 훈민정음’에는 평소 관심이 없으면 한국인들도 헛갈리기 쉬운 문법, 사투리 문제들이 출제됐지만 참가자들의 실력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한글의 기본 자음은 14개이다’, ‘나는 너를 사랑해를 나는 널 사랑해로 바꾸면 맞춤법에 어긋난다’, ‘톺아보다는 무언가를 성의없이 대충 훑어보는 것을 뜻한다’, ‘한국어에는 성조가 존재한다’ 등 한국인들도 얼핏 들으면 아리송한 문제지만, 결승까지 간 참가자가 나왔다.

‘OX 훈민정음’ 우승자인 ‘아조하팀’의 홍정혜(25)씨는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에 재학중으로, 고등학교까지 중국 베이징에서 살다 한국 대학에 진학했다. 홍 씨는 “유치원 때 부모님 일로 한국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다”며 “한국어 공부를 하면서 외래어를 공부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홍 씨가 좋아한다는 ‘윤슬’이라는 단어는 ‘달빛이나 햇빛에 비쳐 반짝이는 잔물결’을 의미한다.

3라운드로 진행된 ‘세종님전상서’에서는 각 라운드별 1분 스피치를 통해 1위팀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1라운드는 ‘K-Pop을 정의해라’, 2라운드는 ‘한식을 정의해라’, 3라운드는 ‘외국어로 번역했을 때 이해가 어려운 한국어 개념’이라는 주제로, 각 라운드별 치열한 팀별 대항전이 이뤄졌다. 심사위원을 앞에 두고 진행된 주제 발표에 나선 참가자들의 표정에는 긴장과 진지함이 잔뜩 묻어났다.

K-팝에 대한 주제 발표에서 한 참가자는 “K-팝은 K-바이러스다. K-팝은 전세계를 감염시키고 있고, 나도 감염된 사람 중에 하나다. K-팝은 힘들때 나를 지켜주는 단짝친구이자, 피로가 쌓인 몸을 달래주는 나의 피로회복제”라고 발표했고, 또 다른 참가자는 “K-팝은 단순한 음악장르를 넘어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화려한 뮤비와 중독성 있는 멜로디로 한국의 글로벌 영향력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해 심사위원들의 흐뭇한 표정을 자아내게 했다.

‘어려운 한국어 개념’에 대한 3라운드에서는 존댓말, 동음이의어·다의어, 관용구 등을 주제로 발표가 이뤄졌다. 한 발표자는 지인의 파티 초대에 “(시간이)괜찮다”고 했더니 지인이 사양하는 걸로 이해하고 “그럼 다음에 보자”고 하더라는 일화를 소개했고, 한국 드라마를 보다가 극중 배우의 “귀 먹었냐”는 표현에 처음에 의미를 몰랐던 참가자가 충격을 받았다는 일화를 발표해 주변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영호남·제주 사투리 상황극 준비한 ‘세종의별들’팀 대상 수상=마지막으로 사투리대왕 대항전에서는 참가팀들은 영호남과 제주 사투리까지 구사하며 자신들의 사투리 실력을 뽐냈다. 이어진 시상에서는 모든 경연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모로코 출신의 팀원들로 구성된 ‘세종의별들’팀이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세종의별들’ 팀원인 키르기스스탄의 아이탈리예바 누르자말(여·25)씨는 8년째 한글을 공부하고 있지만, 듣기가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누르자말씨는 “처음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한글을 큰 소리로 읽은 것이 큰 도움이 된다”며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등 영상을 보면서 한국 문화와의 차이점, 어떤 상황에서 어떤 표현을 써야 하는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외국인에게 도움말을 제시했다.

같은 팀의 모로코 출신인 할탄 알라(22)씨는 “한글을 처음 배울 때 아랍어와 한국어 문법이 완전 달라서 고생했다”며 “한국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매일 한국어를 사용하면서 실력이 조금씩 늘어났다”고 말했다.

팀의 맏형격인 타지키스탄 출신의 카리모프 수하일리(27)씨는 “한글을 배우고 있는 다른 외국인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우리는 한국어의 원어민이 아니다”며 “발음이 안 좋고 실수도 많지만 자신감 있게 그리고 계속 한국어를 사용하는게 한글, 한국어 실력을 늘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소개했다.

이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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