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 “사람이 컴퓨터 속도에 맞출 수 없다…코딩 기술보다 유연성 필요”

유발 하라리 히브리대 교수가 15일 독일 베를린에 있는 베텔스만 랜덤하우스 출판사 사무실에서 온라인 화상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기자단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김영사 제공]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인공지능(AI)은 삶의 속도, 변화를 가속화한다. 그런데 생명체의 주기를 따르는 사람이 늘 켜져 있는 컴퓨터의 속도에 맞추자면 결국 무너지게 된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히브리대 역사학과 교수가 15일 신간 '넥서스'의 출간을 맞아 국내 언론과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최근 사람들이 느끼는 AI에 대한 공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요즘 사람들이 AI에 대한 담론을 마주할 때 가장 먼저 느끼는 원초적 본능은 자신의 일자리가 사라질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하라리는 이에 대해 “AI가 삶의 속도와 변화를 점점 가속화하면서 누구나 불안과 강박을 느끼고 있다”며 “원인은 인간의 생물학적, 유기체적 속도와 비유기체인 컴퓨터의 속도 간 긴장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기체의 삶은 운동과 휴식, 잠 등 주기에 따르지만, 컴퓨터는 항상 켜져 있다”며 “AI가 점점 더 많은 영역에 통합되며 사회를 잠식함에 따라 우리도 기계의 속도에 맞추기를 강요당하고 있는데 이는 불안함을 넘어 위험하다”며 “유기체인 인간이 기계처럼 항상 켜져 있으면 결국 무너진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특히 “위험성의 핵심은 AI가 인류의 도구가 아니라 ‘행위자’라는 것”이라며 “특히 소수가 독점한 AI 기술 덕택에 미국이나 중국, 특정 기업이 부와 권력을 독차지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소수가 첨단 기술을 활용해 지배하는 사회로 변질할 가능성이 크지만, 인류가 오랫동안 쌓아온 지식과 문화는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예컨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에선 AI가 활용되고 있지만, 전쟁의 동인(動因)은 신화와 종교라는 점에서 그렇다.

“양측의 충돌 원인은 자원도, 땅도 아니다. 바로 ‘신화’ 때문이다. 이 땅을 다스릴 전적인 권리를 신이 주셨기에 땅을 나누면 안 된다는 것이다. AI가 전쟁에 활용되고 있는 이 시대에도 인간이 상상으로 만든, 수천 년 전에 탄생한 신화 탓에 전쟁이 발발했다. 그래서 역사와 문화는 아무리 오래됐을지라도 삶에서 중요하다.”

AI 시대라고 해서 이과 과목만 우대하고 문과는 천시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이야기로 해석된다. 그는 “우리는 20년 후에 어떤 기술이 필요할지 모른다. 누구도 그에 대해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컴퓨터, 코딩만 하다 보면 이뤄 놓은 모든 게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유발 하라리 히브리대 교수가 15일 독일 베를린에 있는 베텔스만 랜덤하우스 출판사 사무실에서 온라인 화상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기자단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김영사 제공]

그러면서 “AI의 발전 속도를 봤을 때 앞으로 인간이 코딩할 필요가 없어질 수도 있다”며 “그런 상황에서 코딩을 공부하면 그간의 노력이 헛수고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래의 주역인 학생들에게도 한 분야보다는 전반적인 역량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머리(지능), 가슴(감성), 손(기술)을 다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유연성’(Flexibility)이란 덕목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I의 활용으로 사회는 더욱 빨리 변하고, 그 과정에서 특정한 직업은 사라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와 관련 “50세에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게 흔해질 수 있다. 그러려면 정신적 유연성이 필요하다”며 “계속 배우고, 변해갈 수 있는 도구로서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라리 자신도 정신적 유연성을 기르기 위해 하루 6~8시간을 읽고 쓴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를 체화하고자 매일 2시간씩 명상을 한다. 1년에 한두 달은 아예 외부와 격리된 채 생활한다. 휴대전화도 보지 않고, 책도 숙소에 가져가지 않는다.

“음식을 먹을 때 소화하는 시간이 필요하듯, 정보를 소화하는 데에도 숙고와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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