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알라딘’ 팝업스토어 [클립서비스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가짜는 안돼요. 리얼하게, 더 정교하게!”
길이 2m, 무게 80㎏. 성인 남성 네 명이 의기투합해야 옮길 수 있는 대형 램프가 ‘힙스터의 성지’ 더현대 서울 포레스트 가든 한복판에 등장했다. 정교하게 조각된 이국적인 문양의 ‘알라딘’ 램프. 쓱쓱 문지르면 금세 파란 요정 지니가 튀어나올 것 같은 거대한 램프에 손에 든 휴대폰이 바빠진다. 오가는 사람마다 램프를 쓰다듬으며 ‘알라딘’과의 여정을 시작한다.
마침내 한국에 상륙한 뮤지컬 ‘알라딘’의 팝업스토어가 여의도 더현대 서울에 입성, 지난 13일까지 2주간 약 1만5000명의 관람객과 만났다. ‘알라딘’ 팝업스토어는 안전 문제로 하루에 1000명으로 입장객을 제한했는데도 인파가 몰린 것이다.
다음달 22일 개막하는 뮤지컬 ‘알라딘’의 팝업스토어가 열린 이 공간은 ‘더현대 서울’에서도 ‘핫’하다는 5층 에픽 서울이다. 그간 이곳엔 영화 ‘인사이드 아웃2’, 버추얼 아이돌 그룹 플레이브, ‘국민 판다’ 푸바오 등 쟁쟁한 팝업스토어들이 거쳐갔다.
‘알라딘’ 제작사인 클립서비스의 신정아 마케팅본부장은 “보다 대중적인 장소에서 다양한 잠재 관객을 만나기 위해 팝업스토어의 랜드마크인 더현대와 협업을 하게 됐다”며 “‘알라딘’을 미리 경험하고 알릴 수 있는 기회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뮤지컬 ‘알라딘’ 팝업스토어 [클립서비스 제공] |
입구부터 남달랐다. 입을 쩍 벌린 보랏빛의 거대한 호랑이가 입장객을 맞는다. 팝업스토어를 여는 시간은 오전 10시 30분. 사전 예약을 하지 못한 현장 방문객은 일찌감치 줄을 서며 호랑이 입구를 사진으로 담기에 분주했다. 호랑이 구조물의 입구는 알라딘과 함께 신비한 여정을 떠나는 동굴 입구를 상징한다.
알라딘 팝업스토어는 100평의 공간에 뮤지컬을 미리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볼거리를 넣었다. 제작사는 ▷리얼리티 ▷오리지널리티 ▷정체성 등을 중점적으로 살려 콘텐츠를 구성했다. 공간 구성을 위한 모든 소품의 제작은 미국 디즈니 시어트리컬 프로덕션과 협의했다. 신정아 본부장은 “공간을 구성할 때는 ‘알라딘’의 주요 테마에 벗어나지 않도록 했다”며 “뮤지컬에 나오는 패턴과 소스를 해석했고, 브로드웨이 원작 뮤지컬과 100% 같되 실사판 소품을 보는 것처럼 사실적이고 정교하게 제작했다”고 귀띔했다.
특히 디자인적 측면에선 각각의 공간, 소품마다 최소 100~200번의 회의를 거쳐 완성했고, 디즈니 본사에 직접 가서 램프를 비롯한 실제 소품들의 디자인과 색상을 눈으로 확인한 뒤 완벽한 ‘알라딘’의 세계를 옮겼다. 2주면 끝나는 팝업스토어에 어마어마한 공력을 들인 셈이다.
동굴 입구로 들어서면 관람객을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눈부시게 빛나는 보물과 황금빛 대형 램프다. ‘알라딘’을 상징하는 이 램프의 제작기간은 무려 4개월. 브로드웨이 극장에 설치된 ‘알라딘’ 속 램프의 금빛 색상의 농도와 모든 패턴을 수작업으로 완성했다. 신 본부장은 “리얼하고 정교하게 나오지 않으면 이 팝업스토어를 열 수 없었다”고 귀띔했다.
이렇게 잘 만들어진 램프는 여의도 나들이를 마친 후 오는 17일부턴 동대문 DDP에서 열리는 ‘서울 디자인 2024’로 새로운 마케팅 여정을 떠난다.
뮤지컬 ‘알라딘’ 팝업스토어 [클립서비스 제공] |
이와 함께 뮤지컬 속 장면 장면을 테마로 삼아 ‘자스민 방’, ‘어 홀 뉴 월드’ 구역도 만나볼 수 있다. 배우들이 공연에서 입는 실제 의상도 전시했고, 관람객들이 즐길 수 있는 ‘포토존’과 ‘체험존’도 배치했다. 모든 공간의 구성엔 문화적 맥락에 훼손 없이 섬세하게 접근했다. 제작사에 따르면 ‘자스민 방’의 가구, 카펫, 바닥의 문양, 패턴, 소재까지 실제로 중동에서 사용하는 것을 가져와 세심하게 재연했다. 신 본부장은 “실제 작품을 제3의 공간에서 만나는 것이다 보니 엉뚱하게 다른 걸 넣어 본질을 흐리거나 흉내내기에 그치는 것을 경계했다”고 설명했다.
각 구역마다 인증사진을 찍는 미션을 달성하면 배우들의 랜덤 포토카드를 받을 수 있도록 한 이벤트는 특히 인기가 높았다. 현장 관계자는 “원하는 배우들의 포토카드를 구하기 위해 팝업스토어 앞에선 사진을 교환하는 관람객들이 상당히 많았다”고 했다. K-팝 팬덤 문화에서 볼 수 있는 일명 ‘포카 교환’이 뮤지컬 팬덤 사이에서도 이어진 모습이다.
뿐만 아니라 ‘한정판 굿즈’ 역시 엄청난 인기였다. 예약제로 운영된 팝업스토어 내부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누구나 오가며 ‘알라딘’ 굿즈를 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프리뷰 북은 물론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제품인 12만원 상당의 요술램프와 7만원에 판매 중인 곰인형, 2만원의 마그넷도 구매할 수 있다. 팝업스토어에 따르면 가장 인기가 많은 굿즈는 배우들의 메시지가 들어간 프리뷰 북과 포스터였다.
더현대서울 사운즈포레스트에서 걸그룹 에스파의 첫 단독 콘서트 기념 팝업스토어 [연합] |
“이거 ‘알라딘’ 아니야? ‘알라딘’이 뮤지컬로 하나봐.”
‘알라딘’ 팝업스토어의 뮤지컬 ‘미리보기’ 효과는 쏠쏠했다. 더현대 서울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뮤지컬이 개막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릴 수 있던 자리였다.
제작사 관계자는 “현장에서 살펴보면 팝업스토어 초반엔 배우와 뮤지컬 마니아들이 많이 왔었는데 공휴일에는 가족 단위, 중년 부부가 팝업스토어를 찾아 램프 앞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게다가 중국, 일본은 물론 영어권 국가의 외국인 방문객도 적지 않았다.
‘알라딘’ 같은 뮤지컬 뿐 만이 아니다. 세계적인 K-팝 그룹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뉴진스 등은 물론 애니메이션 ‘슬램덩크’, ‘인사이드 아웃2’, 공연장 세종문화회관까지…. 대중문화 전반에 팝업스토어는 현재 ‘가장 트렌디한 마케팅’ 수단이 됐다.
더현대 서울은 지난 2021년 하이브의 오리지널 자체 콘텐츠인 방탄소년단과 세븐틴의 ‘인 더 숲’ 팝업스토어를 시작으로 대중문화계 전반의 슈퍼IP(지적재산권)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팝업을 열어왔다. 당시 더현대 서울의 1층 명품 매장 사이에 자리잡은 이 팝업스토어 덕에 MZ(밀레니얼+Z) 소비자 사이에서 더현대 서울에 대한 인지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
방탄소년단과 세븐틴이 출연하는 하이브의 오리지널 콘텐츠 ‘인더숲’을 토대로 선보인 더현대서울 팝업스토어 ‘인더숲’은 446㎡(약 135평) 규모, 도심 속 힐링공간이라는 콘셉트로 열려 MZ세대를 불러오고 있다. [하이브 제공] |
이후 더현대 서울의 팝업스토어가 연이어 성공을 거두면서 이젠 이곳에서 팝업스토어를 여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국내 굴지의 대형 엔터테인먼트사 관계자는 “확실한 브랜드 가치를 가진 슈퍼IP와 아티스트, 탄탄한 팬덤을 갖춘 콘텐츠, 트렌디한 문화를 만들 수 있는 아이템이라야 선택이 된다”며 “지금은 워낙 대기가 많아 일 년을 기다려도 (이곳에서 팝업스토어를 열기가) 쉽지 않다”고 귀띔했다.
뮤지컬 ‘알라딘’과 더현대의 만남은 양측 모두 ‘윈윈’이었기에 가능했다. ‘알라딘’은 전 세계 4대륙, 11개 프로덕션에서 공연, 약 2000만 명의 관객을 모은 메가 히트작이다. 확고한 브랜드 이미지를 가진 문화 콘텐츠이자 남녀노소 세대를 아우르는 킬러 콘텐츠가 가진 힘은 더현대에도 새로운 문화적 가치를 입히는 계기가 됐다. 강력한 문화 콘텐츠와 대중적 공간이 만났다는 의미도 있다.
팝업스토어의 또 다른 성지인 성수동과 달리 더현대는 대관료가 아닌 판매 수수료로 수익을 올린다. 업계에 따르면, 보통 이곳의 수수료는 매출의 10~20% 선이다. 앞서 더현대 서울에서 열린 푸바오 팝업스토어는 10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고, ‘슬램덩크’ 팝업스토어는 1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업계 관계자는 “각각의 콘텐츠마다 매출은 다르지만 브랜드 가치와 고객 확대가 가능할 만큼의 영향력, 확실한 실적을 낼 수 있는 팬덤을 가진 IP를 발굴해 팝업스토어를 열고 있다”고 봤다.
더현대나 성수동이 아니라도 대중문화계는 팝업스토어를 통해 저마다의 목적으로 타깃 소비층을 확보하고 있다 . 신정아 본부장은 “익숙한 공간이 아닌 새로운 곳에서 ‘몰입의 경험’을 높이고 유대감을 강화하는 전략이자 보다 확장된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으로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