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혼혈 사무라이 ‘미즈’와 우주 광물…파란 눈에 대한 이중성 [덕중의덕]

그야말로 콘텐츠의 홍수입니다.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 드라마, 애니메이션, 영화 등 즐길 수 있는 영상콘텐츠가 끝도 없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깊게 빠지면 바닥을 가늠하기도 어려울 만큼 파고들 수 있지만, 동시에 콘텐츠 하나를 시작하기가 겁이 나기도 합니다. 각 분야의 덕후들이 생겼지만 서로의 취향 사이의 거리는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만 좁힐 수 있을 정도로 벌어져있습니다. '덕중의덕'은 일본과 미국 콘텐츠, 혹은 미국에서 만든 일본 콘텐츠 등을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일덕’과 ‘양덕’ 모두 서로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가교로서 콘텐츠를 즐기는 새로운 해석과 시각도 함께 태워보냅니다.

푸른 눈, 시퍼런 날의 일본도, 그 뒤로 비추는 푸르뎅뎅한 달까지. 지극히 일본적인 작화에 유난히 파란 뉘앙스가 여럿 쓰인다. [넷플릭스 제공]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쭉 찢어진 눈매, 검은 머리칼, 노란 상아색의 피부. 영락없는 동아시아인이다. 딱 하나 다르다. 사파이어 블루색의 홍채. 이 푸른 눈은 이방인, 원령(怨·onryo), 짐승, 악마(demon) 등의 이름으로 불리지만, 동시에 그의 초인적 전투력과 체력을 이해시키는 편리한 상징이기도 하다.

‘파란 눈’(서양)에 대한 일본인의 경계심과 선망이 공존한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푸른 눈의 사무라이’(Blue Eye Samurai)의 히로인 ‘미즈’(Mizu)의 이야기를 조금 설명해야 한다.

푸른 색, 외계의 것, 이질적이고 배척받는 것. 푸른 눈과 운석의 공통점이다. 서로를 알아보고 조응하는 것도 이 둘 뿐이다.

17세기 일본은 국경을 폐쇄하고 외부 세계와의 단절을 택했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일본에는 유럽인 백인 남성 4명이 들어와 아편, 총 등 악(惡)한 것들을 거래했다. 악마인 이들 중 한 남자가 일본인 창녀를 겁탈했다. 창녀는 임신을 했고 미즈를 낳았다.

어린 시절 눈 색깔이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모를 당한다. [넷플릭스 제공]

미즈가 부계 혈통으로 물려 받은 것은 오직 홍채의 색깔 뿐이다. 사실 유전학적으로 발현되기 힘든 조합이다. 눈동자 색은 유전학적으로 갈색이 우성, 파란색이 열성이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특질이 일본인의 그것임에도 마을 아이들은 미즈의 눈만을 보고 시베리안 허스키와 같은 개 눈깔이라며 허구한 날 집단 린치를 가한다. 여자인 것이 알려지면 더욱 험한 꼴을 당할까 싶어 엄마는 항상 미즈에게 남장을 하도록 시킨다.

기어코 엄마마저 자살을 하며 미즈는 세상에 의지할 사람이 단 하나도 없게 된다. 여느 때처럼 마을 남자아이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어느 날. 하늘에서 푸른 빛을 띠는 운석이 코하마 마을로 떨어진다. 운석을 보고 도망가는 마을 아이들과 달리 미즈는 푸른 빛에 매혹된 듯 옴짝달싹 못하고 주저앉았다.

인근에 사는 검(sword)의 명인은 운석이 명검의 재료가 될 것이라 보고 이를 줍고자 다가온다. 명인은 장님이지만 운석이 떨어진 곳을 정확히 찾아온다. 운석은 노인 혼자서는 도저히 옮길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다. 운석 운반을 도운 미즈는 자연스레 그의 문하생으로 둥지를 튼다.

[넷플릭스 캡처]

장인을 넘어 명인 반열에 오른 검부(劍父)는 푸른 운석을 제련해 보려고 수 많은 시도를 한다. 하지만 아무리 망치로 두들겨도 ‘깡깡’ 소리만 시끄럽게 날 뿐 길들일 수가 없다. 이에 운석을 찬장 가장 높은 곳에 신줏단지처럼 모셔두고 쳐다만 볼 뿐이다.

대여섯살 꼬마였던 미즈는 주방용 칼을 넣을 천 자루를 만들며 청년이 된다. 명인에게 검을 의뢰하는 사무라이들의 검법을 지켜보면서 밤이면 남몰래 무술을 연마했다. 자신에게 더러운 피를 물려준 4명의 백인 남성(중 하나이지만)을 찾아 모조리 죽여버리겠다는 원한을 갚으려 이곳을 떠나려는 미즈. 이때 자신과 함께 이곳에 온 푸른 외계 운석을 꺼낸다. 미즈의 손에서 운석은 푸른 빛의 날을 뽐내는 긴 일본도로 재탄생한다. 푸른 색, 외계의 것, 이질적이고 배척받는 것. 푸른 눈과 운석의 공통점이다. 서로를 알아보고 조응하는 것도 이 둘 뿐이다.

파란 눈은 미즈를 평범한 존재가 아니게 만들어준다. 작품 내내 가공할만한 전투력을 보여준다. [넷플릭스 제공]

푸른 것들은 특출나게 강한 자질을 타고났다.

미즈의 검부는 항상 미즈에게 말한다. “강철은 불순물이 섞여야 더 강해진다”고 말이다.(1화 ‘불순한 존재’) 이 대사는 순혈 일본인보다 서양인의 피라는 ‘불순물’이 섞인 미즈가 강할 수 밖에 없다는 당위를 뒷받침한다.

남장 여자라는 것은 작화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미즈의 몸선은 다른 사무라이들보다 호리호리하고 가늘다. 하지만 장정 10여명이 나무 문짝 아래에 깔려 땅바닥에 처박힌 미즈를 온 체중을 실어 짓밟아도 어디 하나 다치지 않는다. 그야말로 ‘용가리 통뼈’다.(5화 ‘낭인과 신부’ 편) 뿐만 아니다. 미즈의 시력은 날아오는 총알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좋다.(8화 ‘1657년 대화재’편) 푸른 운석으로 만든 검은 그 어떤 일본도와 맞붙어서 깨진 적이 없다. 이처럼 푸른 것들은 특출나게 강한 자질을 타고났다.

검을 두동강 내 깨뜨리는 것은 4명의 백인 중 한 명인 ‘아바이자 파울러’의 유럽제 총알이다.(6화 ‘모든 사악한 꿈과 성난 말’편) 오직 서양의 무기만이 그의 검을 압도할 수 있다. 일본(동양)은 서양을 이길 수 없다는 ‘오리엔탈리즘’이 투영된 장면이라 할만 하다.

총이 일본에 소개되기 한참 전인 1600년대, 일본에 있는 몇 안되는 유럽인인 아바이자 파울러는 세련된 권총을 사용한다.[넷플릭스 제공]

서양에 대한 일본의 막연한 경외는 제작자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과거 사료들을 통해서도 쉽게 드러난다.

각본을 쓴 마이클 그린, 앰버 노이즈미 부부는 미국인이다. 일본인 혼혈 여성 노이즈미와 백인 남성 그린 사이에서 파란 눈을 가진 2세가 태어나자 노이즈미는 ‘내 딸의 눈 색이 파란 색이란게 왜 이렇게 신나는 걸까’ 또는 ‘좀 더 백인처럼 보이는 아기가 태어난 게 나는 왜 이렇게 신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그러다 ‘만약 17세기 에도 시대였다면 딸이 백인처럼 보이는 것을 지금의 나처럼 좋아하지 않았겠다’는 생각에 미쳤다는 것이다. 또 자신들의 딸을 보면서 어느 날 문득 나눴던 ‘얘는 꼭 작은 파란 눈의 사무라이처럼 생겼다’는 말이 맘에 들었다고 한다. 작품의 제목은 이렇게 정해졌다고 밝혔다.

실제로 혼혈의 정체성은 일본에서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639년에서 1853년까지 일본은 쇄국정책을 펼쳤지만, 요코하마와 나가사키 등 일부 항구 도시에서는 파란 눈의 네덜란드 상인들이 거리를 활보했다. 이들 중 일부는 자연스레 일본 여성과 결혼해 아이를 낳기도 했는데, 당시 역사 사료에 따르면 이 아이들을 ‘아이노코’(間の子)라고 불렀다. 우리로 치면 ‘튀기’와 어감이 비슷한 경멸적인 용어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이 패배한 적의 조아림을 받고 있다. 일본인의 외양이 서양인처럼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쇄국정책이 끝난 후 메이지 시대부터는 일본 내에서도 서양에 대한 호의적 태도와 동경이 조금씩 발현되기 시작한다. 제국의회의 모습과 청일전쟁 시기를 그린 그림에서 일본인의 외양은 거의 백인에 흡사하다. 피부는 희고, 갈색 구랫나루와 콧수염을 기르고, 키와 신체 비율 모두 실제 일본인의 것과 괴리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1945년~) 일본이 서구의 영향을 흡수하면서는 그들에 대한 동경은 더욱 노골적으로 변했다. 서양의 것들은 일본의 것보다 우월하며 세련되고, 심지어 우아한 것으로 여겨졌다. 서양 영화 배우(서양인의 얼굴)에 대한 동경도 점차 커졌다. 이때부터 혼혈인을 부르는 명칭 역시 경멸적 뉘앙스가 사라진, 순수하게 혼혈임을 나타내는 ‘하푸’(half)로 바뀐다. 현재 60대 이상 일본인들에게 특히 서양은 꿈과 동경의 대상으로 남았다.

하지만 사랑의 감정은 항상 일방적으로 흐르지는 않는다. 비록 타자화된 관심일지라도 여타 동아시아 국가에 비해 미국(서양)이 일본에 쏟는 관심은 특별하다.

1941년 일본군이 미국 하와이 진주만에 정박해 있던 미군 함대와 기지 등을 선전포고 없이 기습 공격해 미군 2400여명이 사망했다. 진주만에 정박해 있던 미 해군 소속 애리조나 함선이 격침되는 모습.[AP]

‘푸른 눈의 사무라이’는 미국 내의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일찌감치 시즌2 제작이 확정됐고, 지난 9월엔 권위 있는 방송상인 에미상에서 최우수 애니메이션상까지 거머쥐었다. 올해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등 에미상을 휩쓴 드라마 ‘쇼군’ 역시 미국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서구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일본 콘텐츠다.

일본의 고위층 여성이 입는 화려한 기모노 등 ‘일본풍’ 고증에 힘을 쏟았다.[넷플릭스 제공]

여러가지 해석과 분석이 있을 수 있겠으나, 일본에 대한 그들의 평가가 특별히 후한 까닭은 바로 1941년 진주만 공습 사건에 기인한다는 분석이 많다. 역사를 통틀어 미국 본토가 공격받은 사건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때문에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었음에도 다른 아시아 나라와는 달리 얕잡아 볼 수 없는, 그러나 흥미로운 ‘테마파크’같이 볼꺼리가 많은 곳과 같은 인식이 서양 내에서 일반적으로 자리잡게 됐다.

17세기 일본 막부 시대를 무대로 한 할리우드 작품. [디즈니+ 제공]

‘푸른 눈의 사무라이’ 시즌2는 동양과 서양이 서로에게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 관찰할 수 있는 더욱 재미있는 판이 깔릴 예정이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정확한 공개 시기는 말할 수 없지만 임박했다고 할 수 있다”고 전했다.

시즌 1의 막바지에서 대영제국이라는 국가 명칭이 등장하고, 미즈가 식민지 건설이 시작되는 시기의 런던으로 떠날 것임을 암시한다.

제작팀도 “이번엔 일본인이 아닌 유럽인들이 미즈를 어떻게 인식할 지 기대가 되지 않느냐”며 “반대로 미즈의 입장에서 서양 문화는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사방에 깔린 푸른 눈의 유럽인들을 미즈가 자기 자신을 보는 것처럼 ‘괴물’이라고 볼 지도 무척이나 흥미로운 지점”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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