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을 좌지우지 하던 이것, 양귀비 [북적book적]

노천에 핀 개양귀비꽃 [뉴시스 제공]

[헤럴드경제=신소연 기자]양귀비에서 추출되는 아편은 인류와 애증의 역사를 함께 한다. 수 천년부터 소화제나 강장제, 진통제 등 민간 상비약으로 사용됐던 아편은 6000년 전 스위스의 유적지나 기원전 2000년 전 이집트의 무덤에서도 발견될 정도로 인류와 오랜 기간 함께 했다. 하지만 18세기 전후 네덜란드, 영국 등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 착취 도구로 활용되는 치욕을 겪기도 한다.

인도 출신 작가 아미타브 고시의 신작 ‘연기와 재’는 아편을 통해 서구 열강의 악덕과 탐욕을 고찰한다. 그는 연작 소설 ‘아이비스 3부작’ 준비를 위해 19세기 인도의 선원과 병사들을 취재하면서 그들의 삶이 인도양의 해류 뿐 아니라 그 해류가 대량으로 실어나른 아편에 영향을 받은 점을 알게된다. 이 책은 그가 작품을 위해 수십 년간 해 온 아편에 관한 고문서 연구의 종합판이다.

저서에 따르면, 아편이 세계사에 등장하게 된 것은 차(Tea)의 영향 때문이다. 중국 차는 찰스 2세의 아내 캐서린이 시집오면서 영국에 들여왔는데, 이는 상류층을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왕실 역시 당시 차에 대한 세금이 영국 세수의 10%를 육박할 만큼 규모가 크고, 영국 경제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던 만큼 차의 인기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문제는 갈수록 높아지는 중국 차의 인기로 수입량은 늘어나는 반면, 영국이 그 대가로 중국에 판매할 품목이 별로 없었다는 점이다. 당시 중국은 뿌리박힌 중화사상으로 서양 문물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특히 중국 상인들은 찻값으로 은을 받길 원했다. 이같은 무역불균형은 막대한 양의 은이 서양에서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게 했다.

영국은 무역불균형 해소 차원에서 중국과 기후가 비슷한 인도, 스리랑카 등 남아시아 지역에서 차를 재배하는 한편, 중국에 은 대신 제공할 수 있는 수출 품목을 찾아낸다. 바로 아편이다. 영국은 인도에서 대량 재배한 양귀비를 가지푸르와 파트나 공장에서 아편으로 가공한 후 캘커타로 보내 경매를 통해 개인 무역상에 넘겼다. 그들은 중국 왐포아로 아편을 실어날라 중국 밀수업자에게 판매했다.

아편 무역으로 이득을 본 나라는 영국 뿐만 아니다. 미국 역시 아편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이는 당시 미국의 국제적 위상과 연관이 있다. 당시 미국은 1783년 독립전쟁 이후 전 세계에 걸쳐있는 영국 식민지와 교역이 차단되면서 고립됐다. 이때 미국 상선을 받아주는 몇 안되는 국가 중의 하나가 바로 중국이었는데, 미국 역시도 영국처럼 팔 물건이 없었기에 영국과 같은 해답을 찾았다.

영국이 인도산 아편을 중국으로 날랐다면 미국은 튀르키예산 아편으로 큰 이득을 봤다. 일부 추정치에 따르면, 1818년께 미국인은 중국에서 소비되는 아편의 3분의 1을 밀거래하며 영국의 시장 지배력을 위협했다. 지금도 세계경제를 좌지우지 하는 미 북동부 지역 상류층 가문 즉 애스더, 브라운, 해서웨이, 웹스터, 포브스 등은 당시 아편 교역으로 막대한 이득을 본 상인 집안이었다. 2세기 전 아편 무역이 현재의 국제 정세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아편을 통한 식민지 착취와 판매국 주민들의 신체적, 정신적 피해 등 폐해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아편 무역은 종말을 맞게 된다. 1920년대 전후로 국제 사회에서 마약 억제 조치가 제정되며 아편 공급량이 줄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약 거래에 대한 통제를 정부가 아닌 범죄 네트워크가 하게 주도해 정부의 영향력이 크게 줄었다. 또 유전자 조작으로 아편의 일부 성분이 강화된 '슈퍼 양귀비'가 시리아, 이라크, 리비아 등 분쟁 지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더 커졌다. 통신 기술의 발전 역시 아편을 보다 쉽게 만들고 판매할 수 있게 해 아편에 대한 위험성은 줄어들지 않았다.

연기와 재/아미타브 고시 지음·김흥옥 옮김/에코리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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