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비즈] 인재보국과 개방형 혁신 전략

‘반도체 ’슈퍼 乙‘ ASML 본사 이전’.

올해 초 전 세계 반도체 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뉴스다. 네덜란드 정부가 해외 인재 유입을 제한하려고 하자 초격차 경쟁력의 근간을 흔든다며 기업이 반발한 것이다. ASML의 자국 내 직원 23,000여명 중 약 40%가 세계 140개국에서 모여든 외국 인재들이다. 3만개 이상의 부품으로 구성되는 최첨단 EUV 노광장비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와 기술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반도체 산업의 총아다.

경제 안보의 시대, 세계는 지금 치열한 첨단산업 인재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도 첨단산업 인재 수급과 인프라 지원을 주요 골자로 하는 일명 ‘베토벤 작전’을 통해 ASML 달래기에 나섰다. 일본은 해외에서 들어오는 첨단 인재의 영주 요건을 대폭 완화하기로 했고, 싱가포르도 ‘One Pass’라는 특별 비자 프로그램을 도입해서 해외 인재에 이직과 구직의 자유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대만은 세제 혜택과 해외 인재 유치 전담조직 설치를 통해 TSMC의 인재 영입을 측면 지원하고 있다.

비상이 걸린 건 우리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첨단산업 인재 부족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경쟁국들이 어렵게 양성한 우리 인재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면서 우리 산업의 인적 토대가 뿌리째 흔들린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 감소는 이러한 추세의 고착화를 부추기고 있다.

인재 확보를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리는 기업이 점차 늘고 있다. 대기업 CEO까지 총출동하여 해외 유수 대학으로 기업 홍보에 나서는가 하면, 글로벌 기업의 리더급 인재에게 최고의 처우를 약속하며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언어, 자녀 교육, 주거, 비자 문제 등 이러한 기업의 절박한 노력을 가로막는 걸림돌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정부는 지난달 총리 주재 인재양성전략회의에서 ‘첨단분야 해외인재 유치·활용 전략’을 발표했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최고급 해외 인재 1000명 유치를 목표로 설계한 ‘K-Tech Pass 프로그램’이다. 특별 비자를 신설하여 입국 후 1년이 지나면 장기 체류, 이직 자유를 보장하고, 2개월 이상 소요되는 비자 심사 기간도 2주 이내로 대폭 단축한다.

배우자, 자녀는 물론 부모, 가사도우미까지 동반 입국도 허용한다. 이들에게는 자녀의 외국인 학교 정원 외 입학도 허용하고, 내국인 수준의 전세자금 대출도 지원한다. 2023년부터 시행 중인 10년간 근로소득세 50% 감면에 더하여 취해지는 조치다.

아울러, 가칭 ‘Tech-GPT’라고 불리는 AI 기반 글로벌 인재탐색 서비스를 제공할 「해외 인재 원스톱 지원 센터」도 한국산업기술진흥원에 구축하고, 세계 곳곳의 우수 인재와의 국제 공동 연구도 대폭 확대해 지원한다.

인재 한명이 수만 개의 일자리를 만드는 시대다. 국내 인재, 해외 인재 이분법적 시각을 떨쳐야 한다. 수출 6대 강국의 위상에 걸맞게 전 세계 리소스를 폭넓게 활용하는 개방형 혁신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더 늦기 전에 가야할 길이다.

박성택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