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잔의 ‘커튼, 물병, 그릇’(1893~1894). 이 작품은 미술품 경매에서 780억원에 판매됐다. 세상에서 제일 비싼 사과 그림이다. |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여기, 세상에서 가장 비싼 사과 그림이 있습니다. 새하얀 테이블보 위에 놓여 있는 생생한 색감의 사과 여러 개. 그저 사과를 사과답게 그린 것 같은 이 작품은 1999년 5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당시 우리 돈으로 무려 약 780억원에 판매됐습니다. (그림 한 점의 가격이 오늘날 20억원대 서울 강남 아파트 39채 값과 맞먹는 겁니다.) 그래서 최고가에 거래된 정물화로 이름을 당당히 올리기도 했는데요.
작품을 다시 볼까요. 아마도 많은 독자분들이 강력한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힐 겁니다. 이 그림, 왜 이렇게까지 비싼 거야 싶죠. 마음 깊은 곳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질문일 겁니다. 도대체 무엇이 화폭에 담긴 사과를 그토록 특별하게 만들었던 걸까요.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자신의 그림이 이렇게 어마 무시한 금액에 거래될 거라고 예상이나 했을까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이 정물화를 그린 작가는 폴 세잔(PAUL CÉZANNE·1839~1906)입니다. 파블로 피카소와 앙리 마티스가 주저 없이 ‘나의 스승’으로 추앙하는 우상이죠. 입체파, 표현주의, 후기 인상주의까지 다양한 미술 운동에 영향을 끼친 명실상부한 ‘현대미술의 아버지’. 그가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세잔입니다. 그는 현대미술사의 뼈대를 만든 장본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가입니다. 그는 화가의 역할을 바꿔버렸거든요.
1875년에 그려진 세잔의 자화상. |
1839년 프랑스 남부의 엑상프로방스에서 태어난 세잔이 처음부터 화가의 길을 걸었던 건 아닙니다. 그의 아버지가 사회적으로 성공한 은행가였던 덕분에 세잔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세잔이 법률가가 되길 원했기 때문에 그를 엑상프로방스 대학교에 입학시켜 법학을 공부하게 했는데요. 정작 세잔은 법 공부가 영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가 미술학교인 에콜 드 드로에서 드로잉 수업을 병행했던 이유죠. 당시 평생 친구로 만난, 훗날 대문호이자 미술 비평가인 에밀 졸라가 세잔이 예술가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누구보다 격려했고요.
결국 세잔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법학 공부를 포기한 뒤, 파리로 상경했거든요. 그리고 곧장 아카데미 쉬스에서 예술교육을 받기 시작했죠. 이곳에서 세잔이 만난 이들이 미술사에 획을 그은 클로드 모네, 카미유 피사로 등 젊은 인상주의 화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잔의 초창기 그림은 인상주의 특유의 밝고 경쾌한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어두운 색조와 무거운 분위기를 띠는 세잔의 그림은 당시 주류 미술계에서 인정받지 못했고요. 살롱 전시회에 전달한 세잔의 그림은 수차례나 거부 당했거든요.
세잔의 초창기 그림 ‘약탈’(1867). |
그렇게 고립된 시간을 보내던 세잔은 피사로와의 인연으로 예술적 전환점을 맞습니다. 피사로는 세잔을 “가장 독창적인 화가 중 한 명”이라고 칭했는데요. 그런 세잔에게 특히 자연을 관찰하는 방식과 색채의 사용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줬습니다. 피사로보다 9살이 어린 세잔이었지만, 그는 피사로와 함께 그림을 그리면서 피사로가 풍경을 바라보는 관점을 배우려고 했죠. 그렇게 세잔은 점차 자신의 스타일을 정제해 나갔습니다. 색채와 형태를 단순화하는 방식으로 발전시킨 세잔의 그림은 인상주의 전시회에서 마침내 소개되기도 했고요.
오베르와 퐁투와즈 일대에서 그림을 함께 그린 두 화가 세잔과 피사로. 1877년 과수원 코테 생드니를 그린 세잔(왼쪽)과 피사로(오른쪽)의 작품 각각. |
세잔의 ‘사과가 있는 정물’(1890). |
“나는 사과 한 개로 파리를 정복하고 싶다.”
세잔은 시간이 지나면서 인상주의 경향에서도 벗어납니다. 그 자신도 “인상주의는 나를 만족시키지 않았다”고 했죠. 그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독창적으로 발전시킨 시기도 이 즈음입니다. 정물화의 위상은 세잔 전후로 바뀐다고 할 수 있거든요. 세잔의 사과는 전통적인 그림의 범주를 넘어서 있습니다. 어쩌면 무미건조하다고 볼 수 있는 주제를 세잔은 어떻게 위대한 미술로 끌어올렸을까요.
세잔에게 사과는 그저 소박한 과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림을 다시 보면 사과의 ‘형태’를 찾아내 그 안에 깃든 자연의 ‘본질’을 묘사하는 세잔의 집요함이 드러나거든요. 그가 모든 사물을 원통, 구, 원뿔로 단순화한 형태로 다룬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연의 모습을 기하학적 구조로 추상화한 그의 접근은 그 자체로 당대 회화 관습을 뒤엎는 혁명이었죠.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일종의 명상이다. 내가 그린 사과는 단순한 사과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사과를 보며 느낀 모든 것, 그 속에 깃든 삶과 자연의 본질을 담고 있다. 나는 사과를 통해 그 안에 숨겨진 자연의 법칙과 조화를 찾아내고자 한다.”
긴 말이 필요 없습니다. 대표적인 정물화 두 점을 비교해서 볼까요. 각각 17세기 화가인 얀 데 헤엠과 세잔이 그린 정물화입니다.
헤엠의 ‘과일이 있는 정물’(1648). |
세잔의 ‘사과와 오렌지’(1895~1900). [오르세미술관] |
헤엠의 그림 ‘과일이 있는 정물’에서 사과는 매우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그 외형이 묘사돼 있습니다. 빛과 그림자를 정교하게 사용해 사과의 표면 질감과 광택이 그대로 재현돼 있죠. 사과가 놓인 위치나 배경도 현실적인 공간감을 줍니다. 다시 말해 헤엠은 마치 사진을 찍은 것처럼 사과를 있는 그대로 실물처럼 그렸습니다.
그런데 세잔의 작품 ‘사과와 오렌지’는 훨씬 더 단순화된 형태로 그려졌습니다. 세잔은 사과의 세부적인 질감보다는 사과의 기본적인 형태와 색채 간의 대비에 초점을 맞췄죠. 그래서 그의 사과는 마치 단순한 색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정확하게 묘사하기보다 물체가 가진 내재적인 형태를 강조한 건데요.
폴 세잔의 ‘사과와 오렌지’(1895~1900) 부분 확대. |
좀 더 자세히 보면 사과가 다양한 각도에서 다른 방향으로 기울여져 있는 점도 포착할 수 있습니다. 세잔은 단일한 시점에 얽매이지 않고 다중 시점을 사용해 여러 각도에서 본 사과를 한 화면에 담아낸 겁니다. 사과와 오렌지가 정확한 원근감 없이 테이블 위에 흩어져 있는 것 또한 전통적인 규칙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구성이고요.
누구도 보지 못한 방식으로 자연을 다룬 세잔의 시각으로 화가는 자연을 단순히 모방하는 장인이 아닌, 자신의 관점대로 현실을 탐구하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절대적 주체가 되기에 이릅니다. 예술이 어떻게 존재하는가, 예술은 사회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 이런 거대한 질문을 던지며 시대를 저만치 앞서 간 이가 바로 세잔이라는 의미입니다.
“나는 자연을 단순히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체험한 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하려고 한다. 나의 목적은 눈에 보이는 현실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내가 느낀 진리를 화폭에 담는 것이다. 자연은 무한하며, 그 무한함 속에서 나는 내가 이해한 것만을 선택해 표현한다.” 이는 바로 세잔이 직접 밝힌 자신의 예술 철학입니다.
세잔의 ‘카드놀이하는 사람들’(1892~1893). 경매로 판매된 세잔의 최고가작으로, 세계 미술품 판매가 랭킹 3위를 차지한다. |
미술사에 끼친 그의 강력한 영향력은 훗날 세잔의 작품가를 천문학적으로 올렸습니다. 피카소와 마티스를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아버지 같은 존재가 세잔이니까요. 피카소는 형태를 단순화하고 기하학적 요소로 해체하는 세잔의 접근에 큰 영감을 받고 입체파를 창시하게 됩니다. 세잔이 색을 단순히 묘사를 하기 위한 도구가 아닌 형태를 구성하는 요소라고 바라본 점을 받아들인 마티스는 색 그 자체를 회화 도구로 사용하는 야수파를 발전시켰고요. 그래서 피카소와 마티스의 작품을 구매한 이들이라면 세잔의 작품도 갖고 싶을 겁니다. 피카소와 마티스의 작품이 오를수록 덩달아 값이 뛰는 그림이 세잔의 작품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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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단 5점만 그린 ‘카드놀이하는 사람들’(1892~1893) 중 한 점으로 세잔은 현재 세계 최고가 미술품 3위로 기록되고 있고요. 지난 2011년 경매에 나온 이 작품은 마지막 개인 소장작으로 250만달러(약 3300억원)에 판매됐는데요. 이 그림을 사간 이는 카타르 왕가의 셰이크 알 마야사 공주였습니다. 교과서에 실릴 정도의 명작들이 ‘돈의 힘’에 따라 옮겨 다니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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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스위스의 랑마트 박물관도 세잔의 작품을 경매에 내놨습니다.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은 박물관은 세잔의 그림을 팔아 운영 자금을 마련하고자 했죠. 목표 금액은 약 575억원(4000만 스위스프랑).
지난해 9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된 세잔의 ‘과일과 생강 단지’. [크리스티] |
지난해 9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된 세잔의 ‘네 개의 사과와 칼’. [크리스티] |
당시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된 세잔의 작품은 총 세 점이었습니다. 바로 ‘과일과 생강 단지’, ‘네 개의 사과와 칼’, ‘에스타크의 바다’였는데요. 세 점을 모두 판매한 랑마트 박물관은 목표 금액을 가뿐하게 초과 달성했습니다. 세 점의 세잔 작품으로 무려 약 705억원을 벌어들였거든요. 가장 비싼 값에 판매된 ‘과일과 생강 단지’는 낙찰 추정가로만 약 130억원이 넘습니다.
다만 이런 랑마트 박물관의 성급한 작품 매각 결정에 대한 비판도 거셌습니다. 박물관이 예술적 가치를 희생시키고 있다는 주장인 건데요. 특히 토비아 베졸라 국제박물관협의회 스위스 지부장은 “미래 세대를 위한 예술적 유산을 보존할 책임을 저버린 행위”라며 날선 비판을 이어갔죠. 예술적 가치보다 재정적 생존이 우선된 점을 문제 삼은 겁니다.
만약 세잔이 이런 오늘날의 광경을 봤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살아생전 저평가된 자신의 작품 앞에서 더욱 치열하게 사과를 그렸을 그가 남긴 말만 곱씹어 볼 뿐입니다.
“나는 내 작품이 돈벌이 수단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내 그림은 예술에 대한 헌신이다. 그리고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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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We Spend One Hour Looking at Paul Cézanne’s ‘Card Players’ at Philadelphia’s Barnes Foundation, Artnet News.
Paul Allen’s Collection Is the Most Expensive Ever to Come to Auction—But There’s Even More Where That Came From, Katya Kazakina, Artnet News.
‘Nobody has ever been astonished by an apple’ – sorry Cézanne, but still lifes are dull as hell, Hannah Jane Parkinson, The Guard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